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도 뜨지 않을뿐더러 물을 무서워하는 40대 수영초보 이야기
예전에 누가 나에게 그랬다. "변비가 있을 때는 도서관에 가보세요. 진짜 효과만점이에요.“ 아쉽게도 나는 변비가 없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설사파) 도서관에만 가면 큰 일을 보고 싶어지는 느낌을 자주 받았기 때문에 그 말에 동의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다른 친구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신기해하며, ”우아,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도서관 화장실에 자주 갔지만 그게 도서관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그걸 거꾸로 변비에 이용할 생각은 못했어요.“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졌던 것 같다. 왜일까 생각하다가 우리끼리 그때 내린 결론은 종이냄새에 뭔가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우리는 모두 과민성대장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었던 같다. 우리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 내부의 문제였더누것. 알아보니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배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라고 한다. 어떤 정신적인 원인으로 교감신경이 흥분하면서 아드레날린, 코르티솔이 과다하게 분출되어 장기들을 수축시키면서 설사를 하게 되거나 갑자기 변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민성대장증후군에는 특별한 약이 없다. 평소와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도 불안하거나 긴장이 되면 설사를 하게 되거나 갑자기 대변이 마렵거나 배에 가스가 차는 등 복통이 온다.
아마 예전에 도서관에 가면 변비가 해결된다고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들은 책 읽기를 좋아하던 사람들이라 그랬던 것 같다. 도서관에 가면 읽고 싶은 책이 엄청 많이 있고,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내가 찾은 책 옆엔 읽으면 좋을 책들이 있고, 이 책도 보고 싶고, 저 책도 보고 싶고, 또 봐야 할 것 같고, 지금 안 빌려가면 누가 먼저 빌려갈 것 같고, 대출 권수에는 제한도 있고 들고 갈 수 있는 내 가방에도 한계가 있는데 어쩌지 하면서 일단 다 빼 들고 와서 열람용 책상에 앉는다.(교감신경 흥분) 한 권씩 목차부터 살펴보면서 신중하게 고르려고 하면 그때! 소위 급똥(급하게 마려운 대변)의 느낌이 오는 것이다. ‘아, 이 책들을 다 펼쳐놓고 갔다 와도 되나.’ 마음과 배는 더 힘들어진다. 이런 증상이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 알았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수업시간에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올 것 같아서 힘들었는데 이유도 알 수 없었고 집에만 오면 금방 괜찮아졌기 때문에 부모님께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근 30년 간 이런 이유를 모르고 살았다니... 너무 고통을 받았던 시간들이라 안쓰럽지만, 지금 내가 정확한 증상의 이름과 원인을 알고 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과민성 대장 증후군의 해결책은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라니. 스트레스는 내가 받고 싶어서 받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래도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단체생활에서 벗어나고, 사람들이 화장실 가는 문제에 있어서는 꽤 관대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지금은 일도 하지 않고 주부로 살면서 내 마음대로 나의 하루를 꾸려갈 수 있다는 것도 과민성 대장 증후군의 빈도를 적게 만들어 준 것 같다. 그래도 원래 장이 약하기 때문에 밀가루 음식과 찬 음식 같은 것은 주의해서 먹고 있다. 적절한 운동과 규칙적인 생활 그리고 소화가 잘되고 위장에 부담이 되지 않는 음식을 섭취할 것. 마음이 불안하거나 긴장이 될 땐 실전 대비 연습을 많이 할 것. 다 알지만 이 나이에도 가끔 교감신경이 흥분되면서 장이 예민해지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그게 최근엔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 결정한 수영강습이 원인이었다.
어제는 수영모자를 써 보았다. 수영장에서 수영모자를 못쓰면 출입이 안 된다니까 미리 연습해야지.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 실리콘 모자였다. 그런데 이렇게 매끈한 고무를 나의 소중한 머리털을 지키면서 쓸 수 있는 것일까? 어디서 들었는데 머리에 물을 묻히고 써보면 더 잘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저녁에 샤워하기 전 수영모자를 가지고 욕실로 들어가서 머리를 감은 뒤 심호흡을 하고 머리에 써 보았다. 수영모자 쓰기가 어렵다는 말이 많던데 정말 써보니 머리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미끄러졌다. 오죽하면 유튜브에서 ‘수영모자 쓰는 법’을 검색하면 영상이 우수수 쏟아진다. 특히 어떤 외국인이 발 한쪽을 실리콘 모자에 넣고 모자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은 영상은 정말 울고 싶은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대체 이 미끌거리는 모자를 어떻게 쓰라는 거지? 영상 속에서 숙련자가 손모양을 돔처럼 만들어서 앞부분을 이마에 딱 붙이고 0.1초 만에 뒷머리까지 쏙 넣어버리는 신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게는 안 써진다. 나는 모자의 앞부분을 조금 뒤집어 놓은 채로 이마에 고정시키고 뒤로 한껏 늘려서 써보는데 뒷 머리가 모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써지긴 써진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누가 나를 좀 도와주려나. 울고 싶다.
수영가방도 다시 점검한다. 다른 사람들은 수영장 가방에 어떤 것을 넣고 다닐까 궁금해서 유튜브에 '왓츠 인 마이 스윔백'으로 검색해 보았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영상을 올려두었다. 감사하다. 수영장 가방으로는 예쁜 방수가방이 많지만 결국 목욕바구니로 가게 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물이 잘 빠지는 플라스틱 목욕바구니를 준비하고 수영복, 물안경은 수영모자에 넣었다. 그리고 샴푸, 바디클렌져, 페이셜폼 이 세 가지는 염소제거성분으로 준비했다. 마지막으로 얼굴에 바를 에센스와 로션, 선크림을 챙겼다. 이런 화장품 종류는 물에 젖지 않도록 작은 실리콘 가방을 또 사서 그 안에 넣었다. 이렇게 챙길 것이 많으니 아이들과 물놀이 갈 때 짐이 그렇게 많은 거구나. 나 혼자 수영장에 가는데도 이 정도이니... 또 중요한 것으로 머리를 묶을 머리끈을 챙겨야 한다. 예비로 챙기는 머리끈은 샴푸 입구에 둘둘 말아 놓았다. 혹시 머리끈을 안 가져왔을 때 샴푸입구에 있으면 머리 감으면서 바로 묶을 수 있으니. (꿀팁) 마지막으로 수영장 회원카드는 비닐 지갑을 마련해서 그 안에 넣고 키링을 매달아 두듯이 목욕 가방에 연결해서 달아두었다.
오전 10시 수영을 하기로 했으니 15분 전쯤 도착해서 샤워하면 되겠지? 겨드랑이 털과 다리의 털도 조금 정리하고 가야지.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수영장 내부 구조가 어떨지 그려지지 않는다. 제일 궁금한 것은 '목욕바구니를 어디에 두고 들어가는가'다. 가면 어쩔 수 없이 다 하게 될 일인데도 미리 알고 싶다. 강습을 등록하고 나서는 궁금한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니까 교감신경이 엄청 빠르게 반응한다. 하루하루 수영장에 갈 날짜가 다가올수록 더 세부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떠올랐다. 인터넷상에도 수영첫날에 대한 내용이나 수영장과 탈의실의 구조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너무 자연스럽고 별 일이 아니어서일까? 나는 일단 물이 무섭고 수영장은 두렵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수영장에 들어가기까지의 상상을 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몇 명이 수업을 같이 들을까? 첫날엔 무엇을 배울까? 수업 중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쩌지? 선생님은 남자일까 여자일까 그보다는 친절한 사람일까, 무서운 사람일까, 사무적인 사람일까? 내가 물에도 안 뜨고 물도 정말 무서워한다는 것을 언제 이야기해야 할까? 이야기할 시간은 있을까? 내 목표를 말하라고 하면 나는 '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 물에 뜨는 것. 어떤 영법으로든 물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해야지. 드디어 내일이다. 얼른 자야지. 아니, 수영에 관한 영상 한 개만 보고 자야지. 그나마 유튜브가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읍! 나는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