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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ge Erica Jun 24. 2019

강압적인 부모가 말 안 듣는 아이를 만든다.

작년 겨울, 아이들 사이에 슬라임(액체 괴물이라고도 불리는 끈적끈적한 장난감)이 유행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우리 집 막내도 슬라임에 푹 빠져 있었다. 아들은 용돈을 모아 슬라임을 샀다. 하지만 슬라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었다. 형 옷과 이불에 슬라임을 묻혀놓아, 할머니께서 강제로 슬라임을 버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화가 난 아이는 자기 돈으로 산 것을 허락 없이 버렸으니 다시 사 내라고 떼를 썼다. 버릇없이 군 일은 잘못이었지만, 아이의 말도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 나는 막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함부로 버려서 속상했지? 엄마도 엄마의 소중한 것들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하면 화가 날 것 같아. 네가 형의 옷이랑 이불에 슬라임을 묻게 한 건, 너의 소중한 것으로 다른 사람의 소중한 것을 함부로 한 거니까 잘못한 거야. 그리고 요즘 뉴스에서 보면 슬라임이 몸에 해로운 성분들이 들어있다고 하던데 엄마는 그것도 솔직히 걱정이 돼.      


아이는 이 말을 듣더니 더 이상 변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피해를 준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졌다. 이불과 형 옷은 본인이 빨기로 했다. 나는 세탁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며칠 후, 막내가 요즘 자기가 보고 있다며 슬라임 만드는 방법에 관한 동영상을 들고 왔다. 직접 만드는 것은 유해 물질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했다. 나는 동영상을 집중해서 보았다. 아이는 내 옆에서 앉아 어떤 재료들이 필요하고 어떻게 만들지 스스로 구상한 것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보면서 아이의 설명을 들으니 아이가 직접 슬라임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적어보고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잡화점에 방문했고, 나는 아이가 직접 물건을 고르는 동안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이는 신중하게 도구를 골랐으며, 본인이 조심성 없는 성격이라는 것까지 고려하여 안전한 도구를 찾았다. 아이는 그날부터 슬라임을 만드는데 집중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과학자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아이가 슬라임을 만들고 나서 자신의 장난감 도구를 스스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엄마 너무 뿌듯해. 내가 이렇게 놀고도 다 정리를 하다니.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는 아이는 자기조절능력(self-regulation)1이 높다. 부모의 양육태도와 부모-자녀 간 상호작용은 자녀의 자기조절능력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한 아이는 청소년기에 학업성적이 낮고, 폭력성이나 우울증과 같은 외적 내적 문제 행동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2.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의 자기조절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까? 핵심은 부모의 소통 능력에 달려있다. 발달심리학자인 그라지나 코찬스카3는 “아이에게 지시를 내릴 때, 엄마의 태도가 아이의 자기조절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녀는 엄마들에게 두 가지 상황을 제시했다. 한 가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만지지 못하게 하는 금지 상황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아이에게 어질러진 장난감을 혼자 치우게 하는 요청 상황이었다. 코찬스카는 두 상황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내리는 지시가 얼마나 강압적이었는가를 평가했다. 결과는 확연했다. 엄마의 지시가 강압적이고 폭력적일수록 아이는 장난감을 더 많이 만졌으며, 장난감을 치우는 일을 더 빨리 포기했다. 이와 달리 엄마가 아이에게 금지 규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요청 상황을 수행했을 때의 긍정적 결과를 이야기해준 경우에는 아이가 자신의 통제력을 잘 유지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과 주변을 통제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외부에서 나를 통제하려고 하면 심리적 반발심이 생기고, 자신의 통제감을 회복하고자 한다4. 이런 통제감의 욕구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있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에게 지시와 요청을 내릴 때는 아이의 통제감을 존중해야 한다. 다시 우리 집 막내아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할머니의 강압적인 태도(슬라임을 버린 일) 아이의 반발심(떼를 쓰고 화내는 상황)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아이에게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다른 사람의 소중한 것을 함부로 하면 그 사람이 속상함) 설명하자, 아이는 납득하고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형의 옷과 이불을 세탁)졌다. 또 슬라임의 유해성(뉴스에서 보도된 사실문제)에 대해 걱정스러운 부분을 이야기해주니, 자신이 슬라임을 직접 만드는 방법을 제시했다. 자신의 통제감을 존중받은 아이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정리 정돈하는 습관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양육자의 강압적 태도보다는 부드럽고 논리적인 태도가 아이의 자기조절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자기조절능력을 키워주고 싶다면, 부모가 먼저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와 대화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1자기조절능력(self-regulation): 행동의 의도 또는 계획을 시도하고 유혹적이기는 하나 금지된 행동, 상황에 대해 부적절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억제하는 능력, 행동을 기다리고 유보하는 능력, 만족을 지연시키는 능력, 자기 관리 능력 (출처: 김미경 (2002). 유아의 발달에 따른 감정조절능력에 관한 연구. 유아교육학논집, 6(1), 131-149.)

2김준경, 이수연, 이윤주, 정종진, 최웅용 (2016). 『상담학 사전』, 학지사.

3Kochanska, G., Coy, K. C., & Murray, K. T. (2001). The development of self‐regulation in the first four years of life. Child development, 72(4), 1091-1111.

4곽금주(2008), [세상읽기] 말라는 것을 하고 싶은 심리,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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