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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와이 May 04. 2019

아빠의 마음 비슷한 것


엄마도 네가 아야 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대 
네가 빨리 나으면 좋겠대 
그리고 엄마가 너를 너무 사랑한대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망가진다. 나는 소아 응급 구역에

서 근무한 적이 있다. 자기 아이를 허벅지에 눕히고 쓰다듬

는 어느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쩌면 아이란 엄마와 한 

몸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틈으로는 심지어 반

쪽의 유전자를 준 아빠도 비집을 곳이 없다. 아이가 조금 아

프면 엄마는 잠을 못 자고, 많이 아프면 영원히 불면에 시달

릴 것만 같다고 하니 말이다.


소아과 병원은 부모의 눈물 위에 세운 것이다. 소아 중환

자 병동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아이들은 입원해서, 부모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느라 숨죽이 

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소아 중환자를 본 적 있는 사람은 

그 순간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연약함을 이기고 

크는 모습이 안쓰러워 눈 뜨고 보기 어렵고, 부모가 무너지

지 않으려 버티는 모습에 내 모습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급사한 소아를 본 적 있다. 밤 열 시경이었고, 

아이가 이상하다며 엄마가 119에 신고해 온 것이었다. 

건강하 던 아이였기에 사망은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구급차에

서 그 작은 아이에게 심폐소생술을 했고, 응급실에 와서도 

온통 난리법석을 떨었는데 결국 죽었다. 엄마는 사망 소식

을 듣고 바로 실신했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사람이 몇 십 분 

후 응급실에 나타났다. 그는 근처에서 회사 회식 자리에 가 

있었는지, 정장을 입고 취기가 약간 올라 있었다. 처음 그에

게 소식을 전했을 때 별로 놀라지도 않고 얼떨떨해 했다. 아

마도 자신이 취해서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아이 얼굴을 매만지고 몸을 쓰다듬었다. 

시간이 지나, 현실을 깨달았을 때 슬픔이 취기를 넘어섰다.

그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응급실 의사를 보며 “너희가 잘

못한 것 아냐?” 하고 소리 지르기도 했다가 울기도 했다가 

소란을 부렸다. 다들 심정이 이해는 되니 가만히 보고 있었

는데, 응급실 기자재를 부수기 시작할 때 안전 요원이 그를 

말렸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죽겠다는 

것이었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또 다른 응급 환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따라 달려갔다. 나는 지금껏 그때만큼 한 사

람의 감정이 넘쳐 흔들리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자기 아이를 

잃는다는 감정은 그런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다.





 


자기 자식을 잃는 감정은 누구나 같다


내 기억 속에 기절한 엄마가 또 하나 있다. 쌍둥이 미숙아

를 낳은 한 엄마였다. 아기들은 소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

에 하나씩 자리했고, 엄마도 상태가 좋지 않아 산부인과에 

입원해 있었다. 엄마는 입원해 있는 동안 아기들을 보러 오

고 싶어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가장 많이 본 보호

자는 친정 엄마, 즉 아기들의 할머니였다. 그녀는 손주들도 

보러 왔다가 면회가 끝나면 다시 딸이 있는 병실로 올라가

고는 했다.


몇 주가 지나고 엄마의 상태가 나아져 어렵사리 걸을 정

도가 되었다. 당연하게도 그녀가 가장 먼저 오고 싶어 했던 

곳은 소아 중환자실이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 아기들이지

만, 생사를 넘나들며 어렵게 품은 생명이었다. 그녀가 아기

들을 보러 올 때쯤 두 아기 모두 혈전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

다. 한쪽 팔에 혈전이 막혀 파랗게 변해 혈전 용해제를 달고 

있어야 했고, 엄마는 매일 주사제 떨어지는 것을 말없이 지

켜보기만 했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큰 부담을 느꼈다. 혈전

을 녹이지 못하면 팔이 썩는다. 혈전 용해제가 의료진이 가

진 유일한 희망이었다.


며칠 지켜본 결과, 한 아기의 팔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

지만 다른 아기는 그렇지 못했다. 딸아이였다. 색이 돌아오

는가 싶더니 다시 까맣게 변해 갔다. 썩고 있었다. 한 번 건

너가면 돌아올 수 없는 상태였다.


소아과 주치의는 그 며칠 동안 아침 회진 때 어느 때보다

도 침통한 표정을 했다. 간단한 질문 몇 개만을 레지던트에

게 할 뿐이었다. 평소 즐겨 하던 교육이나 첨언은 없었다. 

그는 이날따라 회진을 다 돌고도 문밖을 나서지 않고 한참

을 서서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험악한 분위기에 레지던트

와 간호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가 문을 나섰

을 때 밖에는 엄마가 환복을 입고 바퀴 달린 수액 걸이대를 

잡고 힘겹게 서 있었다. 주치의와 보호자는 서로 눈을 마주

치고도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어렵게 의사의 

말문이 열렸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잘라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엄마는 두 눈을 뜬 채로 주저앉아 기

절해 버렸다. 오열하지도, 소리 지르지도 않고, 그야말로 모

든 정신이 순간적으로 닫혀 버렸다. 할머니 역시 손녀딸의 

기막힌 소식을 듣고도 슬퍼할 새가 없었다. 그녀는 놀라서 

바닥에 누운 딸에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쳤다. 아기 엄마는 

바로 옆의 응급실로 실려 갔다.


아이는 이제 인생을 막 살아가기 시작했다. 엄마 된 모든 

이는 좋은 것만 주고 싶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운명은 생을 

고통으로 시작하게 한다. 시간은 작은 상처를 쌓는다. 생채

기의 적분합은 커다란 고통으로, 이는 (남들은 당연한) 일상

의 회피로 이어진다. 아이 엄마의 두려움은 이런 것이다. 그

런데 공포가 너무 크면 한 사람의 몸이 버틸 수 없다. 순간 

몸의 모든 기능을 정지시킬 수도 있다. 실신의 의미다.

아침 회진 이후 오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환자

를 보고, 책을 읽어도 머리 한쪽에 아기 생각이 자꾸만 떠올

랐다. 의학적으로 아기의 예후가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아

기가 살아갈 시작이 안타깝고, 엄마가 느낄 감정이 신경 쓰

였다.  


결국 나는 쓸데없는 오지랖을 펼치고야 말았다. 밤 아홉 

시경, 아무 의료진도 없던 시간 나는 소아 중환자실을 찾았

다. 당직 간호사는 예상치 못한 방문 의료진에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바로 그 아기를 보고 싶었

지만 다른 소아들과 관련된 일을 했다. 처음부터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약을 확인

하고 주호소의 호전 양상을 보고……. 괜히 다음 날 아침 일

찍에야 할 일을 하며 쓸데없이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더 할 

일이 없어졌을 때야 비로소 그 아기 앞에 섰다. 아기는 어스

름한 인큐베이터 조명 아래 쌕쌕 자고 있었다.


나는 의료진이지만 이 아기의 주치의가 아니다. 현실적

으로 도움 줄 권한도 없고 따지고 보면 아무 관계없는 사람

이었다. ‘내가 대체 여기 왜 왔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아빠의 마음 비슷한 기분이었다. 상태가 나빠

지는 아기를 보며 나는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싶었다. 아직 

이름도 없어 엄마의 이름을 따 ‘송○○아기’라는 명찰을 단 

핏덩이였다. 내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나는 말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담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

았다.


 

 

 오늘 하루도 너무 힘들었지? 아저씨는 네가 아야해서 영 마음이 좋지 않다. 
앞으로 상처 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야. 너는 이렇게 예쁜데,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너희 엄마도 네가 아야해서 너무 마음이 아프대. 네가 빨리 나으면 좋겠대. 그리고 엄마가 너를 너무 사랑한대.


나는 평화로이 잠자는 아기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한 

팔에 주사 라인을 달고도 쌕쌕거리며 한 번씩 웃는 얼굴이 

사랑스러웠다. 정말 예쁜 아이로 클 것만 같았다. 그 얼굴을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아기를 보며 속삭

이듯 “아가야…….” 하고 불렀다.


그때 잘 익은 빨간 홍시 같은 볼살 너머로 심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기의 다른 팔이 구겨진 담요 옆으로 가려져 있

었다. 그 사이로 썩어 가는 손가락이 보였다. 손끝은 검게 

변해 뼈가 보일 듯 끔찍했다. 나는 순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다른 아기들이 깨지 않도록, 숨죽여 울었다






Photo by Elijah O'Donnel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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