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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게릴라 Mar 31. 2021

아니요, Je Ne Regrette Rien.

올리비에 다한,영화 <라비앙로즈>

그림출처 : 전보경 @bo_gyeong0409


저녁 파리 시내를 흐르는 센 강과 별빛처럼 반짝이는 물결, 폭이 넓지 않은 강의 양쪽을 연결하는 아담한 다리와 고딕과 보자르, 아르누보 풍이 뒤썪인 건축물이 늘어선 파리거리를 거닐 때면, 사랑과 낭만이라는 주제에 가장 적합한 나라가 프랑스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프랑스의 아름다운 정경만큼이나 우아한 분위기와 불어가 지닌 언어 자체의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적'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프랑스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함께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중음악이 바로, '샹송'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오늘 소개할 영화, <라비 앙 로즈>의 주인공인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가 있었다.



우리나라와 다른국가에서는 이렇게 <La vie en Rose>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개봉이 되었고, 프랑스에서는 2007년에 <La Mome>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이 영화는, 프랑스의 가수인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전기 영화이다.  La Mome은 어린 참새라는 뜻의 프랑스 속어로, 영국과 미국에서 사용된 이 영화의 제목인 'La vie en Rose'(라비 앙 로즈)는 피아프의 대표적인 노래 제목에서 유래되었다.


이 영화는 앞서 피아프(1974), 에디트와 마르셀(1983)과 에디트 피아프:밀회(1993)에 이어 발표된 에디트 피아프에 대한 네번째 전기 영화다. 감독을 맡은 올리비에 다한은 에디트 삐아프의 일생을 각본으로 쓰면서 그녀에 관한 책은 모조리 수집하여 읽었다고 한다. 감독은 에디트 삐아프를 우상화하거나 영웅화시키지 않고, 때로는 한없이 약하고, 악하기도 한 인간적인 에디트 삐아프를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감독은 3년의 제작기간을 거치며 흥행에 성공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가치 있고, 제작할 만하다고 느낄만한 의미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재밋게도 이 영화는 1980년 이후, 아멜리에(2001)와 늑대의 후예들(2001)에 이어 미국에서 세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프랑스어 영화이기도 했다.  또한, 마리옹 꼬띠아르가 2001년에 찍은 영화 <아름다운 기억> 이 후 두번째로 가수 역을 맡은 영화이기도 하다.  


올리비에 다한과 마리옹 꼬띠아르

마르세이유 아트 스쿨에서 미술을 전공한 올리비에 다한 감독은 이 영화에서 그만의 감각적인 연출과 영상을 보여준다. 올리비에 다한은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는 미술 작품도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영화 감독으로 데뷔해 자신이 직접 쓴 각본으로 연출까지 도맡아 작업했다. 올리비에 다한 감독은 이번 영화 <라비앙로즈>에서도 직접 제작, 감독, 각본을 모두 맡아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의 조화가 그만의 연출 능력을 잘 보여주었다. 또한 마리옹 꼬띠아르라는 배우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녀를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의 반열에 올리기도 했다.


이 영화는 마리옹 꼬띠아르라는 배우에게 인생 분기점이 되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 영화의 캐스팅 당시 영화 <아멜리에>에 오드리 토투가 먼저 거론되었지만, 감독은 확신을 갖지 못했는데. 그러던 중, 에디뜨 피아프와 닮은 그녀의 눈빛에 반해 캐스팅을 결정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인지도가 낮았던 마리옹 꼬띠아르를 캐스팅한다는 결정은 제작사를 비롯 모든 이들의 반기를 자아냈지만, "마리옹 꼬디아르가 아니면 아무도 이 연기를 할 수 없다."며 감독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꼬띠아르는 이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상, 영국 아카데미상, 세자르 상, 골든 글로브상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이 중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은 프랑스어로 연기한 영화 배우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상이었다. 이 후, 그녀는 <나인>, <인셉션> 등에 출연하며, 헐리웃까지 진출하게 된다. 영화를 보면, 왜 꼬띠아르가 이렇게 많은 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누가 꼬띠아르이고, 피아프인지 헷갈릴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마리옹 꼬디아르가 보이지 않고 정말 에디트 피아프가 나와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검고 어린 새, La Mome 피아프

에디트 피아프와 똑같은 마리옹 꼬띠아르의 분장도 눈여겨 볼 만하다. <라비 앙 로즈>는 8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을 받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음악상, 의상상, 분장상을 탄 영화로 분장이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실제 피아프는 키가 142cm로 어린시절 영양실조로 왜소했는데 마리옹 꼬띠아르는 키가 170cm가 넘는 장신의 배우다. 왜소한 피아프를 연기하기 위해 마리옹 꼬띠아르는 분장에 많은 시간과 연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후반부로 갈수록 피아프의 눈썹이 아주 얇고 진해지는데, 실제 피아프는 아주 얇게 화장으로 그려진 눈썹선만 가지고 있었다. 마리옹 꼬띠아르는 눈썹을 다 밀고 분장으로 그렸고, 퀭한 피아프를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거의 밀다시피했다. 이렇게 피아프로 변신하는데, 무려 5시간이 넘는 분장을 매번 했다고 한다.


또한 피아프의 화려한 영광과 대조되는 검은 옷은 그녀의 상징이기도 하다. 피갈거리에서 처음 피아프를 발굴한 카바레 '제니스'의 주인이었던 루이 르플레는 작은 키에 뿜어져 나오는 열정적인 그녀의 소리에 '라 몸 피아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무대에서 혼자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루이 르플레는 체구가 작은 피아프에게 검은 드레스를 입도록 권했는데. 실제로 피아프는 화려한 무대복을 구입할만한 돈이 없었지만, 더 이상 상복과 같은 검은 옷을 입을 필요가 없을 때 조차, 검은 옷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녀가 검은색 드레스를 고집한데는 자신의 삶처럼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노래하는 곡들에 화려한 옷이나 장식품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지 않나 추측해본다. 오직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노래로 평가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여윈몸으로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와 울부짓는 가운데서도 노래를 부르는 피아프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다. 특히, 마르셀이 죽은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처절하게 울부짓는 꼬띠아르의 연기는 정말 소름돋았다. 마르셀이 자신을 보러 뉴욕에 와 너무 기뻤던 피아프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그에게 주려했던 까르띠에 시계를 찾으며 차와 음식을 신나게 준비한다. 그런데 그런 피아프를 사람들이 바라보는데, 이에 피아프는 슬픈 표정을 짓는 사람들에게 왜 그러냐며 화를 낸다. 그리고 자신을 보러 뉴욕으로 오기 위해 탔던 비행기가 추락하여 마르셀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된다.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진 에디트는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절망하고 소리지르다가 달려간 곳은 바로 무대었다. 원테이크로 촬영했던 연출은 소름돋게 멋졌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마르셀 세르당과의 사랑을 생각하며 절망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때, 그녀가 부른 노래가 그녀가 직접 작사한 노래였던 '사랑의 찬가'였다.


사랑의 찬가

많은 남자들과 사랑을 했지만, 훗날 에디트 피아프는 자신이 평생 사랑한 남자는 단 한 명 마르셀 세르당 하나뿐이었다고 회고했다. 마르셀 세르당은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권투선수였고 그 즈음 미들급 세계 챔피언이었다. 그는 북아프리카계 프랑스인으로 신사적 매너와 탄탄한 외모로 많은 프랑스인의 사랑을 받았다. 마르셀 세르당은 에디트 피아프를 만날 당시 이미 세 아이를 둔 유부남이었다. 미국에 머물며 순회공연을 열던 에디트 피아프는 역시 경기를 위해 미국에 온 마르셀 세르당을 뉴욕에서 만났고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피아프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비행기를 타고 오던 마르셀 세르당은 비행기 추락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영화는 시간 순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회상하는 방법으로 흘러가는데, 구성이 좀 독특한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영화 시작에 에디트 피아프가 죽기 직전 굉장히 여위고 아파 보이는 모습이 보여지는데, 이 후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에디트 피아프의 관점에서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영화를 보는 동안, 사랑의 찬가, 빠담빠담, Non je ne regrette rie 등의 샹송 나오는데 이 곡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배경도 함께 볼 수 있어서 좋았다.


Non je ne regrette rie 이 곡은 마리옹 꼬띠아르가 조연으로 출연했던 <인셉션>에서도 대표 OST가 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꼬띠아르는 피아프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완벽하게 립싱크를 해 내, 호평을 받았는데. 후에 '그레이엄 노튼쇼'에서 다시 한 번 립싱크를 보여 화제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마리옹 꼬띠아르와 에디트 피아프는 뗄 수 없는 인연같다. 꼬디아르가 불렀던 에디트 피아프의 명곡인 '라비 앙 로즈' 역시 피아프가 이전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영화 <러브 미 이프 유 데어>에 삽입되기도 했다. 마리옹 꼬띠아르의 어릴 적 연기를 한 꼬마아이가 치마자락을 흔들며, "나, 나, 나나, 나나나." 흥얼거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라비 앙 로즈

에디트의 가장 유명하기도 한 이 곡은 이브몽땅과 사랑의 감정에 들떠 그녀가 직접 작곡한 곡이다. 그는 프랑스 남쪽 항구도시였던 마르세유에서 미국 웨스턴 풍의 노래를 부르던 무명가수였는데. 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독일군을 피해 파리로 와, 몰랭루즈에서 공연을 했다. 여기서 두사람은 첫눈에 반했고, 이 후 피아프는 무대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이 후, 이브몽땅은 피아프와 함께 출연했던 영화 <밤의 문>에 삽입된 <고엽>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피아프를 떠난다. 이브몽땅의 <고엽>은 재즈음악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으며, 살사 버전과 그레이 존스가 부른 디스코 버전으로 다양한 스타일로도 불렸다.


이브 몽땅을 만날 시기, 에디트 그녀의 인생은 장밋빛과 같았다. 에디트 피아프는 1940년 프랑스의 대문호인 장 콕토의 작품을 일인 연주하면서 완전히 슬럼프를 회복했다. 에디트가 다시 ABC 뮤지홀에 섰던 다음 날, 콕토는 "에디트 피아프는 재능이 넘친다.그녀는 흉내 낼 수 없는 여가수다.", "피아프 이전에 피아프는 없었고, 피아프 이후에도 피아프는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콕토는 에디트를 자신이 쓴 희곡의 무대에 세울 생각까지 했는데. 어쨌든 이 두 사람의 우정은 죽는 날까지 계속되어서 그녀의 죽음을 들은 병상의 장 콕토는 충격을 받아 4시간 후에 사망하기도 했다.


Non, Je Ne Regrette Rien(1960)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에디트의 마지막 히트곡.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기도 하다. 첫 번째 교통 사고 이후에도 공연을 다니다 4차례나 더 교통사고를 당한 에디트 피아프는 육신의 고통을 잊기 위해 모르핀에 의지하면서도 공연을 계속했다. 그리고  걷는 것조차 힘겨웠던 때 에디트 피아프는 마치 자신의 지난 삶과 현재를 대변하는 듯한 노래를 만났다.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요,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샤를 뒤몽 작곡한 이 노래를 에디트 피아프는 듣자 마자 마음에 들어 하며 자신의 공연 곡 리스트에 올렸다. 아픈 몸을 이끌고 에디트 피아프가 영혼을 끌어올려 부르는 노래에 사람들은 감동했고, 그 노랫말 깃든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생각하고 눈시울을 적셨다.


마지막에 해변에 홀로 앉아 뜨개질은 하는 에디트에게 여자기자가 인터뷰하는 장면이 있다. 기자는 여성들에게, 젊은 여성들에게,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에디트에게 계속 물어보는데. 거기서 에디트 피아프는 끊임없이 "사랑하세요."를 반복한다. 그리고 죽음이 두렵냐는 질문에서는 외로움보단 덜 무섭다고 답했는데. 외로움과 아픔이 점철된 삶 속에서 사랑을 끝까지 붙잡았던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녀가 진심으로 원했던 것들은 전부 사랑이었다. 마지막에 그녀는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노래를 향한 사랑, 마르셀을 향한 사랑, 아버지를 향한 사랑, 무대를 향한 사랑, 티틴을 향한 사랑. 그 모두를 위해 에디트는 노래했다. 그리고 모든 삶을 후회하지 않고, 사랑했다. 에디트가 마지막에 불렀던 곡, 'Non je ne regrette rien' 처럼.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세요.

세상의 가장 어둡고, 낮은 곳을 위해 그녀가 전하는 사랑의 찬가

우리나라에 알려진 에디트 피아프의 곡들은 사랑의 찬가, 난 후회하지 않아, 장미빛 인생과 같은 사랑의 노래인데. 그러나 그녀의 노래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의 슬픈 사랑이야기도 많다. 에디트 피아프는 수많은 공연과 레코드 취입을 통해 현대 샹송의 가장 대표적인 가수로서 이름을 날랐을 뿐 아니라 샹송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실제 그녀는 노래말을 쓰기도 하면서 다양한 재능을 보였는데, 400여곡의 노래 가운데 80여곡의 노래는 직접 썼다.


에디트 피아프는 이별하는 연인들, 평판이 나쁜 거리의 사람들, 선원, 창녀 등 이 세상에서 불행과 가난을 겪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노래했다. 그리고 그들이 불행과 시련속에서도 걸어가는 희망을 노래했다. 대표작으로는 1942년에 발표된 '아코디언 연주자'가 있다. 영화의 중간에 잠시, 이 곡을 부르는 에디트의 모습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런 그녀의 노래들은 샹송 리얼리스트, 사실주의 샹송에 해당한다. 이러한 샹송은 사회적 샹송이라는 더 큰 흐름에 속한다. 사회적 샹송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과 관련이 되는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 공장들이 들어서고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생겨난 계층 간의 갈등을 노래하는데서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 노동자들은 한 달 동안 일해서 받은 임금으로는 가족을 부양하지 못했다. 사회는 자신의 노동력으로 먹고 사는 노동자 계층과 이들의 노동력을 이용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부르주아 계층으로 양분화 되었다. 노동자들이 겪는빈곤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자와 어린이들이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여자들은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몸을 파는 것이었다.


영화 <라비 앙 로즈>에서 알 수 있었듯이 에디트 역시 할머니가 경영하는 매춘업소(유락)에서 몸을 파는 여인들 사이에 성장한다. 거의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었던 에디트를 그녀의 아버지가 거두어 다시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기는데. 에디트의 친할머니는 노르망디에서 매춘업소를 경영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에디트란 이름을 지어준 그녀의 아버지는 곧이어 1차대전에 참전하여 떠나버렸고 에디트는 할머니가 경영하는 매춘업소에서 몸을 파는 여인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유락에서 지독한 가난과 환경 탓에 에디트는  늘 영영실조에 시달렸고 각막염을 앓아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병이 나은 것은 에디트를 아끼던 티틴이 그녀를 데리고 성녀 테레사의 성지에 가서 기도를 올린 덕분이었다.


티틴은 매춘부 였지만, 에디트 처음으로 따뜻한 애정과 사랑을 주었던 사람이었다. 에디트는 아빠가 다시 찾아오기 전까지 유곽에서 매춘부들과 행복하게 살았던 기억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생계의 '수단'으로 여기며, 무뚝뚝하기 그지 없던 아빠가 에디트가 상점 속에 인형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부끄럽게 사다가 내밀던 기억도 에디트는 가지고 있었다. 어린 아이도 낳았지만 결국 뇌수막염으로 죽고 말았다. 그 때도 다시 에디트는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가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 모든 기억을 안고, 에디트가 마지막에 불렀던 노래가  'Non je ne regrette rien'이었다.


아뇨, 전혀요. 아뇨,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간에요. 내겐 다 똑같습니다. 아뇨, 전혀요. 아뇨,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나의 삶, 나의 기쁨은 바로 오늘 당신과 함께 시작될 테니!”


이 곡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삶을 마감했다. 프랑스 국민들은 그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애도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자신의 장례가 가톨릭 식으로 치러지길 희망했지만, 당시 보수적이었던 프랑스 가톨릭 교단은 거부했고 전해진다. 이혼과 자유로운 연애를 했던 여러가지 카톨릭 신자 답지 못한 그녀의 삶을 근거로 미사를 거부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프고 가난하고, 소외 받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했던 그녀의 노랫말에 깃든 에디트의 삶을 돌아볼 때 숙연해진다. 그녀는 사회적 편견과 율법 넘어,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 가장 높고 아름다운 노래를 선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에디트 피아프 그녀의 노래는 매력적인 목소리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그녀가 부르는 슬프고 고독한 노래의 가사처럼, 그녀의 삶과 그녀가 사랑했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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