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하상가에 한복판에 주저앉아 그렇게 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날 사람들은 지하상가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는 걸 직접 보았다.
내 발목에 닿던 지하상가 길바닥의 냉기를, 내 옆을 빙 둘러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뭇거리는 신발을 그들의 쇼핑백을 기억한다.
대학 후배 BH는 1학년 새내기로 우리 동아리에 들어온 후배였다. 단순한 동아리 후배가 아니라 여러 결연 모임 중에서도 우리 조가 되었으니 각별하고도 유일한 후배였다. 새내기였을 때 동기 두 명과 같은 조가 되어 적응도 쉽게 하고 즐거웠던 나의 1학년을 생각하면 혼자 새내기였던 BH는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키도 크고 눈도 크고 경상도 사투리를 시원시원하게 써서 약간은 무뚝뚝한 느낌이 있었던. 하지만 성격은 둥글고 잘 웃기도 했던 남자 후배였다.
기숙사 1관은 여자 기숙사, 2관은 남녀 혼성 기숙사였다. 기숙사에 사는 남녀가 모여야 할 때마다 우리는 2관 식당에서 동아리 친구들이나 과 동기와 함께 과제를 하거나 배달음식을 먹었다. 우리 학교 기숙사에서 배달시켜먹은 치킨 중 양대산맥이 있었는데 BH는 산타 치킨을 참 좋아했다. 그것도 내가 같이 먹어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는 게 아니라 동아리 남자 동기가 BH에게 산타 치킨을 사줬는데 그렇게나 좋아하더라고 말해줘서 알고 있었다. 언제 한번 기숙사에서 다 같이 치킨파티를 하자고.
좋다고 대답했던 나는 매번 함께할 수 없었다. 여름방학에 유럽여행을 가겠다고 매일 입시학원에서 밤 11시까지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12시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12시에는 기숙사 문이 잠겨버려서 1관에 사는 나는 겨우겨우 들어올 수 있었다.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수학강사 아르바이트는 퇴근시간이 정확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질문하는 걸 가르쳐주고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매번 택시를 타고 기숙사 문이 잠기기 직전에 도착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모처럼 수업도 적고 일찍 끝나서 지하철 역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11시 좀 전이었던 거 같다.
전화가 왔다. BH였다.
"누나, 산타 치킨 좀 사 주세요."
내가 매번 치킨 모임에 빠지니 오늘은 같이 하자며 일부러 전화했던 거였다. 모처럼 한 시간 일찍 왔는데 오늘은 가볼까 하다가, 대답했다.
"미안한데 오늘 너무 피곤하다. 요즘 계속 알바가 늦게 끝나서. 다음에 사줄게. 오늘은 형한테 사달라고 해."
BH는 아쉬워하며 끊었다. 미안하긴 했지만 너무 피곤했다. 늘 BH를 더 잘 챙겨줘야 하는데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오늘은 피곤하니까. 다음에 동아리 하는 날 밥 한 번 사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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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나는 결연아동의 집에 갔다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상가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날 나는 칠부 소매 줄무늬 옷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스쳐가는 옷가게들 옷이 참 예뻤고 워낙 지하상가가 큰 곳이어서 평일이어도 젊은이들이 많았다. 새 옷을 보고 싶었지만 도서관 근로 시간이 다가와서 급하게 사람들 속을 헤치고 걸어가던 중에 전화가 왔다.
나에게 전화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선배였는지, 동기였는지 여자였는지, 남자였는지 기억이 정확히 안 난다. 정확히 기억나는 건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말에 내가
"응? 무슨 소리지. 누가 돌아가셨다고?"
되물었고, 그 직후 나는 지하상가 한복판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전화로 나에게 소식을 들려줬던 동아리 사람은 "BH가 부모님과 계곡에 놀러 갔다가 실수였는지... 그래서 지금 진주 장례식장으로 가야 한다"라고 했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누구 장례식장에 가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되물었고 정확한 대답을 듣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방금 전까지 가족들과 함께 계곡에 놀러 가서 신나게 노는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 살아있던 BH였다.
너무 놀라서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곧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나는 정말 드라마에서 언젠가 보았던 장면처럼 가슴을 치고 목을 놓아 울었다. 너무 가슴이 답답하면 울음소리가 목 밖으로 시원하게 터져나가지 못한다. 얼굴은 오만상이 되고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데 목은 꺽꺽댄다. 발목에 닿은 지하상가 세면 바닥이 차가웠고 미처 나를 피해 가지 못한 사람들의 쇼핑백이 어깨에 치였다.
진열된 옷걸이와 옷걸이 사이, 마주보고 있는 가게와 가게 사이 길은 좁았다. 그 한복판에 누군가 주저앉아있으니 뒤늦게 발견한 사람들이 나를 피해가느라 바빴다. 창피함도 미안함도 BH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상실감과 충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놀랐겠지만 나는 치킨 사달라던 BH의 사투리가 생각나고 그 전화를 받았던 지하철역 계단이 생각날 뿐이었다. 당연히 다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미루었던 그 순간들이, 그걸 믿고 함께 하는 한두 시간을 미뤄왔던 나 자신이 원통하고 비통하고 후회돼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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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울었던 것 같다. 울음소리도 잦아들고, 사람들도 이제는 누가 길바닥에 앉아있는 걸 피해 갈 뿐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떻게 나 자신을 수습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가야 할 곳으로 몸을 옮겼을 것이다.
도서관 근로 알바를 하러 가던 길이었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내가 그 후 사서 선생님께 "내일이 탈상이라 오늘 진주에 있는 장례식장에 가봐야 한다"라고 문자를 했기 때문이다. 정신없는 와중에 썼던 문자라 "내일이 탈장이라"라고 보내졌고, 문자를 이해 못한 사서 선생님에게 "은주 이게 뭔 말이고?" 하며 전화가 왔었다. 그렇게 혼이 빠져있었다.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탔던 고속버스, 밤늦게 들어선 진주 톨게이트, 옷도 갖춰 입지 못하고 입고 있던 옷 그대로 가서 민망하고 BH 부모님이 아들 또래의 우리를 보시면 더 슬프지 않으실까 걱정하며 머뭇머뭇 들어섰던 장례식장의 공기를 기억한다.
그렇게나 어린 스무 살을, 청년이라기엔 이제 피기 시작한 젊음을 앗아간 신이 처음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다음이란 없을 수도 있음을,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에게는 지금 잘해줘야 함을,
나는 BH 덕분에 배웠는데
남은 사람들에게 이걸 알려주기 위해 그 젊은 꽃을 내렸다가 앗아갔어야 했는가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왔다간 천사라고 하기에는 BH가 아프지는 않았을까
혼자 빠져서 발버둥 쳤을 때의 외로움과 공포심은 없었을까
아이들을 좋아하고 치킨도 좋아했던 스무 살에게 가혹하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도 미안하고 슬프고 보고 싶다.
그 뒤로도 몇 년간 나는 BH와 동아리 사람들과 걸었던 그 길을 지나다녔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우리가 갔던 그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BH를 보내고 한동안은 그 길이 야속하고 힘들었다.
옷은 화려하고 계절마다 바뀌었지만 BH는 떠나고 돌아오지 못했으니까.
지나가면서 BH와 생과일주스를 사 먹었던 상가도 있었고 BH가 관심을 보였던 남자 옷가게도 있었다.
그때는 그게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그 앞을 지나면 종종 함께 옷을 고르는 커플이나 친구들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면 문득문득 '저들은 그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카페나 식당에서 웃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젊은 연인들을 보면
'잘해줘.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르니까.'
서로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길, 후회 많은 자의 오지랖 가득한 축복을 던지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다.
후회는 지워지지 않는다.
네가 사달라던 치킨값이 너 가는 길에 보태는 노잣돈이 될 줄은 몰랐어. 어리석어서 미안해.
BH를 떠나보내고 온 날 일기에 이렇게 썼었다.
먼길 가는 길에 보태게 될 줄 알았더라면 치킨 열 마리고 백 마리고 사주었을 텐데.
그때 생긴 마음의 충격 탓인지, 배움 덕분인지
나는 그 뒤로는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은 함부로 미루지 않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선물을 할 때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해주고 싶은 만큼 해주려고 하게 되었다.
남편이나 누군가와 잠시 마음이 상해도 빨리 풀려고 노력한다.
우리에게는 화해할 다음 시간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때는 후회해도 늦으니까.
부모님에게는 해드릴 수 있을 때 최대한 해드리려고 노력한다.
돈이 많지 않아도 용돈을 조금씩이라도 드리고 몇 년에 한 번씩 느낌이 올 때. 여행을 보내드린다.
얼마나 해주었느냐보다 해주었는지 안 해줬는지,
그 시간을 함께 보냈는지, 무엇을 얼마나 비싼 것을 먹었는지보다
그때 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그 얼굴을 보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만남을, 기회를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보내버리고 있는 걸까.
그걸 안다면 조금 더 서로에게 충실할 텐데.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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