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렌다.
9월 1일 금요일, 나의 학교는 개강을 했다. 1년 여의 휴학을 끝내고 드디어 다시 나의 본분인 학생으로 돌아왔다. 이번 휴학은 1년이었으나, 출석도 제대로 하지 않았던 2016년 봄 학기와, 행정고시 준비를 한다며 휴학을 했던 2015년을 감안하면 내 복학은 거의 3년만이었다. 2년 반 동안 나는 학생이란 직업과는 담을 쌓았다.
9월 1일은 나의 개강일인 동시에, 제주에서 서울로 향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 말은, 내가 올해 갈 수 있는 마지막 여행을 끝내고 진정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기 싫은 것들과 해야만 하는 일들로 가득한 일상은 생각만으로도 나를 피곤하게 했다. 남미 여행을 했을 때에도 과거에 살았던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괜스레 가슴이 답답해 지기도 하고, 왠지 모를 패배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살 때에도, 개강 이후의 삶을 생각해보면 막막하고 눈 앞이 깜깜했다. 그렇게 걱정하던 복귀, 복학이었다.
김포행 비행기에 발을 딛고 한 시간쯤 흘렀을 때, 나는 다시 복잡하지만 익숙해서 약간은 지루한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내 등에 집채만한 배낭을 메고 있었으므로 학교에 가기 전 지하철 역 물품보관함에 3000원을 내고 등딱지를 맡겼다. 그렇게 학교에 들어섰다. 나는 햇수로 6년 째 학생이다. 6년을 같은 건물에서 생활하고 그 주변을 쳇바퀴 돌듯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더이상 이곳에서의 설렘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수업을 딱 한 과목 듣고 다시 학교 밖으로 나왔다. 무거운 배낭을 다시 꺼내,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나를 맡겼다. 한국에 없던 5개월 정도는 물론이고, 한국에 돌아와 생활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그 두 달 동안 지하철을 탔던 적이 손에 꼽았다. 이제는 매일매일, 학교를 갈 때도, 아르바이트를 갈 때도 탈 생각을 하니 갑자기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잠시 졸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해서 낮잠을 달게 자고 일어나 그 날의 하루를 잠깐 돌이켜보았다.
당연하게도 지루하고 지겨울 것만 같았던 학교에서의 하루와, 나의 쳇바퀴는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내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매일 마주쳐야 했던 일상이 달라 보였다. 그 일상은 너무나도 똑같았지만, 받아들이는 내가 달라져 있었다. 이래서 여행을 떠나는가 싶었다. 아니 꼭 여행이 아니라도 염세적인 마음으로 가득찼던 일상을 잠시 떠나는가 싶었다. 매일 마주했던 일상이 조금은 다른 감정과 시선, 그리고 이상한 설렘으로 다시 보이는 것. 일상에서 잠시 떨어지는 것은 나를 위한 충전인 동시에 나를 위한 '새롭게 보기'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일상이 신기해지면, 혹은 과거와 다른 감정과 어떤 작은 것이라도 긍정의 기운이 찾아오면 하루는 다시 길어지고, 내일이 기대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는 않았더라도, 그 익숙함이 나를 꽤나 지치게 할 수도 있다. 꼭 무언가를 잃지 않았더라도, 지친 나의 모습이 보였다면, 그 때는 내가 잠시 빠져나와야 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는 아닐까.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그 작은 신호를, 너무나도 작은 것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나를 생기 넘치게 해 줄 무언가가 있지는 않을까. 이 따위의 생각들은 정말 얼마 하지 않는 작은 것들이지만, 생각보다 내 삶에 큰 활력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조금 현생에 지쳤다면, 아등바등 매달리려고 힘만 빼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눈 뜨는 게 설레고, 학교 가는 길 지하철에서 보는 바깥 풍경도 흥미롭고, 오랜만에 만나 뵙는 우리 과 교수님들이 귀엽다. 하루 하루가 신이나는 나를 보면, 마치 여행을 하고 있던 때의 내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의무로 가득한 세상에서 도망나온 삶을 살고 다시 돌아가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한창 누릴 때의 즐거워하던 모습이 그 지겨웠던 일상에서 다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