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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rdSong Dec 30. 2020

탕아는 결국 또 집을 나갈 것이다

성당

보십시오. 저는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저에게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더니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주시는군요.


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 루카 복음서 15장 29-32





거의 일 년 만에 드리는 미사였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날이니 이날만큼은 방송으로라도 미사를 제대로 드려야겠다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놓쳤다. 3일이 지난 후에야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거실에 앉아 24일 밤 미사 영상을 혼자 조용히 재생했다.


신부가 된 사촌오빠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어릴 때 여의고 방황도 많이 하고 사고도 많이 친 소년이 이제는 마흔이 넘은 주임신부가 되어 미사를 집전한다. 손길 하나, 눈길 하나에서 진지함과 엄숙함이 묻어난다. 내 남동생을 닮은 얼굴이지만 속세를 떠난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어 있는 분이다. 사촌오빠이지만 더 이상 만만하게 장난 걸 수 없는 한 청년이, 인간의 한계를 넘은 인간이 되어 영상 안 제대 위에 있었다.


사촌오빠가 신부가 된 후에도 한 번도 사촌오빠가 집전하는 미사를 드린 적이 없었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가보지 못한 채 사촌오빠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하는 걸 버킷리스트에만 넣어두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코로나라는 것이 방송 미사라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게 해서 그 시기를 앞당겨주었다.


신부님은 노래를 참 잘하신다. 목소리도 남동생과 비슷하다. 우리 남매는 목소리와 외모만큼은 외탁을 했다. 그래서 내 남동생과 비슷한 외모로, 비슷한 목소리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 더 묘하다.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한 형제인데 선택한 길이 다르고 운명이 달라졌다는 위화감이 들기 때문이다. 무엇이 속세에 남은 자와 속세를 떠난 자를 만드는가, 사람이 어느 정도이면 어떤 마음이면 인간의 욕망을 포기하고 저 길을 선택할 수 있는가. 나는 늘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촌오빠 한 명이 아니고 '그들'인 이유는, 사촌오빠의 친누나도 수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개구쟁이, 왈가닥으로 살았던 남매가 동시에 성직자와 수도자의 길을 선택했다. 사촌언니 오빠들이 처녀시절 우리 엄마에게 지어주었던 별명은 '매드 타이거'였다. 우리 엄마가 사고 치는 조카들을 매일 잡으러 다니고 뒤지게 혼내며 가르친 적이 많았다. 오죽하면 이모 별명을 미친 호랑이라고 불렀을까. 우리 엄마가 여장부스럽기도 하고 불같은 면도 있는 건 사실이긴 하다. 나이 드시며 많이 꺾이셨지만. 그렇게 조카 남매의 어린 시절부터 보아 오고 훈육도 많이 하셨던 엄마는 조카 남매의 선택을 기특하면서도 측은하게 여겼다.

신을 향한 인간의 선택에는 수많은 외로움과 번뇌의 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남매가 그 길을 선택한 것은 숙명이라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천주교인으로 산지 30년이 다 된 나는 지금도 성경 속 기적의 행적에 의문을 가진다. 여전히 미약하고 의심 많은 인간이다. 그러나 그런 나도 신은 있으리라 믿는다. 신이 있지 않으면 신을 위해 삶을 바치는 이런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다고. 수녀원, 신학교를 다니는 사촌 언니 오빠를 어려서부터 보아왔기 때문에 믿는다. 신을 향하고 신의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나에게 신의 존재를 믿게 했다. 신이 정말 없다면 아프리카에서 봉사를 하느라 젊은 날을 바치고, 몽골 어딘가에서 불치의 전염병 환자들과 먹고 자고 할 수 없으리라. 나처럼 그들의 역마살도 외탁이고 천주교인의 피도 외탁이다.


그렇게 신이란 나에게 사람으로 증명되는 오묘한 존재다. 그래서 신은 자신을 닮은 사람을 빚은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어리석은 인간의 눈에 보이도록.  


 

pixabay @Free-Photos


사람들은 보통 신부, 수녀의 삶을 선택하는 이들은 오로지 신만을 바라보며 살아왔을 만큼 독실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들은 단 한 번도 신을 떠난 적이 없었을까. 내가 알기로는 아니다. 나의 사촌형제들이 번뇌했던 이유 중에는 역시 신도 있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냉담(성당에 나가지 않음)의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고 알고 있다. 신이 정말 있는가, 신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현실에서 보이는 수많은 인간군상과 성경 속 진리의 괴리는 너무나 컸다. 젊은 그들에게 가장 큰 고민이자 풀기 힘든 문제였으리라.

  

그럼에도 그들은 돌아왔다. 몸이 떠나지 않았어도 마음이 떠났을 순간도 숱하게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돌아와서 종신서원을 하고 사제서품을 받았다.

신은 맞아주셨을 것이다. 성경에서 집을 나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단지 돌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안아주고 맞아준 아버지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 포용, 배신을 따지지 않는 그 끝없는 사랑이 그들에게 평생을 바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 같은 나일롱신자도 신을 떠나지 못하는가 보다.

신자로 살기 시작하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엘리사벳이라는 이름을 받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 동안 나 역시 수차례 집을 나갔다. 나의 '아버지'의 집. 내 영혼의 집을.


인간이 그나마 이 정도라도 익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앞으로 살 날이 두 배 정도 많은 걸 보면 반도 익은 것 같지 않지만, 아무튼 나 역시 어려서부터 나의 신앙심과 인간됨을 끊임없이 시험받았다. 어떤 일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인생이 뜻 같지 않다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뭐 이러냐!' 괜히 토라져 발길을 끊은 적도 있었고,  신이 정말 있으면 세상을 왜 이따위로 만들어 놓았는가 원망한 적도 있었다. 인생의 큰 시험이 있을 때마다 마치 기복 신앙인 양 굿하듯 성당을 나가 기도를 드리고, 나는 최선을 다해 기도했다 자위했다. 간혹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면 '응답'해주셔서 고맙다는 위선적인 감사를 건네고 더 자주 별로 내키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무슨 뜻이 있어 이런 결과를 주셨는가' 의심 섞인 질문을 던졌다. 참 유치하고 졸렬한 신앙생활이었다.



pixabay @ congersdesign



이런 불성실한 신자로 살면서도 희한하게도 늘 집 근처에 성당이 있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인데도 학창 시절에는 1박 2일 같은 주말 프로그램을 본다고 게을리 다녔다. 성당 친구들과 삐걱거릴 때도 서로 알아가는 과정임을 생각하지 못하고 신을 등져버렸다. 필요할 때만 신을 찾는 인생인데도 성당은 늘 가까이 있었다.


성당보다 자주 보이는 건 교회였다. 이사 동네는 블록마다 엄청나게 교회가 하나씩 있다. 동마다 성당도 있다. 동에 걸쳐 아파트 단지가 있는 동네이긴 하지만 교회들과 성당들이 보존이 되는가. 신에게 기대는 인간의 열망이 아파트 단지 세대수만큼이나 많은가보다는 놀라움에 입이 떡 벌어졌다.


도시의 일요일. 평범했던 1년 전 집 근처 사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쳤다. 정확히 말하면 집 근처 교회와 성당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사실 그들의 발걸음을 표현하기에 '쏟아지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의 발걸음은 조금은 나른하다. 방금 받은 예배, 미사의 은혜로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아 나왔기 때문이다.

주일을 지켜야 하는 신자로서 비록 의무적인 방문이라 할지라도 교회를 나오는 사람들은 어쨌든 유혹을 뿌리치고 오늘도 성당에 나와 주일을 지켰다는 만족감과 안도감의 눈빛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안다. 나는 그 유혹에 빠져 성당을 빠지고 안도와 평안한 그들의 모습을 내심 부러워하며 보고 있으니까. 유혹을 뿌리치고 성당을 결국에는 나가면, 묘한 상쾌함으로 집에 갈 수 있고 한 주의 시작이 뿌듯했다.

나의 주말은 그렇게 죄책감과 감사함, 충만함이 뒤섞인 번뇌의 날들이었다.


그랬으니. 코로나로 미사가 중단되자 은근히 합리화된 공백기를 즐기기도 했다. 방송으로 미사를 드리면 되는데 방송은 또 아이 있는 집안에서 집중해서 보기 힘들다며 미룬 게 한 달, 세 달, 반년이 넘어 1년이 다 되어갔다.


그런 탕아가 신부가 된 사촌오빠의 유튜브를 챙겨보기 시작하며 다시 슬슬 신 앞에 머리를 들이민다.

저 왔어요. 받아주실 거지요... 밑도 끝도 없고 무책임한 자신감. 방황하다 돌아오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했고, 그곳에는 사랑과 평화를 최고로 삼는 마음 넓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30년간 수없이도 집을 나갔다 돌아오며 알게 되었으니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된 셈이다. 당신의 사랑만은 나를 버리지 않으리라는 믿음. 어디서 옹졸한 마음으로 방탕하게 굴러먹다가도 결국 돌아와 사죄하며 울고 회개할 거라는, 결국 평화로운 끝이 있으리라는 믿음...


"공동체에서 소외된 존재였던 양치기, 목자들에게 탄생 소식이 가장 먼저 알려지고

여관방이 없어 말구유에서 태어난 존재. 아기 예수님이 그렇게 하찮은 존재들에게 가장 먼저 모습을 보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화면 속 신부님이 묻는다. 하찮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고 역시 이 세상의 한 점만도 못한 크기로 살고 있는 어른이 된 사촌동생은 생각한다.


글쎄요. 진짜 신의 뜻은 제가 알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하찮은 존재로서 위로가 되네요.


그분만큼은 비루한 존재도 비루하지 않게 사랑해주심을 알고 이런 나도 뭔가 의미가 있는 존재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다가 정말로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신비.

성스러운 탄생이란 하찮은 것들에게도 자신의 가치를 알려주기에 성스러운 것인가.

그래서 아기 예수님은 이 척박한 세상에도 매년 끊임없이 영원한 동안으로 무한 반복해서 오시는가.

그렇다면 그 발걸음 멈추지 말아 주시길.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고 사랑이 내린 이 세상도 다시 이성을 잃고 길을 잃음을 반복할 것이다.

탕아는 분명 또 집을 나갈 것이다. 게으름과 합리화의 수레바퀴를 끊임없이 돌리며 삶이 버겁다 한탄할 것이다.

성당과 교회를 다녀가는 도시의 풍경은 점점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기 예수는 가장 하찮은 존재들 앞에 가장 낮은 모습으로 다시 내릴 것이고

탕아도 다시 돌아올 것이다. 다시 또 결국은 자신을 받아줄 그 사랑을 믿으며.

 









표지 사진 pixabay @ 5336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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