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서 한라산을 넘어야 닿는 서귀포는 제주시에서 살 땐 체감상 거리가 멀어 관광 이외에 자주 찾지 못했는데, 서귀포시에 직 근접의 선택지로 오게 되었고 현재 2년 넘게 살고 있다. 서귀포는 구시가지의 로터리 쪽을 제외하고 교통체증이 없다는 점과 기후가 대체로 맑고 따뜻하다. 그 어떤 적당 함들이 좋다.
직장이 강정마을 근처에 위치해서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집을 임차하여 1년을 살았다. 강정커뮤니티센터 공동주택으로 총 3층의 3년 정도 된 신축 다세대주택의 1층이었고, 방하나 주방 겸 거실과 화장실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보증금 200에 월 30만원 관리비 3만원정도로 운이 좋게도 동네에서 제일 저렴하고 깨끗하고 적당한 크기의 괜찮은 집이었다. 강정마을에서 짓고 운영하는 형식의 공동주택이어서 저렴한 가격으로 가능했던 것 같다. 중문해수욕장과 차로 15분 정도 거리여서 이곳에서 서핑을 가장 많이 다녔다. 직장과 중문해수욕장 사이였기 때문에 출근 전 서핑하고 씻고 출근하고 이런 일상이 가능했다. 날씨가 항상 밝고 좋았는데 1층 집이어서 좀 습했고 제습기로 해결되는 정도였다. 앞에 잔디와 나무가 있어서 뷰가 나쁘지 않았다. 동네가 조용하고 바다 근처여서 그런지 남성적인 마을의 느낌이었다. 서귀포시에는 신시가지(계획도시 느낌)와 구시가지에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다. 강정마을은 신시가지와 차로 10분 정도 거리여서 편리하고 이마트가 가까워 장보기가 수월했다. 제주시는 차로 1시간 10분 소요, 버스정류장과 가깝고 버스 이용이 편리했다. 신시가지와 가까운 강정~대포동 쪽은 집값이 서귀포에서 가장 비싼 편이고 주거비용도 높다.
직장과 주거가 안정되니, 청년 만 35세가 되기 전 내 생에 처음으로 전세대출을 받아보기로 했다. 이때 처음 제주도 주거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전세 공급은 무척 적고 금액은 높았으며, 전세대출이 되는 집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모은 돈이 많지 않은 나에게 선택지는 더욱 한정되어 있었다.
서귀포시 예래동의 집은 1년 남짓 살았고, 내 인생 첫 전세 6000만 원과 매달 관리비 5만 원과 공과금을 지불하고도 20만 원이 안되어 주거비용이 줄어든 행복감에 살았던 집이다. 주상복합 5층으로 옥상에 올라가면 탁 트인 뷰가 멋졌고, 주방이 분리된 작은 원룸이지만 창으로 먼바다와 야자나무가 보이고 해가 잘 들어서 좋았다. 옥상의 뷰와 깨끗한 신축 그리고 화장실의 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보자마자 바로 계약했던 집이다. 집 앞에 큰 다이소가 있고, 버스정류장이 바로 앞이어서 편리했다. 이곳에 살면서 주변 하예동과 대포동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살고 싶은 동네로 꼽게 되었다. 중문과 가깝고 예래생태천 공원, 논짓물, 대포 주상절리 등 계절마다 볼거리도 즐길거리도 많고 날씨가 따뜻하며 적당한 인프라가 갖춰져 살기 좋은 동네라고 생각된다.
현재 내가 사는 곳은 서귀포시 법환동 법환포구 앞의 빌라이다. 110세대의 신축 빌라 5층(방 2, 화 2, 주방, 거실, 넓은 복층)의 아파트 느낌의 3 Bay로 안방과 복층에서 범섬과 바다가 잘 보이며 해가 잘 드는 남향집이다. 전세대출 1.8억의 집으로 가스비를 제외한 관리비가 10~15만 원 정도 나온다. 제주는 아직도 도시가스가 들어온 곳이 드물다. LPG와 기름보일러를 이용해서 난방비가 많이 드는 점이 아쉽다. 아직은 법환 바다가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어서 인근 중문 쪽에 비해 사람이 적은 편이다. 법환은 태풍이 올 때 가장 먼저 뉴스에 나오는 곳 중 하나인데, 강정바다 코앞에 직장을 두고 2년 정도 거주하며 느낀 점은 태풍은 집의 새시가 튼튼하면 문제 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바다를 끼고 있는 산책길이 밤에도 밝고 잘 조성되어있다. 집에서 걸어서 법환 바다를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집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고 이 동네를 좋아하는 이유다. 선선한 날씨에는 법환포구에 자리를 깔고 바다를 보며 노상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좋고, 마을은 한적하고 조용한데 도보로 이용 가능한 곳곳에 맛있는 빵집과 카페, 맛집들이 많다. 신시가지와 가깝고 병원과 마트, 버스터미널이 가까이 있어 생활이 무척 편리하다.
입도 6년 차로 어쩌다가, 살다 보니, 제주 지역을 시계방향으로 반을 돌며 거주해 보았다.
앞으로 나의 거주지는 또 어디가 될까? 그때의 나는 여전히 임차인일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제주 생활에서 내가 경험한 다양한 주거지는 내가 추구했던 삶의 자유로운 형태와 일정한 직장을 갖지 않고 새로운 환경을 찾고 즐겼던 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는 반증 같다. 나는 제주가 지닌 다양한 색에 대한 호기심이 넘쳤고, 동서남북 다양한 지역에 살아보며 내가 가장 살고 싶은 곳,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내 자리를 찾고자 애썼다. 삶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그 과정'에 있다고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제주라는 낯선 환경에서 여행자처럼 살다 보니 단순히 살고 싶은 장소와 원하는 역할을 찾는 것이 아닌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인지하며, 나답게 사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을 내가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 내가 머물고 존재하는 곳,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원하고 찾던 내 자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