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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요 Feb 18. 2021

왜 장갑은 꼭 한 짝씩 없어질까?(1)

(feat. 엄마... 이제 장갑 그만 줘...!)


나에게는 세 켤레의 장갑이 있다.


하나는 오래 묵은 가죽장갑, 하나는 엄마가 쓰시던 장갑, 하나는 얼마 전에 새로 장만한 장갑.


이 세 장갑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엄마'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엄마가 쓰시던 장갑은 당연할 터이고, 나머지 장갑의 출처는 이러하다. 먼저, 오래 묵은 가죽장갑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친구는 내가 막 성인이 되었을 때 엄마에게 선물 받은 '나름' 명품 장갑이다. 그런데 가죽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게도 내 손에는 전혀 따뜻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분명 안에 털도 달려있고 가죽도 제법 두툼한 편이지만, 장갑을 끼고 있으면 어쩐지 안 꼈을 때보다 더 손이 시린 느낌이랄까... 그렇게 실패로 돌아간 첫 명품 장갑 탓에 나에게 장갑은 한동안 '거추장스러운' 존재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사진출처: pixabay


그 후로는 오랫동안 장갑을 끼지 않았었다. 그러다 지난 연말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 엄마가 내 손을 보고 기겁하고야 말았다. 손이 차가운 건 그렇다 치고 건조함에 하얗게 부르튼 손이 엄마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것이다. 엄마는 당장에 자신이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나에게 주었다. 그렇게 나는 반강제(?)로 두 번째 장갑을 득템 했다. 이번에는 모직 재질이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사실 꽤 괜찮아서 놀랐다. 장갑을 끼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 손에 전해지는 온기가 확연하게 달랐다. 그 이후로는 엄마로부터 받은 모직 장갑을 종종 끼고 다니게 되었고, 손에 무언가를 끼우는 느낌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묵혀두었던 가죽장갑도 이따금 꺼내 쓰게 되었다.


그러다 연초에 나의 최애 장갑인 세 번째 장갑을 만나게 되면서 가죽장갑은 다시 찬밥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번 장갑은 면 소재로 된 장갑이었다. 이 장갑 역시 엄마가 선물해준 것인데, 내가 이전에 받은 모직 장갑을 곧잘 끼고 다니자 이제부터 초봄까지는 조금 더 얇은 장갑을 끼는 게 좋겠다며 시장에서 골라주신 꽃무늬 장갑이었다. '장갑'하면 그냥 손 시릴 때 쓰는 물건인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옷차림처럼 계절에 따라 변화를 줘야 한다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아무튼 이 장갑이 정말 가볍고 편안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비록 스마트폰 터치가 안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는 스마트폰 터치가 가능한 장갑이고, 분명 검지 부분에 터치 인식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소재가 덧대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인식이 안 되었다. 오히려 터치 기능이 적용되지 않은 부분으로 눌렀을 때는 가끔씩이나마 먹히는 희괴한 현상도 벌어졌다.


 사진출처: pixabay


이 세 번째 장갑에 열심히 적응해가던 찰나, 문득 내가 가진 장갑이 모두 엄마에게 받은 것이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지독한 수족냉증이 있다. (엄마가 나를 보고 파충류를 낳은 것 같다고 했을 정도이니) 특히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이 증상이 극대화되는데, 한여름에도 빙수 같은 것을 먹으면 손에 피가 전혀 안 통해서 손바닥 전체가 하얗게 변해버리곤 한다. 사실 그런 증상들이야 가끔 있다 뿐이지 살면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아서 정작 나는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런데 아마 엄마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를 볼 때마다, 내 손을 볼 때마다, 차가운 손이 못내 마음이 걸렸는지 그 마음이 장갑으로 나에게 돌아온 것 같았다.


언젠가 이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한 부장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엄마는 자식이 아프면 자기가 그렇게 낳은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고. 엄마가 되어본 적이 없어서 이 말에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 순간 마음이 참 쓰라렸다. 그리고 두려웠다. 누군가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다는 일은 어떤 의미인 걸까? 요즘처럼 부모답지 않은 부모, 부모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도 없는 부모들이 아이를 키워가는 세상에서 자식이 아픈 것을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부모의 마음이 과연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 내 장갑이 꼭 장갑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뜻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위에서 소개한 장갑 중에 어떤 장갑 하나가 몇 주전에 사라졌다. 장황하게 장갑 소개만 하다가 정작 장갑이 없어진 이야기는 시작도 못하고 졸지에 낚시꾼이 되어버려 죄송하지만... 이 글에 담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 편에 이어서 소개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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