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과학 -you can (not) advanced-
책이 전하자고 하는 내용은 저명하다. 인간이 좀처럼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로부터 시작해 개인주의 사회로 이르기까지 우리는 개인의 의지와 힘을 믿고 강조했다. 자신이 내리는 판단이나 행동이 오롯이 자신의 자유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어왔던 것이다. 책은 그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조금은 다른 시선에서 우리의 행동을 관철한다. 우리가 내리는 사소한 행동부터 큰 결단까지 모든 가치들은 그 유전적 형질과 환경적 요인을 벗어나기 힘들다. 아니 심오할 정도로 얽혀있고 이어져있다. 예를 들어 내가 아침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핸드폰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아침밥을 김치볶음밥으로 결정하는 것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 속에는 내 유년시절의 환경적 요인을 비롯해 신경체계의 배선,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적 형질, 인간의 본질적 성질까지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하나의 행동을 만들어낸다. 내가 아침밥을 김치볶음밥으로 먹은 이유를 순전히 내 음식 취향 때문이라고 단순화할 수 없는 것이다. 음식 취향까지도 위와 같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의 행동이 유전적 요인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소리가 아니다. 개인의 선천적인 유전 형질과 환경적 요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책은 이 예시로 비만을 소개했다. 과학자들은 2025년이면 인류의 1/5이 비만이 될 거라고 예측했다. 비만이 코로나처럼 흡사 유행병으로 번져나가고 있다는 소리다. 비만은 분명 인류사에서 가장 기이하고 어처구니없는 병일 것이다. 100년 전만해도 먹을 게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지금처럼 먹을 것이 과하다 못해 포화되는 상태까지 이르는 것은 과거 사람들에게 파라다이스에 가까운 지상낙원이었을 것이다. 분명 파라다이스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2억 5000천만년의 포유류 역사에서 근 백년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억 5000천만년 동안의 환경에 맞추어 진화한 우리의 뇌는 근 백년 동안 일구어낸 지금 사회에 맞추어 생각해보면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구리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짭짤하고 단 음식을 추구하고, 기름지고 열량이 높은 음식을 원한다. 심지어 과식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길게 생존하여 더욱 많이 번식할 수 있도록 유리하게 진화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먹을 것이 포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도로 독이 되고 말았다.
비만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선은 의지박약, 게으름, 절제력 상실 정도다. 대부분 비만을 개인의 책임으로 연관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솔직해져보자. 분명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살이 좀처럼 쉽게 찌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봤을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쉽게 찌고 음식에 더 예민하다는 느낌을 받아봤을 것이다. 이런 단순한 경험에서 우리는 비만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훨씬 복잡하고 심오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식습관을 이루게 되는 유전자가 150개 정도 있다. 그중에는 얼마나 배고픔을 느낄지 지시하는 유전자(이 유전자는 언제 먹고 언제 배가 부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쾌락회로에 관여하는 유전자(어떤 사람은 뇌의 보상경로를 자극하려면 더 많은 칼로리를 필요로 한다. 남들이 피자 한 조각을 먹을 때 자기는 두 조각을 먹어야 기분이 좋아진다), 영양분이 부족하다며 더 먹으라고 내리는 것과 관련된 유전자 등이 있다. 이런 150가지되는 유전적 형질이 서로 작용하면서 개인의 식습관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 유전적 형질은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를뿐더러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이 형질이 유아기 시절의 환경을 거쳐 개인에 따라 정말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산모가 임신 중에 먹는 음식들이 태아의 식습관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아기를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신경세포간의 유전적 상호작용이 우리의 식습관에 크게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만에 유리한 유전적 형질이 있는가? 책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 예시로 FTO(체지방량 및 비만 관련 단백질)를 든다. FTO의 유전자 변이를 2개 갖고 있는 사람은 원래 나가야할 체중보다 3킬로그램 더 무겁고 비만이 될 위험은 50퍼센트 더 많다고 한다. 이와 함께 유아기 시절 식습관에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자랐다면 비만이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고 말한다. 따라서 비만인 사람을 단순히 게으른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런 유전적 형질을 고려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집고 넘어가야할 것은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은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지 비만이 되는 필수요소가 존재하지는 않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체중에 있어서는 70퍼센트가 물려받은 유전자에 의해 직접적으로 결정된다고 하지만 나머지 30퍼센트는 후천적 요소가 작용한다고 한다. 책은 30퍼센트의 가능성을 절대로 배제하고 있지 않다. 30퍼센트의 가능성으로도 충분히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책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유전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지 밝혀낸다. 당장 ‘5대 성격적 특성’이 유전적 요인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는 과학적 증거들이 늘고 있는 것을 보면 금수저, 흙수저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피와 운명으로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망연자실하기 십상이다. 모든 것은 정해져 있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한들 바뀔 수 없어. 무책임한 패배주의는 분명 매력적이다. 그렇게 인정하는 것이 심적으로 편하기도 하고 개인의 노력과 의지를 강요하는 현대사회의 패배자들에게는 매력적인 변명이 될 테니. 그렇다고 이 책이 무책임한 패배주의를 방조한다고 볼 수 없다. 뇌 과학과 신경과학의 진척은 인간이라는 거대 담론에서 개인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개인적 물음으로 시작된 뇌 과학은 인간에 대한 탐구로 확장되었다가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인간의 뇌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그렇다면 나의 뇌는? 선천적인 요인으로 뇌가 작동한다면 후천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있는가? 나라는 사람에서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는가? 나라는 존재는 발전할 수 있는가? 스스로를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 곧 뇌 과학의 본질적 목표이자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 you can (not) advanced. 결국 ‘우리’는 남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