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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신 Nov 08. 2024

눈이 어두운 아이


어두운 새벽


어느 눈이 어두운 가족이 모여 논의했다


아이를 만들자, 아이의 울음소리를 깨우자


다수결로 작은 아이 하나를 만들기로 한 그들은


각자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 하나씩을 골랐다


나는 눈, 나는 입, 나는 피부, 나는 첫 숨을 틔울 폐, 나는 손목


조용한 방 자신의 부위를 조심스레 떼내며


누군가는 두 눈을 누군가는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흰 벽지가 붉은색으로 점점 퍼져가고 있을 때


눈이 어두운 여자가 쌀을 곱게 갈아 만든 반죽에 자신의 피를 담았다


여기에는 얼굴이 여기에는 몸통이 여기에는 팔과 다리가


마음을 다해 둥글이고 늘이고 하나씩의 장기를 붙였다


살렴, 살렴 이 흰 살로 살아가렴


마지막으로는 새끼손톱으로 할퀴어 배꼽을 만들었다


문에 가까이 앉아있던 눈이 어두운 늙은 노인이 아이의 입에 후, 하고 마지막 남은 자신의 숨을 불어넣자


어두워, 하고 아이는 울었다


다른 모양의 눈과 코 입, 팔다리를 멋대로 버둥대며


어두워, 하고 눈이 어두운 아이는 크게 울었다


여자가 아이를 안아 들고


남은 가족들이 새로 태어나고 죽은, 시간 주위를 빙빙 돌았을 때


몇 번인가 어두운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이 찾아왔지만


어두워, 아이는 계속 울었다


살렴, 살렴 어두워도 빛을 따라 살아가렴


여자는 오래전 들었던 낮고 낡은 자장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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