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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별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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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요 Mar 17. 2021

왜 장갑은 꼭 한 짝씩 없어질까?(2)

잃어버린 장갑을 찾아서



이 맘 때쯤이면 길거리에 이것(?)들이 심심찮게 나뒹구는 것을 볼 수 있다.

장갑이나 목도리 따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무렵, 지나가버린 것들에 소홀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겨우내 포근하게 감싸주던 패딩이 거추장스러워지고, 온몸을 칭칭 감싸고 있던 방한용품들도 성가시게 느껴진다. 백화점이나 마트에는 재고로 잔뜩 남은 겨울 용품들이 '올해는 틀렸구나...' 하는 눈빛으로 진열대 위에 마구잡이로 누워있다.  


겨울의 끝자락에 바닥을 보고 걷다보면, 잃어버린 장갑들을 생각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얼마 전 장갑을 잃어버렸다. 그것도 한 짝을. 내가 간디 같은 성인은 못되는지라 한 짝을 잃어버렸다고 다른 한 짝까지 버려두고 갈 수는 없기에 나머지 한 짝은 꼼짝없이 장롱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나는 예전에도 이따금씩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왜 장갑은 꼭 한 짝씩 사라지는 걸까? (오죽하면 어린아이들이 쓰는 벙어리장갑에는 끈이 달려 나오기도 하니까...) 


내가 이번에 잃어버린 장갑은 지난겨울 엄마에게 선물 받은 가죽장갑이었다. 두께에 비해서 퍽 따뜻한 편도 아니었고, 스마트폰 터치도 안 되다 보니 솔직히 말해서 크게 '애정'을 두는 장갑은 아니었다. (지난 편 참고) 그런데 나의 이런 마음을 장갑이 눈치채기라도 한 걸까? 장갑이 사라졌던 그 날은 내가 늑장을 부리다가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가느라 눈에 바로 들어온 가죽 장갑을 오랜만에 집어 들었던 날이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장갑 한 짝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언제,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게 말이다. 자주 끼는 장갑은 아니었어도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것 자체로 찝찝한 마음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다음 날, 나는 내가 어제 다녔던 동선을 따라다니면서 장갑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장갑을 찾지는 못했다. 


그리고 며칠이 흐른 뒤, 나는 나머지 한 짝의 장갑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이토록 이별과 정리에 빠른 사람이었던가?' 스스로도 놀랄 만큼 평소 같지 않은 빠른 결단이었다. 결단이 서자 잃어버린 장갑과의 진짜 이별을 실행하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아마도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장갑이 돌아올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장갑이 나에게 그렇게까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것도 장갑과의 이별을 독촉하는 데 한 몫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내가 장갑을 버린 그 날, 나는 잃어버렸던 장갑 한 짝을 '찾고야' 말았다.

차라리 돌아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장갑을 찾게 된 것은 뜬금없게도 목걸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목걸이는 내가 정말 아끼던 물건이었다. 심지어 착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목걸이 었는데, 어느샌가 목이 허전한 느낌이 들어 거울을 보니 슬프게도 기분 탓이 아니라 진짜로 목이 휑했다. 나는 목걸이를 정말 죽기 살기로 찾아다녔다. 잃어버려도 되는 물건, 안 되는 물건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장갑을 찾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백방으로 목걸이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목걸이는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대신 자동차 운전석 밑에서 잃어버렸던 가죽장갑이 나타났다. 이제는 찾지도 않는, 심지어 나머지 한 짝마저 버려 다시 쓸 수도 없는 장갑을 발견한 그 순간, 나는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못했다. 그냥 왠지 모르게, 미안했다. 


분명 내가 신경을 써주지 못해 사라졌을 터인데, 

그마저도 열심히 찾아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장갑이 한 짝만 없어진 것은 분명 내가 어딘가에 의도적으로 두고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몸으로 직접 버리지 않은 물건이라도 내 마음이 이미 그 물건과 멀어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따뜻한 봄의 기운을 만끽하느라, 지나간 것들이 아닌 새로운 것들에 신경 쓰느라, 소홀했던 틈을 타 사라져 버린 장갑에게, 그리고 지나간 겨울들에게 먹먹함이 드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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