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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 eden Apr 16. 2021

절교하기 좋은 밤

가장 보통의 육아

오늘 밤엔 나의 친구를 떠올려본다. 또 하루 치열했던 육아 끝에 이 친구를 떠올린 데는 이유가 있다.


대학교에서 처음 만난 A는 서구적인 이목구비에 잔잔한 펌이 물결을 만든 긴 흑발머리,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딱 보기에도 예쁘장한 외모였다. 항상 몸집만큼 큰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친구들이 뭔가를 필요로 하면 그 가방에서 척척 꺼내 주곤 해서 우린 그걸 ‘도라에몽 가방’이라 불렀다. 학과에 여학생이 아주 소수여서 대부분이 한데 뭉쳐 친하게 지냈지만 나와 A가 유독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건, 나에게는 없는 그런 섬세함과 다정함이 그녀의 가방 속 물건들처럼 그녀 안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인간관계는 대체로 정리와 축소의 연속이었다. 내 시간을 써도 아깝지 않은 사람과 필요에 의한 관계만 남겨두게 되는 것이다. 그중 A는 내게 몇 없는 전자였다.

대학을 졸업해 전혀 다른 직장에 다니고 다른 시기에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우리는 매년 잊지 않고 서로의 생일을 챙겼다. 필요한  물어 선물을 사주는 투박한 나와 달리 그녀는 대화 속에서 필요한  알아내 선물을 안기는 세심한 사람이었다. 그게 항상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그녀가 한만큼 내가 해주지 못해 서운하게 만들까  부담스러웠다. 돌이켜보니 나라는 친구는  무심하고 서툴렀구나 싶다.


이런 친구라 미안한 일이 많다.

집이 어려워진 친구가 다단계에 발을 들였을 때, 이상한 종교에 빠져 한동안 학교생활을 등한시할 때, 결혼 초부터 삐걱대며 이혼 위기에 놓였을 때, 혼자 감내하다 뒤늦게야 사실을 고백한 그녀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발 벗고 나서 뜯어말리지도, 마음에 위안을 주거나 고통을 나눠갖지도 못했다. 그저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었다. 이토록 무심하고 서툴고 소극적이기까지 한 나의 응원에도 다행히 친구는 방황 끝에 늘 제자리로 돌아와 주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는 하던 얘길 이어가며 가던 길을 걸었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함께 걷던 우리가 다른 길 위에 서있다고 느낀 건 그쯤이었다.

내가 아이를 낳았을 즈음.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A는 제 일처럼 기뻐했다. 자신도 빨리 아이를 갖고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아이를 낳을지 말지 고민했던 나와 달리, 그녀는 늘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고 살피는 삶을 꿈꿨다. 그런 얘길 들을 때마다 그녀다운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녀 말대로 임신, 출산, 육아를 함께하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난임이었다. 자연임신이 어려워 인공수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곧바로 시험관 시술에 도전했지만 어쩐 일인지 착상 후 유산이 반복됐다. 한 번은 아이의 첫돌을 치른 날 밤 그녀의 유산 소식을 듣고 속이 상해 잠든 아이 옆에서 울고 말았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니 그녀에게 아이 얘길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녀도 딱히 내 아이에 대해 묻지 않았기에 무심하고 서툰 내가 할 수 있는 배려는 내 일상의 8할을 차지하는 얘길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남편이 아무리 곁을 지켜도 육아를 하다 보면 불쑥불쑥 외로워져 친구가 필요한 순간이 이전보다 잦아졌다. 그럴 때 종종 A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A가 이전처럼 나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자신의 상황이 너무 힘드니 신경 쓸 여력이 없을 터였다. 그녀에게 들은 바로는 시험관 시술을 위해 주어진 스케줄을 철저히 지켜야 했고, 몸도 마음도 너무나 지칠 법한 과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남자들이 다 자신이 속했던 부대가 가장 빡세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타인의 상황이 어떻든 내가 제일 힘들다고 느끼는 게 사람인지라 가끔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를 갖기 전엔 나와 연락하지 않을 셈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럴 땐 난임이나 시험관 시술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봤고, 이곳 브런치에서도 관련된 글이 보일 때마다 열심히 읽었다. 그녀의 마음까진 완벽히 이해 못해도 상황을 이해하는 덴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서였다.


그럼에도, 문득문득 떠올라 내 머릿속을 부유하던 단어를 결국 지워내지 못했다. ‘절교’라는 단어를.

지금까지 아주 우스운 단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싫어져서 안 보면 그만이지 그런 단어까지 써가며 관계를 정리하는 데 공들일 건 뭔가 싶어 말이다. 그런데 사실 ‘절교’라는 건 너와 나의 관계를 끊겠다는 대대적인 선언이라기보단, 내 마음에 복잡하게 들어차 있던 그 사람의 방을 비워내는 데 필요한 결심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심했다. 오늘 밤 그녀와 절교하기로.




자꾸만 불어나는 서운한 마음이 너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을 막아서는 것이 추하다. 내 노력에 상응하는 행동을 네게 바라는 기대가 부끄럽다. 내 고됨과 네 고통을 비교하려듦이 치졸하다. 이 따위 마음으로 진정 친구라 할 수 있는지 지난 세월에 대한 의심이 슬프다. 미움을 담아둔 절친한 친구일 바엔, 사심 없이 묵묵히 응원하는 그냥 아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니 우리 절교하자.

후에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조금 더 다정하고 능숙하고 적극적으로 너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친구가 되겠다.

안녕, 고마운 나의 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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