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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Apr 21. 2024

입으로 내어진 말이든 휘갈겨 쓴 글씨든 인쇄된 문장이든



  이상해요. 이제 막 봄이 기지개를 켜는 참인데, 그토록 기다리던 목련과 콩다닥냉이와 봄밤의 산책인데 다시 겨울이길 원하는 애달은 마음이라니요. 겨울의 찬 공기를 벌써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니요. 발끝까지 끌어내린 이불, 밤마다 뜨거운 물로 가득 채우던 고무주머니, 난로에서 빛나던 붉은 온도, 차갑고 짙은 새벽, 숨 끝에서 퍼지던 흰 입김, 금방 식어버리던 목욕물, 두껍고 무거운 외투, 몸의 오랜 점처럼 익숙한 감기. 어쩌면 그걸 다 잊고서.


  ‘겨울 전나무가 왜 아름다운지 ‘*


 지나간 겨울의 안부가 궁금해진 건 저 단순한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겨울과 그 속의 전나무를 또렷이 마주하고 싶었어요. 어쩔 수 없어요. 언어에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있으니까요. 입으로 내어진 말이든 휘갈겨 쓴 글씨든 인쇄된 문장이든 이미 그것을 만나고 나면 그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안녕. 고마워. 너를 아껴. 그런 게 아니야. 잘 가. 당신의 피에 목소리와 잉크가 떨어지고 섞여 듭니다. 쉽고 어렵게 내어지는 언어들. 우리는 붉은 잉크를 마시며 자라는지도 몰라요.


  조금 전 아이들이 우르르 곁을 지날 때였어요.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잘라잘라 했거든.’ 나는 조용히 웃습니다. 자른 머리와 잘라 잘라한 머리는 분명 다르겠지, 생각하면서요.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친구에게 ‘친절한 신이씨’라는 문자를 받았어요. 가만히 보다가 친절함과 다정함의 차이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친절하고픈가 다정하고픈 가도 생각하고요. 생각하다 보니 친절한 금자 씨도 고개를 내밀기에 금자 씨에게 묻습니다. 친절한 금자 씨. 친절함과 다정함은 어떻게 다른가요. 나의 금자 씨는 말해요. 친절과 다정을 베풀려면 당신의 몸과 마음에 힘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해요. 하지만 차이를 두자면, 친절이 부드러움이라면 다정은 따뜻함 아닐까요.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그렇게 다르듯 비슷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다가올 겨울에는 월정사의 전나무 숲에 가보고 싶습니다. 멀듯 보여도 또 금방 겨울은 곁에 바짝 다가서겠죠. 세 계절이 지나는 사이, 그 아이는 또 머리를 잘라 잘라할 테고 나는 친절하거나 다정한 신이씨가 되려 애쓸 테고 수많은 말은 여전히 쉽고 어렵게 내어지며 우리의 안에서 소화되거나 또 뱉어지겠지요.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어떤 언어와 어떤 시간과 어떤 감각이 계절을 채울까요. 아마 전부 내 뜻이진 않겠지만 내 뜻으로 되는 건 다정했으면 좋겠다, 친절하면 좋겠다, 바라봅니다. 봄에 부는 바람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길, 당신의 것도 당신에게 다가오는 것들도 그러하길, 이렇게요.


그러나 그보다 더 바랍니다.

봄에는 봄을 그대로 맞길,

다시없을 이 봄을 그대로 사랑하길, 하고요.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_고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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