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신 Jun 14. 2024

0시간 0분 3600초


  한 시간은 얼마큼의 시간이야? 하고 아이가 물었다. 1초 2초, 손가락을 꼽으며 초를 세는 아이에게 한 시간은 3600번의 손꼽음이라 얘기할까. 그러면 여섯 살 아이는 3600이라는 거대한 은하계 같은 숫자를 이해하고 그 사이의 시간의 길이를 제 키만큼이라도 가늠할 수 있을까.


  1시간 0분 0초, 0시간 60분 0초, 0시간 0분 3600초.


  연속체의 시간을 분절해 칸을 나누고 시간표를 짜는 인간이 결국 끝에 가서 하는 말이란 시간은 예측할 수 없이 빨라 저도 모르게 흐르더라가 되고 저녁즈음이면 벌겋게 붓고 충혈되던 엄마의 눈은 익숙한 나의 것이 되고 아직은이라는 미약한 기대가 이제는이라는 포기가 되기는 너무나 쉽고. 늙음을 우스워하던 젊음이 조금씩 나를 우스워하고. 너도 크면 알 거라던 어른의 말은 악몽처럼 실현되어 알고 싶지 않은 감정과 현실을 들추고야 마는. 시간의 모둠, 그 커다란 케이크 가운데 한 시간. 어떻게. 어떻게 하면 이런 시간을 설명할 수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뭐야. 밀물을 보지 못한 사람이 밀물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물의 거대한 움직임과 속도를 말하는 방법은.


  수업 45분 동안 내내 초침을 바라본 적이 있다고 얘기했던가. 궁금했거든. 맨눈으로 지켜본 대략의 한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 하고. 얼마나의 감각이 지나야 끝날까 싶기도, 출렁대는 시간이 지겹기도 했고. 몇 번이나 포기할 뻔했지. 45분은 2700초잖아. 선 하나가 몇 밀리미터씩 가는 걸 2700번이나 지켜봐야 한다고. 일초 이초 삼초 사초 오초. 의미 없는 움직임은 계속 원을 갈망하며 이어지고. 발이 빠지는 모래에서 발을 빼고 다시 빠지고 하염없이, 그저 하염없이 그 동작만이 반복돼.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도 초침은 틱틱, 자꾸만 움직였어. 야, 너도 참 독하다 생각하면서 박수를 쳤어. 뭐든 허투루 하지마래이. 팔십이 되어서도 일을 손에 놓지 않으시던 할머니의 말이 들린 것도 같고.


  아이에게 하는 대답은 뻔하지. 한 시간, 그러니까 한 시간은. 놀이터에서 놀 때는 참새처럼 빠르고 네가 방 정리를 하는 동안은 한참이나 긴 시간이야. 뭘 하냐 누구와 있냐에 따라 다른. 아이는 대답이 없더니 이삼 분 뒤 다시 묻는다. 오 분 전에도 했던 질문을. 그래서 다 왔어? 얼마큼 더 가야 해?


  뭘 얘기해 줄 수 있을까. 사람의 시간은 모두 다른 모양과 속도를 가졌다는 뻔한 사실. 그래서 저마다의 단위는 다르고 그 시간에 행해지는 일도, 기분도 음식도 다를 것이라는. 어차피 시간도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 아니. 아마 그것보다는 더 진짜의 것. 시계의 초침과 계절의 반복처럼 말의 반복(반복이 키워낸 수많은 것들을 봐). 뭘 하냐 누구와 있냐에 따라 다른 게 시간이지. 같은 시간이라도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른. 그러니까 한 시간은. 간신히 몸 끝만을 움직이며 안전띠에 매여 답답할 수도, 창밖에 지나가는 사물과 풍경에 기쁠 수도, 온갖 공상에 흥미진진할 수도, 잠깐 눈을 붙이고 쉴 수도, 하고 싶던 말을 조금씩 누군가에게 털어낼 수도 있는 시간. 모두 다 네 안에 있다니까. 시간도 무엇도.


  그래서, 우리는 다 왔어?

  아이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나는 지도를 보며 저 말을 열 번 정도 들으면 도착하겠구나 생각하다가 불현듯 거실에 있는 시계에는 초침이 없었다는 걸 떠올렸던가. 뭐든 허투루 하지 마래이. 여섯 해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말이 또 떠오르고. 초록은 점점 짙어져만 가고. 그렇게 그렇게.







_


매거진의 이전글 빨래 개기와 홈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