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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룡 Feb 13. 2023

3. 나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3)

* 우울에 대한 솔직한 감정이 들어있습니다. 읽기 힘드신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생각해보면 내 우울은 어느순간부터 만성이었다. 

나는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줄 알았다. 

주변의 친구들이 '그냥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다. 그냥 돌이 됐음 좋겠다.' 와 같은 삶에 지쳐 내뱉는 말들과 같은 감정인 줄 알았다. 일이 하기 싫으면 모두 죽고 싶은 건 줄 알았다. 


친구가 일이 너무 힘들다 길래 그래서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어?라고 했더니 당황하며 "읭? 일이 힘들다고 왜 죽고 싶어?"라는 반응을 들었을 때, 아 나는 뭔가 잘못됐었던 게 맞구나. 를 알았다.


나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던 걸까.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졌던걸까.

그래도 남아있는 어떤 이성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 순간 날 정신건강의학과로 이끌었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우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사실 강박보다는 우울때문에 병원에 방문했지만. 

'저 지금 우울해요.'라고 말하는 게 엄살같이 느껴졌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만큼 힘들꺼고 대부분 나만큼 우울할꺼니까.


그렇지만 거금을 들여 진행한 종합심리검사에서 보기좋게 주요우울장애와 강박장애에 대한 진단이 내려졌다.

뇌파 검사는 온통 빨갛고, 파랗게. 번아웃의 전형적인 뇌파 검사 결과가 나왔다.


강박증으로만 상담받았을 때 처방받던 한 알의 약이 여섯 알로 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

대부분 울적했고 가끔 즐거웠다.


울적할 때는 그냥 마음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실컷 울기라도 하면 나으련만. 울고 싶지만 눈물은 나지 않는 날들이었고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초조하다가도 갑자기 아무생각이 안들고 멍해졌다. 

하루에 12시간도 넘게 잠을 잤다.  


약을 복용하고 세 달 정도 지나니 조금씩 생활패턴이 찾아졌다.

내가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는 사실은 나 스스로에게도 꽤 충격적이었다.

평상시에 정신건강의학과에 큰 편견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 당사자가 나라는 건 다른 의미였다.


나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던걸까.

내가 이렇게 된(?) 이유를 혼자서 곰곰히 생각해 볼 여유도 생겼다.


쏟아지는 수많은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와 거기서 인정받아야 다음 일자리가 있다는 프리랜서의 삶,

그 조그마한 현장에서 벌어지는 정치싸움 등이 날 힘들게 만들었다.

타고난 완벽주의 성향도 날 힘들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였다.

나는  촬영 준비에 전혀 지장이 없는, 모래알만큼의 오차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일이 천직인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님을 인정해야 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잘하는 사람이 남는 판이 아니라 버티는 사람이 남는 판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게 이런 말이었구나. 


병원에서는 전직을 권유했으나 이제와서 그럴 순 없었다.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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