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부쳐
은조
2023년 하반기의 터전의 키워드는 변화와 성장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많은 변화 앞에 있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세대가 바뀌며 기술이 진화하는 당연한 흐름 위에서 우리는 그저 힘 없는 존재이지만, 변화가 다가왔을 때 꺾이거나 찢기지 않고 유연하게 몸을 비트는 것은 현재를 감당하는 현명한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의 반 년을 돌아보며, 변한 것과 지켜야할 것들에 대해 고민해보려 합니다.
공동 육아와 변화된 세계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은 홈페이지에서 공동육아가 ‘너와 내가 어울려 함께 살아가기’이며, ‘돌봄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에는 돌봄, 어울림, 공동체, 함께, 공유 등의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는 어울리기 위해 함께 놀고 일하고 키웁니다. 그리고 소외된 아이와 가정을 염려하며 먼저 손 내밉니다. 우리는 공동육아에서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삶의 방법을 배웁니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배우기 때문에 더욱 더 진정한 교육이 됩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합니다. 세계도, 나라도, 도시도, 공동 육아도, 성미산 마을도 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마케팅 영역에서는 “초개인화”라는 단어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개인의 자유가 키워드가 되고 개인의 편익에 의해 분절된 세상이 자연스럽기까지 합니다. 개인성, 가족, 지역, 정치적 의견, 성별, 세대, 민족, 장애 여부 등으로 잘라진 개인들은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를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낯설고 촌스러운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통합소모임 접싯물에서 우연히 노키즈존에 대한 이야기 나누게 되었습니다. 노키즈존은 아이들이 영업장을 출입할 때 어리고 통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거부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수 년 째 양육자로 살고 있음에도 우리는 노키즈존의 문제점을 알지 못합니다. 오히려 매장 운영자의 자유를 보호해야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당사자일지라도, 어린이 혹은 양육자라는 이유로 매장에서 쫓겨나는 경험을 하기 전에는 배제와 혐오의 감각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느 면에서 약자입니다. 우리는 언제든 배제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 혹은 가족으로 촘촘히 나뉘어진 세계에서 안전하지 못한 것은 결국 우리 자신 아닐까요? 혹시 우리는 수많은 약자들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 많이 벌고 더 큰 힘을 갖느라, 평범하고 약하고 더딘 타자의 삶을 숨기고 차별하고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 봅니다.
그리 멀리 가지 않더라도,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 등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무엇도 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약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연결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연결의 습관, 그것이 오늘날 공동육아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육체가 쓰러지면
그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인간은 관계의 덩어리라는 것을.
오직 관계만이 인간을 살게 한다는 것을.
생텍쥐페리의《아리스로의 비행》중에서 -
2023년, 우리
공동육아의 목표는 상호 돌봄에 있습니다. 늘 타자의 돌봄에 의존해 살아가는 완벽하지 않은 우리는 터전에서 돌봄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때론 빡세고 피곤할지라도, 공동육아는 평화롭고 따뜻하며 안정적이며 위로가 됩니다. 함께 사는 일이 마냥 쉽고 낭만적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선택은 더욱 더 응원받아야 합니다.
2023년 10월 14일 공동육아 한마당에 다녀왔습니다. 깨끗하게 개인 하늘 처럼 맑고 화창하게 손을 맞잡고 놀았습니다. 공동육아를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항상 그런 것 같습니다. 각자의 기쁨과 어려움이 다르지만 또, 닮아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그런지, 그날 그들이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지하고 응원하고 이해가 더욱 두터워지는 자리였습니다.
2023년 10월 28일에는 마을 축제가 열렸습니다. 코로나 이후 처음 맞이 하는 축제였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규모가 축소되었지만 뜨거운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습니다. 흥겨운 음악과 함께 퍼레이드를 할 때, 단위별 깃발이 흔들리는 모습에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마치 생존 신고를 하듯 이곳 저곳의 부스를 찾아다니며 낯선 이웃들의 안녕을 보았습니다.
11월 11일 있었던 김장과 마당잔치도 깊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날 따라 수육이 얼마나 맛있던지요. 고소한 기름냄새와 서서 먹던 맛난 전, 배추 속 어린 잎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가 조금씩 맛봤던 김장 김치의 맛에 지금도 군침이 돕니다. 오순도순 둘러앉아 피웠던 이야기 꽃과, 미처 한마디 말하지도 못하고 고개 돌려 눈물 흘리던 이사장 고래의 모습과, 거나하게 취해 “행복하다”는 말을 연발하던 차기 이사장 가정 처음과 마음의 모습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뜨거웠던 해보내기 잔치도 기억납니다. 전례 없이 뜨거웠던 장기자랑을 보며 저는 웃으면서 울먹거렸습니다. 먼저, 아이디어를 모으고 연습했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모두 즐거우셨겠죠? 또 하나 울먹 포인트는 우리의 장기자랑이 무척 새로웠다는 점입니다. 저는 왠지 그것이 우리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증거처럼 느껴졌습니다. 낯설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의 용기, 씩씩함. 그것이 우리 성미산어린이집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로 쓰여진 로제타석에도 “요즘 젊은이들이 버릇이 없다”는 말이 쓰여 있다는 농담이 있습니다. 새롭고 낯선 것을 꺼리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풍자하는 말입니다.
공동육아가 위기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약 3년 간의 단절과 흑사병에 비유되는 출산율 절벽이 위기감을 부채질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동체성이 체화되지 않은 채 공동육아의 장점만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비판도 들립니다. 그러나 전통의 유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변화에 대한 이해입니다. 다가오는 변화를 소화하지 않는다면 조직은 금방 노화될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단절을 극복하며 가져가야 할 것은 취하고, 바꿔야 할 것들은 기꺼이 변화시키며 올 한해 잘 살아준 조합원들에게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낯설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그것이 우리 성미산어린이집의 전통이 되고 있으며, 건강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2023년 이사진들의 리더십에 존경을 보냅니다. 변화무쌍한 상황 속에서 돌파구를 찾아내는 능력자들, 2023년 이사진들은 유연하고 다정했습니다. 이들이 항상 누구보다 낮은 곳에 서서 살림해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긴 소송과 대출 등 피로감이 가득했던 일정 속에서도 늘 최선을 다하며, 이사회 안에서 어려움과 고통을 감내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서로 언제나 손 덜어주려고 애쓰며, 각 이사 서로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에서 많은 감동과 감사를 느꼈습니다.
지난 겨울방학 터전 상수도가 터져 물바다를 이뤘을 때, 어느 순간 모였던 그 수많은 손길들이 기적같이 보였습니다. 서로를 돌본다는 관점에서 우리가 얼마나 성숙한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상호 호혜적인 모습은 이사회의 리더십과 조합원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모든 터전 조합원들의 마음이 합쳐진 모습이었습니다. 모두를 존경합니다.
특히나 감사드리고 싶은 것은 교사회의 리더십입니다. 조직의 문화는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며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관심있게 바라보며 아끼는 마음들이 쌓여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항상 터전을 굳건히 지켜주시는 교사회,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조합의 문화를 좋은 방향으로 가리키는 나침반의 역할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특히 올해는 교사 변동이 많아 새로 시작하는 어려움이 있으셨을텐데, 항상 넓은 품으로 따뜻하게 보듬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성미산어린이집을 너머
공동육아를 하는 우리가 주목해야할 지점은 ‘어떻게 하면 공동육아적 정서를 타인과 나눌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성미산어린이집 안에서만 정서적이며 물리적 돌봄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여전히 단절된 세계의 구성원일 뿐입니다. 공동육아가 우리 아이들을 위한 안전망이라는 생각으로 공동육아를 시작했다면, 공동육아가 더 넓은 차원의 사회적 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사회가 그렇듯 당면한 세상의 문제를 해쳐나가는 것은 당사자들의 힘입니다. 오늘 공동육아를 하는 사람들의 몫은 무엇일까요?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홈페이지는 공동육아의 사회적 의의를 “교육 운동”에 두고 있습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서로 돕는 영유아 교육인 공동육아를 하는 우리의 청사진은 경쟁보다는 협력을, 차별보다는 이해를 앞에 두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성미산 어린이집의 저력은 사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호네 동생 태어나던 한두 주 동안, 알맹이가 올려준 마실 사진에 왠지 뭉클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공동육아에서 찾으려던 본질이 아닐까요. 육아의 어려움을 나누며, 외로운 육아 생활의 동지를 만나고, 각박한 어른의 삶에 친구가 되어주었죠. 우리는 기꺼이 서로의 무게를 나누어 집니다. 소위모임, 방모임, 전체모꼬지, 방모꼬지, 교육, 오픈데이, 컨설팅 준비 모임, 대청소, 모둠청소, 이사회, 허그FC, 접싯물, 등산 모임, 기타 모임, 수많은 마실 등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발견하고 어느 순간 인연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공동육아는 연결의 힘에서 나옵니다. 연결은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되는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화학적인 작용입니다. 거미줄과 같이,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생태적인 힘이기도 하고, 사회적인 힘이기도 합니다. 연결되어 있다면, 우리가 삶을 들어올리는데 필요한 힘이 현저히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이웃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는 무슨 힘으로 삶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고, 나를 돌보고, 배우자를 사랑하며, 돈도 벌고, 일도 하며, 꿈도 꿨을까요.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연결은 힘입니다. 우리는 연결의 가치를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제안드립니다. 이제, 우리의 사랑이 사회적으로 번져나가는 꿈을 꿉시다. 우리가 조합의 사람들을 보듬고 살피듯, 조합 너머의 사람들을 한번쯤 바라봅시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라진 존재들을 생각해 봅시다. 시설에 갇힌 장애인, 사라져가는 비인간 존재들, 농장에서 사육되는 식용 가축들, 세월호 이태원 희생자들, 혐오 범죄에 희생된 사람들, 수많은 사라진 존재들. 호혜적인 삶의 기술인 사랑을 나눠주세요. 그들을 발견하고, 알아차리고, 우리 삶을 조금 바꾸어 봅시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정서들, 개인에 대한 인정과 이해, 따뜻한 사랑과 호혜적인 마음을 세상과 나눈다면 가끔은 고단한 공동육아의 삶이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맺음말
마을에서 만납시다. 성미산어린이집은 마을 안에 있기 때문에 더 의미있습니다. 배제와 차별에서 안전한 골목에서 배우고 놀며 아이들의 마음 깊이 삶의 지혜가 새겨질 것입니다. 동그마니 우리 터전만 있었다면 우리는 친밀해 질 수는 있었을지언정 호혜적인 삶의 기술을 배우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터전은 우리가 손 내밀 수록 더 많은 것을 줍니다. 마을 역시 손 내밀 수록 더 많은 것을 주는, 주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공동체입니다. 마을 구석구석을 관심 갖고 지켜봐주세요. 적성에 맞는 일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올해는 30년 마을입니다. 더욱 관심 많이 가져주세요.
당당하게 조금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되어 봅시다. 빠르고 잘났지만 외롭게 변해가는 주류 세상과는 반대 편에서 우리는 기꺼이 서로의 이웃이 되어주었습니다. 단절과 몰이해와 미움의 범람 속에서도 함께 산다는 것의 기쁨을 배우기 위해 여기 모인 우리가 희망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동료가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