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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rdSong Oct 22. 2020

택시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택시

그때는 나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몰랐네
그 다리 위를 건너가는 기분을
어디시냐고 어디냐고
여쭤보면 아버지는 항상
양화대교, 양화대교
이제 나는 서있네 그 다리 위에


-자이언티, <양화대교>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는 택시기사였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부른 노래다. 아버지가 사 오시는 별사탕을 기다렸던 어린날, 수없이 양화대교를 지나며 가족의 삶을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를 어른이 된 후에 양화대교에 서서 이해한다는 노랫말이 감동적인 노래다.


우리 아버지도 택시기사이시다. 내가 5학년 때부터 20년 가까이 작은 문방구를 하셨던 아버지는 몇 년 전부터 택시를 시작하셨다.

사양산업이 된 문방구를 정리하고 어떤 업종이든 새로 가게를 오픈하기엔 위험부담이 크기도 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운전이지만 무사고 운전경력이 오래라 그것도 하나의 특기라고 생각하셔서 택시를 선택하셨다.

3년을 꼬박 법인택시를 하셨고 지금은 개인택시를 하신다. 그래서 <양화대교>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노래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족에게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라고 하는 가사에 눈물이 핑 돌았겠지만 나는 진짜 택시기사인 아버지가 생각나 울었다.


아버지가 택시를 하지 않으셨다면, 택시기사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몰랐을 것이다. 또 택시라는 일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 사람 냄새가 나는지도 알지 못한 채 평생 필요할 때만 잠깐 올라타며 편리하게 살았을 것이다.

택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버지에게 듣다 보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중에 어떤 모습으로 사는 인간인지 생각하게 된다.



 

pixabay @ Free-Photos



택시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셨을 때, 아버지가 말하셨다.

"콜 함부로 취소하지 마라"라고. 그건 부탁이었다.


지금은 택시 앱을 이용해서 택시를 많이 부르고 배차 후 취소하면 취소수수료 500원 등의 페널티가 있다. 그런데 그때는 택시 앱이 이제 막 시작할 때여서 주로 전화로 택시를 불렀다. 일명 콜택시.

아버지가 나에게 "콜 함부로 취소하지 마라"라고 충고나 명령 아닌 부탁을 하신 이유는 딸은 콜 하나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길 바라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택시가 필요한데 쉽게 잡지 못하거나 급할 때는 콜택시 회사에 전화해서 택시를 부른다. 그리고 배차가 되면 기다리는데, 이때 빈 택시가 지나가면 그냥 그걸 잡아 타고 가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꽤 많았다. 그러면 아버지는 콜을 받았다고 가는 길에 손을 흔드는 다른 승객도 태우지 않은 채 달려가는데, 가보면 부른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승객 번호로 전화를 하면 전화도 받지 않고. 오던 길에 만난 손님도 놓치고, 콜도 제대로 못 받아서 손해가 이중인 상황. 그럴 때는  스쳐가는 택시와의 약속이라고 취소 전화 한번 주지 않고 전혀 배려가 없는 손님의 행동에 기가 막힌다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을 듣는데 솔직히 나도 한번 그런 적 있어서 많이 찔렸다. 급해서 빨리 온 다른 택시를 잡아타고 갔었는데 그때 나는 오고 계신다는 기사님께 전화해서 양해를 구하긴 했었다. 그때 그 기사님도 어쩔 수 없이 알았다고는 하셨지만 속상하신 게 느껴졌었다.

나는 불렀고, 어떤 택시든 나를 빨리 태워주면 되고, 부른 콜은 취소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기사님들 입장에서는 그 또한 승객을 한번 태울 수 있는 수익의 기회가 달린 일이자 인간적인 배려의 문제라고 느껴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콜을 부르고 기다리는 것도 배려이고 의리다.


그 마음을 알기에 지금은 자동배차 콜 취소 수수료와 상관없이, 내 앞에 택시가 몇 대가 지나가든 상관없이, 급한데 10분 가까이 걸리는 위치의 택시가 내 콜을 받아 얼마나 기다려야 하고 조바심이 나는지에 상관없이 그냥 기다린다. 얼굴을 안 볼 수도 있고, 봐봐야 한 번뿐인 기사님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처음 아버지가 택시일을 시작하셨을 때 힘들어하셨던 일 중 하나는 손님이 행선지를 말했을 때 "제가 택시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러는데 설명해줄 수 있느냐"라고 하면 "택시기사가 그런 것도 모르냐"며 화를 내거나 무시를 하거나 침을 뱉고 나가버리는 경우가 있을 때였다.


아버지는 택시일을 하시며 대전 지도를 놓고 길 이름과 주요 건물들 이름을 매일 외우셨다. 그때는 문방구를 정리하기 전이어서 가게에서 팔던 지도를 펼쳐놓고 틈틈이 외우셨는데도 아직 안 가본 길은 머릿속에 지도가 완성되지 않았을 때였다. 택시기사로서 모르는 장소가 아직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도 스트레스일 텐데, 사람들이 그렇게 무시하거나 심지어 "급한데 재수 옴 붙었다"며 욕까지 하고 나가버리는 사람을 만나면 아버지는 본의 아니게 그 '옴(옴벌레)'이 된 것 같아 자존감이 떨어지신다고 했다.

점심 저녁을 집에 와서 드시니 식사를 하며 아버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앞으로 안 볼 사람이라고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너무 상처를 받으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는 보통 7시 20분에 정확하게 나가셔서 밤 12시 반까지 일을 하신다. 점심 저녁은 꼭 집에 와서 드시고 식사 후에는 30분 정도 짧은 잠을 자고 나가신다.

그러다 보니 첫 손님은 출근하는 손님들이 많다. 출근해야 해서 급하거나 기차나 버스 시간 등 때문에 급한 손님이 타는 것도 기사 입장에서는 은근히 힘들다.

그 시간에 맞춰서 가야 한다는 압박과 급한 운전도 싫지만 뒷자리에서 한숨을 푹푹 쉬며 짜증을 내는 손님들의 행동을 모른 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가 몇 시 몇 분까지 그곳에 가야 하니까 어떻게든 맞추라고 명령식으로 말하는 손님도 있고, 미리 말했는데 길이 막히면 '급하다는데 왜 이 길을 선택해서 그러느냐'라고 따지는 사람도 있다. 말을 하지는 않지만 푹푹 내쉬는 한숨 속에 짜증이 가득 담긴 경우도 있고 "에이씨, 시간 없어 죽겠는데."라고 일부러 들리라고 하는 짜증을 혼잣말인 듯 흘리는 손님들도 있다. 미터기가 올라가면 올라가는 대로 혼잣말로 "아, 뭐야. 더럽게 비싸네. 왜 자꾸 올라가는 거야." 하는 손님도 있다.


손님이 콜을 부르면 내비게이션이 찍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가면 웬만하면 말이 없다.

그런데 길 위에서 손님이 탔는데 아버지가 알고 있는 곳을 말해서 네비 없이 그 길로 가면, 가는 길에 "왜 일부러 돌아가냐고" 다짜고짜 따지기부터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조수석 등받이에 이런 글을 붙여놓으셨다.


서로 생각하는 길이 다를 수 있으니 원하시는 길이 있으면 미리 말씀해주세요.



pixabay @ Foundry



택시를 하다 보면 돈을 떼이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아파트 동 앞까지 태우고 갔는데 지금은 지갑이 없고 몇 호이니 얼른 가지고 나오겠다며 올라간 사람이 그 뒤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일단 왔기 때문에 돈이 없다고 하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사람을 믿고 기다리는 건데 떼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번 떼이고 난 뒤에는 사람이 올라간 아파트 동에서 어디에 불이 켜지는지도 보려고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눈뜨고 코 베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체를 한다고 해서 알려줬는데 내리고 보니 이체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술에 취한 손님이 잠이 들었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거나, 술에 취해 토하거나 꼬장을 부리고 괴팍한 행동을 하면 그냥 돈이고 뭐고 빨리 보내고 싶은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고 하셨다. 실제로 술에 취했다고 그렇게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돈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정신 못 차리던 사람이 "아, 그냥 가세요!"라고 하는 아버지의 말을 듣자마자 멀쩡히 일어나서 나간 일도 있다.


그러면 아버지는 기가 막히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과 자존심도 저버린 사람을 보며 사람의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하셨다. 이 말을 하시는 아버지에게서 기본적인 인간성에 대한 체념이 느껴졌다.


가끔 만나는 불친절한 택시기사님들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손님을 멀쩡하게 태우고 가다가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조수석에 뛰어들며 자기 급하니 같이 가자고 동승을 강요하는 사람도 있다. 뒤에 이미 타 있는 손님도 황당해하고 아버지도 내리라고 하지만 버티거나, 버티다가 내린 후 승차거부로 신고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 정도면 정말 별 사람 다 있다는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승객이 놓고 내린 핸드폰을 파는 택시기사에 대해 종종 뉴스도 나오는데, 아버지는 승객이 잃어버린 핸드폰을 어떻게든 찾아주신다. 한 번은 멀리까지 돌려주러 갔는데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돌아선 손님도 있다고 하셨다. 원래 그 승객 것이긴 하지만 그럴 때는 그 시간에 운행을 했으면 벌었을 수도 있는 운임과 기름값 등을 생각해서 교통비 명목으로 1, 2만 원이라도 드리는 것이 예의이고 배려다. 솔직히 핸드폰을 잃어버렸으면 새 걸 살 돈은 더 많이 들 것이고, 대가를 요구하는 택시기사들은 훨씬 더 높은 금액을 부르기도 하는데 그런 생각은 없는지.

물론 아버지가 돈을 안 받고 가셨는데 애써서 너무 고맙다며 문방구까지 찾아와 돈을 놓고 가신 손님도 있다.

아버지가 돈을 바라서 돌려주는 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런 인간적인 배려나 고마움이라는 마음조차 잊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감정코칭의 아버지이자 부부에 대한 연구의 거장인 존 가트만 박사는 부부가 대화하는 모습을 조금만 지켜보면 이 부부가 이혼할 부부인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대화의 밑바탕에 경멸, 혐오, 무시 등이 들어가 있는 걸로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아버지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부부든 연인이든 부모 자식 관계이든 택시 안에 자기들밖에 없는 듯이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승객들도 있는데, 말투도 '자기들밖에 없는 듯이' 서로 경멸하고 비난과 무시를 섞어 말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그만큼 한 두 마디를 들어도 말에 배려와 따뜻함이 담긴 사람들이 타면 택시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고, 그 사람들의 자녀들을 눈여겨보게 되며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백미러로 바라보게 된다고 하셨다.


택시라는 공간은 낯선 사람들이 동승하는 곳이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내게 되는 오묘한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택시기사님의 뒤통수가 주는 편안함이, 자신의 익명성을 지켜주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의 얼굴 표정 등 반응에 얽매이지 않게 해 주어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잠시 탔을 뿐인데 자기 이야기를 한참 풀어놓고 내리는 손님도 많다. 


또 몇 분 안 됐지만 고마웠다며 음식이나 음료 같은 작은 선물을 주고 가는 승객도 있다.


아버지에게는 특별한 승객이 있다. 아버지는 그 승객을 "OO동 착한 아가씨"라고 했다. 그 승객은 오후 늦게 늘 그 시각쯤에 콜을 부른다. 우리 집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동네라 아버지는 그 손님을 몇 번 태우게 되었다. 마침 아버지도 그곳 근처에 있으면서 시각에 그곳의 콜이 떨어지면 손님인 줄 알아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대화도 좀 하게 되었는데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지만 아버지는 대충 알고 있다. 옷차림과 저녁 어스름할 때 유흥가로 유명한 동네의 어떤 업소 앞에서 내리는 상황을 종합해본 결과이다. 그 승객은 자기의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 않지만 아버지의 컨디션과 그날 자기의 단상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


"아저씨, 오늘 빨리 와주셔서 감사해요."라며 고마운 인사도 잘하고 "아저씨가 오셨으면 했는데~" 친근한 말을 해주니 아버지도 반가워지더라고 하셨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참 배려심이 많고 마음이 예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사람들에게 대우받고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아가씨에게 고마워진다. 정말 '진상'손님들도 만나며 감정이 소모되다 못해 지쳐서 마음을 닫아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기분 좋은 손님이 있다는 사실은 자식으로서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 승객 이야기를 하시며 아버지는

"하는 일에 상관없이 사람의 인품은 스쳐갈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려있다"라고 하셨다.


사람들은 보통 그 반대로 산다. 그래서 아버지도 택시를 하시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많은 무시를 당하시고 억울한 일을 많이 겪으셨고.


택시는 당신이 스쳐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있다.






이제 아버지가 출근하실 시간이다. 오늘은 어떤 손님을 태우고 어떤 사연을 나르고 어떤 행복과 아쉬움을 만나실까. 오늘도 달리실 아버지에게 사랑과 응원을.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표지 사진 pixabay @ StockS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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