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살이
'내 집'에서 사는 것과 '남의 집'에서 내 집처럼 사는 것은 다르다.
나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남의 집'을 전전해왔다.
다행히 서울에 친척들이 있어서 신입 수습기간 3개월 정도는 생활비 정도만 내며 얹혀살 수 있었다. 사실 타지에 있는 직장을 계속 다닐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월세든, 전세든 집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당장 서울에 집을 구할 돈이 없었던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운이 좋게도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 머무르며 약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보게 되는 눈치에 불편하여, 전셋집을 구할 때까지 잠시 원룸텔로 집을 옮겨 3개월 정도 지내다가 전셋집을 구해 나왔다.
친척집도,
원룸텔도,
전셋집도,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공간이다.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함만 없으면 그냥저냥 지내게 된다.
'어차피 떠날 건데'
'적당히 지내다가 이사 가지 뭐.'
가끔 전셋집(또는 월세집)인데도 많은 돈을 들여 이쁘게 꾸미는 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
그분들은 '주거 만족도 > 돈'인 것 같다.
나는 내 집이 아닌데 내 돈 들여 남의 집을 꾸미는 건 싫었다.
그 돈을 모아 하루빨리 이사 가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살았던 오피스텔은 우리 집 창문 2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새로운 오피스텔이 들어서면서 해를 완전히 막았다. 집이 컴컴해지면서 동굴처럼 바뀌었다. 만약 내 소유의 집이었다면 억울했을 것 같지만, 세입자인 나는 생활이 불편해져서 이사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집주인 말로는 이렇게 가까이 건물이 생기는 거면 생길 때 가림막(?) 같은 것은 요구해 볼 수 있었을 거라고 하긴 했다.
또, 어느 날 집 앞으로 위층 에어컨 호스가 지나갔다. 이것도 충분히 컴플레인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집에 잘 있지 않는 데다 해가 안 드는 집이라 하루종일 커튼을 쳐놓고 생활을 했기에 조용히 지냈다. 이후 집주인이 우리 집에 와서 보고는 바로 컴플레인하러 가더라. 이것이 집주인과 세입자의 차이인가 보다.
또 화장실 문과 문틀이 오래돼서 나무가 벌어지고 문이 상해도 그냥 적당히 메꿈제로 채워놓고 지내기도 했다. 내 집이었다면 문짝과 문틀을 당장에 교체했을 것 같다.
벽 콘센트 하나가 막혀서 멀티탭으로 생활하기도 하고,
20년 정도 되어 덜덜거리는 옵션 에어컨과 냉장고를 써야 하다 보니 그냥 집에서 뭘 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조금은 짠내 나기도 하네...
주변에 보면 갑자기 전세금을 높게 올려달라 하거나, 아니면 집주인이 들어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는 일도 꽤 있었다. 전셋집을 전전하는 동안 집값은 더 올랐다고 한다. 거기에 이사비용에, 새로 집 알아보는 스트레스까지... 이루어 말할 게 없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던 게 전세 집주인이 전세금을 크게 올려달라 하지도 않았고, 꽤 오랫동안 그 집에 살 수 있었다.
전셋집이지만 마치 내 집처럼 살 수 있었다. 약 10년이면 거의 내 집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집'이 아니어서 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내 집이 아니라 하지 않기도 하고, 할 수 없기도 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