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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게릴라 Dec 09. 2021

사랑 한 스푼, 꿀 한 스푼, 햇빛 한 줄기의 비밀정원

실뱅 쇼메, 영화<마담 푸르스트의 비밀정원>

 동화를 보는  같은 독특한 구성과 예쁘고 보헤미안 빈티지의 아기자기한 배경과 소품. 뮤지컬 형식의 내용진행과 경쾌한 연주, 따뜻한 영상미가 매력적인 영화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정원>.  영화는 뒤틀리고 왜곡된 기억의 저편에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싱그러운 초록식물이 가득한 정원에서 마시는 따뜻한 홍차 한잔과 달콤한 마들렌으로 위로한다.   

영화의 시작은 'ATTILR MAREL' 노란색 로고가 크게 박힌 진홍색 자킷을 입고, 흥얼거리며 걸어가는 남자의 뒤 모습을 따라간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돌린 남자가 험악한 얼굴로 지르는 아우성에, 주인공 폴은 악몽에서 깨어난다.  


부모님을 여윈 폴은 어린나이에 그 충격으로 말을 잃은 채, 두 이모의 지극한 때론 지독한 관심아래 길러진다. 그를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었던 두 이모의 극성인 지원과 격려로. 폴은 작지만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고, 아마추어 피아노대회에 나가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폴은 자신의 피아노를 조율해주는 맹인 할아버지를 따라 레코드판을 가져다주러 갔다가 우연히 마담 프루스트의 집을 방문하게 되는데. 조금은 엄숙하고 어두침침한 공간을 뚫고 가려진 커튼을 걷어내자, 동화에서 나올 법한 예쁜 정원이 펼쳐지고 그 때, 치렁치렁한 히피 복장을 한 마담 프루스트가 등장한다. 그녀는 기억을 잃은 폴에게 선뜻 홍차와 마들렌을 대접한다. 이 영화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원작으로 소설에서도 마들렌이 등장하는데.


프루스트 효과, 마들렌


출처_네이버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있는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졌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 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5p)


소설에서 주인공 마르셀은 마들렌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을 먹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황홀함에 젖어든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어린 시절 기억들이 떠오르게 되는데. 이 소설은 향기로 기억이 환기되는 현상인 프루스트 효과를 의식의 흐름을 통해 전개해나간다. 프루스트 현상은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향기에 자극을 받아 기억을 하는 일을 말하며, 이 소설에서 유래되어 필라델피아에 있는 헤르츠 박사팀에 의해 입증된 바 있다. 연구팀은 과거에 사건과 기억들이 뇌의 지각중추에 흩어져 있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흩어져 있는 감각신호 가운데 어느 하나만 건들이면 기억과 관련된 감각신호들이 호응해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같은 방식으로 영화<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서도 프루스트 현상을을 보여주며, 영화에서 폴은 마담 프루스트가 내어주는 홍차 향기와 달콤한 마들렌을 한 입 베어물고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감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에서 홍차와 마들렌으로 폴의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로 등장하는 이웃이 이름이 소설의 저자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이름을 따, 푸르스트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마담 프루스트는 그녀의 비밀정원에서 환각을 보여주는 작물을 직접재배 해 차를 우려내 차로 만들어 폴의 기억을 되살려주고, 우쿠렐라 연주를 들려주기도 하고, 직접 기른 채소를 선물하기도 한다. 마담 프루스트 비밀정원을 방문하면서 폴은 조금씩 기억의 단편에서 엄마를 만난다.



사랑 한 스푼, 꿀 한스푼, 햇빛 한 줄기가 그의 무지개가 되도록, 모래 한 줌이면 그의 성이자 그림을 그릴 크레용이면 되겠죠. 필요한 건 그 것 뿐이예요.

말하는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가 떠오른다. 프루스트의 따뜻한 배려로 폴은 하나 둘 어릴적 기억을 회복해나간다. 하지만 그 기억 속에는 아픈 기억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어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악몽 속에서 폴에게 아빠는 알수없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에게 별 관심이 없고, 엄마에게 질투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의 모습은 폴의 기억 단편에서 아픈 상처로 남는 존재였던 것이다. 기억 속에서 격렬하게 다투는 부모님을 보는 폴은 깊은 슬픔에 빠진다. 하지만 모든 기억의 퍼즐을 되찾았을 때 폴은 자신이 기억했던 아빠와 엄마의 격렬한 몸싸움은 아빠의 레슬링 경기를 위해 엄마가 연습을 도와주는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폴은 엄마와 아빠가 지극히 서로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 역시도, 자유롭게 사랑했다는 진실을. 마담 푸르스트와 함께 기억을 되찾아가면서 폴은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어느날, 마담 프루스트는 폴에게 작별인사도 없이 홀연히 사라지고. 폴은 마담 프루스트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발견한다.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아래 가라앉게 해. 네가 바라는 건 그게 다야. 그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네 몫이란다.


이모들의 극성에 피아노 대회에 참가하게 된 폴은 프루스트 부인을 위해 초대장을 남겨보지만, 프루스트 부인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폴은 피아노 옆에 자리한 오케스트라 악단을 보면서 기억 속에서 만났던 개구리를 떠올리며 경쾌한 연주를 끝마치게 된다. 하지만 다시 청천벽력처럼 무너져내린 집 천장 아래 음악에 맞춰 댄스를 추던 부모님이 눈 앞에서 사라지는 끔찍한 기억을 마주하게 된 폴은. 피아노 건반을 '꽝' 두드리다 피아노 뚜껑에 손가락을 크게 다치고 만다.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폴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든 건 중요하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폴은 사라진 프루스트 부인이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까지 접한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 그는 우쿠렐라와 함께 그녀가 사랑했던 꽃과 화분이 놓여진 그녀의 묘소를 찾는다.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지만, 사람으부터 상처를 위로를 받기도 하고, 다시 누군가를 치유하는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기도 한다. 그 사이클에서 마담 프루스트와 같은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그녀와 같은 친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진실로 필요로 하는 치유자는 거창한 언변과 치료제를 가진 마법사가 아니라, 푸르스트 부인과 같이 따뜻한 차 한 잔과 달콤한 마들렌 하나를 내어주는 사람은 아닐지. 우쿠렐라 연주는 덤이다. 사랑 한 스푼, 꿀 한 스푼, 햇빛 한 줄기가 드는 정원이면 충분하다. 폴의 조각난 기억과 상처를 치유한 것은 프루스트 부인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햇빛 가운데로 나아가서, 진짜 햇빛을 만나면 될 뿐. 프루스트는 단지 폴이 햇빛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다. 어쩌면 가장 좋은 상담사는 놀이터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사람이 아닐까?  


 인생을 살아.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 하고 말하던 그녀와의 추억을 곱씹으며, 폴은 그녀가 연주했던 우쿠렐라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우쿠렐라와 함께 다시 댄스 교습소로 돌아온 폴은 사랑하는 가족을 일구었다. 그리고 그가 아빠의 얼굴을 마주한 기억의 시작이었던 곳에서 칭얼거리는 아기의 얼굴을 마주하고. 작은 목소리로 "아빠."하고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을 수 있다. 이는 폴이 괴상한 얼굴을 하고, 굉음을 지르는 꿈 속의 남자. 알수없는 공포의 대상이던 그에게 오랫동안 품어왔던 말이 아닐까.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끔찍한, 도망가고 싶은 기억


누구나 하나쯤, 머릿 속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기억과 마주하는 방법 밖에 없다. 때로 그 과정을 영원히 유보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 순간엔 향기롭고 달콤한 마들렌과 함께 이 영화를 보는 건 어떨지.

 

흥겨운 우쿠렐라 소리와 함께 숨겨진 이 비밀의 정원에서 프루스트 마담이 내어주는 따뜻한 홍차의 향기를 머금고, 그녀의 따스한 눈빛을 마주잡다 보면 어느새 헤지고 뚫린 가슴 안에 훈훈한 위로와 상처를 마주할 용기를 선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슬프고, 끔찍하고, 도망가고 싶은 그 기억 위로 행복의 수도꼭지를 트는 것이다. 어떤 아픈 기억이 불현듯 찾아와도 매몰되지 않고 오늘 주어진 행복을 단단히 붙잡고, 흡족한 일들을 하나씩 성취해보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홍수 아래로, 나쁜기억이 유유히 흘러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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