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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rdSong Jan 12. 2021

낭만 끝 질척임, 그리고 씻김

아스팔트 위 눈

질척인다. 아스팔트 위 눈은 더럽다. 캐리어를 끌고 단화를 신은 발등이 젖어갔다. 그런데 이 성가심이 싫지 않다. 아스팔트에도 눈이 내렸으니까. 그건 소중했다.



"엄마! 눈이 비처럼 와!"

갓 여섯 살이 된 아들이 외쳤다. 거실에서 바라본 넓은 창 밖이 희뿌옜다. 정말 눈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다만 한 덩이 한 덩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큰 눈송이가 함빡 내리고 있었다. 아들은 오늘 함박눈이라는 말을 배웠다.


며칠 전 두꺼운 솜이불처럼 내린 눈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또 큰 눈이 왔다. 이제 좀 녹은 도로에 다시 눈이 깔리니 강원도 외근 다녀올 남편의 운전길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좋았다. 그냥 눈은 좋다.


눈이 오면 도시는 좀 온화해진다. 어쩌면 눈보다도 더 차가울 것만 같은 회색빛 건물들도 하얘지고 아스팔트 위는 소복이 쌓인 눈으로 포근해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처럼 대설특보가 내리는 날은 자동차도 사람들도 속도를 줄인다. 천천히 조금씩 나간다. 한결 겸손해진다. 앞차 뒤차, 앞사람, 옆 사람 살피며 세상 그렇게 배려가 넘칠 수가 없다.

큰 눈이 내리는 희뿌연 도시. 먼 고층 아파트는 보이지 않고 가깝고 적당히 높은 것들만 눈에 보인다. 21.1.12

눈이 많이 오는 날에는 나무도 빌딩도, 사람이 심어놓은 모든 것들은 높이가 비슷해진다. 높은 건물일수록 눈발에 가려 어슴푸레해져서 보이지 않는다. 사람 눈으로 다 담을 만큼만 높은 나무와 빌딩만 시야에 살아남는다. 빌딩이 나무 옆에 내려와 앉는 느낌이다. 빌딩도 겸손해진다.


살다 보면 Carpe Diem! 해야 할 순간들이 있는데 눈 오는 날이 특히 그렇다. 눈은 아무 때나 오지 않는다. 인간과 컴퓨터는 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안 올 때도 있고, 뜻밖에 갑자기 그것도 아주 많이 내릴 때도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것 중에 아이들과 만끽하기 좋은 것은 첫 번째는 햇살, 다음이 바로 눈이다.


어찌 보면 햇살보다 눈이 더 몸값이 높다. 매일 오는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내렸는데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햇살은 잡아서 던질 수가 없다. 달려오는 어린 아들의 외투에 던져서 깨지게 할 수도 없고 꼭꼭 뭉쳐 눈사람을 만들 수도 없다.


그렇게 소중한 눈님이시니, 오실 때 장화발로 나가 맞아드려야지. 꽃잎 밟듯 즈려밟을 때 나는 뽀드득뽀드득 소리도 아들과 함께 오감으로 느껴드려야지.

 

아들과 만든 머리 큰 눈사람. 21.1.7


도시의 눈은 특별하다. 이렇게 눈사람이 머리가 더 커서 잘 안 세워질 때 기대서 세울 있는 벤치도 도시에는 있다. 아스팔트 위에 눈이 내리면 흑이 백으로 덮인다. 도시에서 가장 빨리 눈이 녹는 자리는 아스팔트 도로이다. 사람의 부산함 따라 움직이는 차의 온기가 눈을 녹인다. 까만 아스팔트 위 눈은 새까맣게 녹는다. 도시에서, 사람 사는 곳에서 어쩌면 가장 지저분한 눈이기도 하다.


질척이기까지 한다. 아스팔트 먼지로 뒤섞인 눈은 촉감도 색감도 더럽다. 이 길을 캐리어를 끌고 간 적이 있다. 면접을 몇 시간 앞둔 어느 새벽, 서울 사는 사촌오빠 집에서 길을 나서며 캐리어를 끌고 질척이는 눈길을 갔다. 면접 복장을 맞추느라 신은 단화에 밤새 부은 발이 꽉 끼어 발끝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캐리어 바퀴가 구르고 아스팔트, 보도블록 위 눈 사이를 걸으니 스타킹을 신은 발등에 눈이 떨어져 젖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가는 발걸음이라 눈 녹은 길거리에 더 쩍쩍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내 발이 무거운 건지 눈길이 당기는 건지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중압감이 발끝에 따라왔다.


눈은 올 때는 참 낭만적인데 그 후는 질척인다. 면접을 보러 가는 길, 지저분한 눈길이 참 성가셨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면접 전 날 눈이 와서 축복이 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좋았으니 그 후의 질척임은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질척임은 눈이 녹고 물이 되어 이 도시의 길거리가 씻기기 위한 과정이다. 눈 내리는 기쁨을 느끼려면 질척임도 받아들여야 했다.


나의 그때도 그랬다. 모든 시작은 설렘과 낭만을 동반한다. 무결한 눈밭에는 금세 발자국이 찍히고 그 깨끗함도 금방 빛을 잃는다. 하얀 눈이 와야 원래 길이 새까만 먼지로 가득했다는 점도 깨닫는다. 현실은 질척임이라는 사실은 시간이 좀 지나 봐야 안다. 첫 기대가 남긴 흔적이 발에 치이고 옷을 젖게 만들 때야 실감한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또 어느샌가 모두 녹아 말끔해진다. 씻긴 땅 위에 다시 봄이 오고 여름, 가을이 지나 다시 눈이 온다.


그러니 눈은 소중하다. 도시는 눈으로 인해 덮이고, 아이들의 환호로 인다.

사람이 남긴 열기로 녹은 눈은 물로 되돌아간다. 모든 인연이 그렇듯, 시절이 그렇듯, 공간이 그렇듯, 그렇게 낭만과 질척임과 씻김은 반복된다.

사람은 그 안에서 기뻤다가 젖었다가 더럽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씻기고 소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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