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제발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하는 직업을 가지길 간절히 원했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직업은 더울 땐 그 누구보다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땐 그 누구보다도 춥게 일하는 직업이다.
특히나 한 여름에 제작부는 물 그리고 얼음과의 싸움이다.
무더운 여름에 땀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는 스탭들에게 차가운 물을 제공하기 위해서 아이스박스에 끊임없이 물과 얼음을 채운다. 아이스박스를 3개씩 들고다녀본적도 있지만 38도에 육박하는 더위에 얼음과 물은 항상 모자르다.
다 먹지 않으면 큰일나는 아이스크림
아이스박스 내의 물이 녹으면서 찰랑거리면 여러 스탭들의 손이 왔다 갔다하면서 위생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러면 또 아이스박스를 뒤집어 엎고 청소와 소독도 해야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장소면 이미 얼음과 물이 가득찬 아이스박스를 들고 낑낑거리며 올라간다. 산이나 언덕같은 흙길을 올라갈 때는 아이스박스고 뭐고 집어 던지고 싶다.
선풍기를 요구하시는 감독님들께는 무선 선풍기도 충전해서 가져다 드려야 하고 스탭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포도당 캔디도 상시 구비해놓는다. 가끔 한 여름에 구덩이에 배우가 들어가야 하는 촬영을 진행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보통 제작부에서 구덩이를 미리 파놓고 안에 의자도 갖다놓고 배우가 덥지 않도록 엄청난 양의 얼음을 넣어놓는다.
그래도 세트장에 들어오면 한결 나아진다.
제작부는 세트 촬영 30분전쯤 미리 세트에 도착해서 전체 에어컨을 빵빵하게 미리 틀어놓는다. 세트장 중에 에어컨바람이 순환이 잘 되지 않거나 에어컨의 위치가 애매한 세트장의 경우 자바라를 설치하는데 자바라를 사기 애매한 경우 롤비닐과 김장비닐을 이용해서 수작업으로 자바라를 제작하고 설치한다.
민원이 들어오는대로 자바라를 연장하고 설치하다보니 거의 전문가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서 차라리 직업을 바꿀까 한 적도 있었다. 귀찮고 고생인 일이긴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좁은 세트장에 엄청난 열기의 조명이 켜지는 순간 스탭들은 정말 쪄죽는다.
이렇게 별 거 아니고 조그마한 순간에도 사명감을 찾는다 나는.
그렇지 않으면 진짜 너무 버티기 힘들 것 같아서.
롤비닐을 이어붙여 만든 자바라
체질적으로 더위에 매우 약한 나는 정말 여름 촬영이 되면 이러다가 정말 쓰러지겠구나. 생각이 든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여름이 되면 항상 야외에 나가기 전에 두통약을 먹고, 밥 먹으면 체할까 싶어 밥도 거의 먹지 않고 밀짚모자에 쿨토시에 포도당에 얼음주머니에 얼음물에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항상 시름시름앓다가 토하고 토하고 또 토해서 같은 팀원들에게 민폐 아닌 민폐를 끼치게 된다.
시기를 잘 맞춰서 한여름만은 피해야지, 피해야지 했는데 작품을 한 번 한여름에 시작해놓으니 주기가 항상 한여름에 시작하는 작품으로 돌아와서 꼭 한여름에 시작해서 한 겨울에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