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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호 Jul 18. 2024

수영복을 입어볼 때 주의할 점

패턴, 디자인, 사이즈, 커팅, 백스타일보다 중요한 것!

"안녕하세요! 수영강습을 받고 싶어서 왔는데요. 다음 달 초급반 신청이 가능할까요?"

"네, 신청 가능합니다. 여기 시간표와 강습료를 보시고 선택하시면 됩니다."

 드디어 내가 수영에 발을 딛는 것인가? 연초에 수영을 배워보자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방학과 새 학기가 겹쳐 4월로 시작이 미뤄졌다. 그래도 어떻게 잊지 않고 수영장 카운터 앞에 서 있는 내가 신기하다. 이곳은 오래된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는 사설 수영장이다. 계단을 통해 내려오면서 통창으로 수영장이 조금 보이는데 규모도 작고 아늑한 분위기라 왠지 무섭지 않았다. 수영장 직원이 내민 시간표에는 매일반, 주 3회 반, 주 2회 반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주 2회 반을 선택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애초의 계획은 첫 달엔 매일반을 들어가 보자였는데 그 생각은 카운터 앞에 서자마자 머릿속에서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사실 일주일에 세 번도 무리가 될 것 같았다. 강습료는 135,000원. 주 2회 총 10회 강습을 받는데 이 금액이니 1회당 13,500원 꼴이었다. 전체금액은 조금 비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1회 기준 강습료를 보니 수긍이 갔다. 요즘 시세에 단체요가수업도 1회에 10,000원이니까. 수영장 시설은 요가원보다는 관리비가 더 들어갈 테니까 말이다. 준비물로는 수영복, 물안경, 수영모자 그리고 샤워용품을 챙겨 오면 된다고 했다. 그래 이제 시작하는 거야. 수영.   


 등록은 마쳤고, 이제 준비물을 챙겨야 할 차례다. 수영 강습 이주일 전이니까 천천히 골라볼까 하고 인터넷으로 우선 수영복을 검색했다. 당연히 무난한 디자인의 검은색 수영복을 사야지. 수영도 못하는데 수영복 색깔이나 디자인이 화려하면 부끄러우니까. 그러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초보일 때 어떤 수영복을 입을까 궁금해졌다. 유튜브에서 '수영복'을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수영 초보의 수영복에 관한 짧은 영상을 나왔다. 그 영상의 요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수영복엔 아무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초급반 학생들은 모두 검은색 수영복만 입고 온다며 검은색 수영복 1, 검은색 수영복 2, 검은색 수영복 3.... 이런 똑같은 색의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물에 뛰어드는 모습을 참고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어머 쟤는 초급인데 빨간 수영복을 입었네?"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며, 그냥 자기가 입고 싶은 색을 입으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수영복을 찾아볼까? 잠깐, 그런데 이 사람. 이런 영상을 찍었으면 다른 사람들의 수영복을 봤다는 거잖아? 검은색만 입는 초급반 학생들을 본 거잖아! 그래, 어쨌든 검은색 수영복만 피하면 되겠다.


 인터넷에서 수영복을 검색하니 실내수영장에서 착용 가능한 디자인의 수영복만 보는데도 종류가 다양했다. 국내 브랜드만 해도 딜라잇풀, 루프루프, 르망고, 리얼리굿스윔, 배럴, 센티, 움파, 풀타임 등이 있었고, 해외 브랜드는 나이키, 아레나, 졸린, 펑키타 등 무궁무진했다. 나는 나이키와 아레나 수영복만 알고 있었는데 수영복 홈페이지를 검색해서 들어가 보니 브랜드 별로 수영복의 특색이 뚜렷했다. 색깔로는 검은색은 기본이고 무난한 남색, 초록색, 보라색이 많고 조금 튀는 노랑, 연보라, 하늘, 반짝이까지. 패턴이 있는 수영복도 요란한 물결무늬, 카펫처럼 화려한 문양이 들어간 것도 있었다. 그리고 수영복 디자인은 '커팅라인'에 따라 나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커팅라인은 다리와 몸통을 잇는 수영복의 라인이 얼마나 몸통 쪽에 가까운지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엉덩이와 고관절 부분을 제일 많이 덮어주는 안정적인 디자인이 로우컷, 그리고 중간정도 덮어주는 것이 미들컷, 제일 많이 파인 것이 하이컷이다. 하이컷을 입으면 고관절뿐만 아니라 엉덩이의 반 정도가 드러난다고 보면 된다. 이 정도의 차이가 물속에서 발차기를 할 때 다리의 움직임을 조금 더 편하게 한다는데, 엉덩이가 큰 나는 무조건 로우컷에서 골라야지 다짐한다.   


 또 수영복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이 '백(back) 스타일'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수영복의 등 파임 정도와 모양은 U백, V백, X백, 타이백으로 나눌 수 있다. U백은 수영복 뒷면이 영어 U자 모양으로 파인 디자인이다. 어깨 끈이 두껍게 나왔기에 노출이 적고 입고 벗기가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V백은 어깨끈이 U백 보다 얇고 등의 정중앙에 끈이 위치하기 때문에 U백보다는 입고 벗기가 힘들지만 더 예쁜 것 같다. X백은 크로스백이라고도 부르는데 끈 두 개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입을 때 끈이 꼬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더블 크로스백 디자인은 여러 개의 끈을 뒤로하고 발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입을 때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마지막으로 타이백은 어깨끈 길이를 내 몸에 맞게 조절해서 직접 끈을 묶어서 입는 것이다. 그런데 수영강습을 받을 때 끈이 풀리면 곤란하기 때문에 강습용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무늬만 타이백인 디자인도 나온다. 이미 크로스 백이라 등 부분을 모두 잡아주는데 괜히 아래에 묶는 끈이 더 달려있어, 그 끈을 묶는 것이다. 그래도 타이백이 제일 예쁘다. 종합해 보면 수영복을 고를 땐 색깔, 수영복 커팅, 백 스타일,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골라야 한다. 사실 이외에도 소재는 어떠한지, 브라캡 고리가 있는지 없는지, 이중 안감인지 한 겹 안감인지 브랜드별로 사이즈는 어떠한지 등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고르고 고르다가 결국 강습날까지 수영복이 도착하지 않을 불상사가 생길 것 같아서 결정한 나의 첫 수영복은!!! 바로 '검은색 꽃무늬 수영복'이다. 에잉? 이렇게 나의 소심함의 스케일이 드러나고야 마는 것인가. 검은색만은 고르지 말자고 했는데, '블랙이어도 꽃무늬잖아.'라고 외쳐본다. 덧붙이자면 이 디자인이 검은색 이어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내가 본 수영복 중에 제일 이뻤다고! (누가 뭐라고 했나?) 같은 사이트에서 함께 주문한 물안경이 품절되고 다른 디자인을 다시 고르고 하느라 (그런데 수영복이 아니라 물안경 고르는데 조금 더 신경을 썼어야 하지 않나? 지금 와서 또 이런 생각이 드네) 수영복을 늦게 받았다. 빨리 입어보고 싶은데 말이지. 강습 일주일 전 수영복이 택배로 도착했고, 실제로 보니 정말 예쁜 디자인이었다. 과하지 않은 잔꽃무늬에 꽃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게 프린트되어 있어 좋았다. 사이즈도 적당한 것 같고, '굳이 입어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스쳤으나 혹시 모르니 입어보기로 했다. 딸아이는 벌써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나의 수영복 입은 모습을 찍겠다고 준비 중이었다.  


 초입부터 느낌이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이거 더블크로스백 디자인이잖아? 크로스백도 불편한데 더블 크로스백이라니 내가 왜 이런 디자인을 골랐지? 꽃무늬에 가려 안 보였겠지. 이 패턴으로는 다른 수영복 형태가 없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러니까 내가 산 수영복이 맞긴 한 거다. 나는 꽃무늬를 무척 좋아한다. 사실 무늬가 자기 마음에 들면 백스타일이고 수영복 커팅이고 재질이고 자시고 그런 것들이 안 보인다. 조심조심 오른발, 왼 발을 넣고 수영복을 끌어올리는데, 낀다. 허벅지가 안 들어갈 것을 예상했는데 그래도 허벅지는 어찌 들어갔다. 이제 팔을 넣어보자. 2차 난관. 들어가긴 했으나 세상에... 어깨끈이 나의 가슴과 어깨 사이의 살들을 둘로 나누면서 울룩불룩한 경계를 만들어 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서 얼른 수영복을 1초 만에 벗어 내리고 딸아이에게 핸드폰을 뺏어 바로 사이즈 교환 신청을 했다. "엄마 사진은 잘 나왔어." 어찌 그 찰나에 찍었는지... "그래 고마워. 그런데 이건 무리야." 그제야 수영복 판매사이트의 상품평에 '사이즈가 타이트하게 나온 편이다.'라는 후기가 보인다. 나는 결혼 전에는 옷을 고를 때 무의식적으로 S사이즈를 집어 들었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M사이즈를 고르는데 이 수영복은 M사이즈가 85라고 한다. 보통 90 사이즈가 M이지 않나? 내가 상품설명을 자세히 보지 않은 탓이다. 안 입어봤으면 큰 일 날 뻔했다.


 그런데 정작 큰 일은 이게 아니었다. 수영복을 벗은 뒤 허리가 삐끗한 느낌이 나는 것이다. 앉을 때도 설 때도 무엇을 주우려고 할 때도 특히 왼쪽 허리 쪽이 저릿저릿했다. 설마 수영복 때문일까 생각했으나 내가 오늘 한 일 중에 평소에 안 하던 일은 수영복을 입어본 일밖에 없었다.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수영복 입다 허리 삐끗’이라고 쳐보았다. 이런 검색어에 뭐가 걸리겠나 싶으면서도 세상에는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니까 같은 처지를 겪어낸 사람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검색 결과는. 어쩜 나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영복을 입다가 어깨가 골절될 뻔했다.', '손목 인대가 늘어났다.', '팔을 삐었다.', '뒷 쪽 끈 끌어올릴 때 그런 느낌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등등 수영복을 입다가 다친 사연과 댓글이 많다. 왜 이렇게 고맙지? 모두 수영복 착용 시 부상을 입은 동지들이다. 알아보니 수영복은 샤워를 하고 몸에 물기가 조금 있는 상태에서 수영복을 적셔서 입는 것이란다. 그나저나 이거 교환하면 첫 수업날 수영복 못 입을 것 같은데, 바로 배송되는 새로운 수영복을 또 사야 하나? 끌어올리다 허리 다치기 싫으니까 뒤가 훤히 파인 U백으로 살펴봐야겠다. 그리고 사이즈도 중요한데 그것도 작으면 어쩌지? 이러다 백화점에 직접 가서 입어보고 비싼 거 사는 거 아니야? 그나저나 내 허리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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