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러시아워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 지 이제 이 주가 다 되어간다. 지하철이 와서 탔는데, 매일은 아니지만 꽤 자주 지하철이 출발하지 않고 한참을 서 있을 때가 있다. 오늘은 신도림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지하철 문이 대여섯 번이나 열렸다 닫혔다. 그때마다 방송으로 기관사가 "출입문 닫겠습니다." 하는 소리가 나왔다. 아마도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발이나 가방 등이 문에 끼어 안 닫히는가 했다. 그런데 몇 번 문이 열렸다 닫히길 반복하고 몇 분째 출발을 못 하자 기관사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뛰지 마세요!" 정말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 "뛰지!"라고 앞부분을 크게 강조해서 말하는 목소리가 많이 격앙되어 있었고 "마세요"는 화를 꾹꾹 눌러 담아 애써 정중하게 마무리를 하는 말투였다. 화가 나지만 억눌러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관사의 감정을 알아챘을 것이다. 기관사의 그 한 마디로 나는 몇 분째 답답하게 이어진 출발 지연 상황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출근으로 바쁜 시간대, 엄청난 인구가 오가는 이 역. 사람들은 닫히는 지하철 문에 뛰어들며 가까스로 자신의 몸을 실었나 보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었나 보다. 지하철에 뛰어듦은 출근시간으로 다가가는 시곗바늘에 올라타는 일이다. 언젠가 지하철을 타면서 지각할까 마음 졸여본 사람으로서그 마음도 이해는 한다. 그도 자신의 안전을 내던질 만큼 급했다고. 여러 사람의 출발을 붙들 만큼 급했다고.
광대가 줄타기하듯 몸을 던진 그 사람은 지각에서 벗어나 한 숨 돌릴지 모르겠지만 기관사는 애가 탔을 것이다. 출발은 해야 하고 또 문을 닫다 사람이 다칠 수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에서 무정히 뛰어드는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고 화도 났으리라. 이렇게 기관사가 화를 내면 누군가는 대중을 상대하고 그 이유로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 업무를 맡은 사람은 한 명인데 상대해야 하는 쪽의 인원이 많을수록 그 업무담당자의 행위는 공공장소와 대중에게 공유되는 공적인 일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서비스 정신, 봉사정신, 따라오는 초아(나 자신을 뛰어넘음)의 정신을 요구한다. 또 버스기사님들은 버스를 타고 내릴 때 자주 마주치고 직접 소통이 가능해서 덜 그렇게 느끼지만 지하철은 기관사를 본 적도 없고 방송으로 나오는 목소리라 더 정제된 안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짜증 섞인 토로가 좋았다. 차라리 인간적이었다. 기관사대 승객으로 대면하지 않는 상황, 수 백 수 천명 대 1이어서 다수에게 익명성이 있는 상황. 그래서 더 무례할 수 있는 처사에 대하여 더 이상 어떻게 더 인간적일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문이 닫히고 지하철은 출발했다. 달리기 시작한 지하철 안에도 "뛰지 마세요"라고 재차 점잖게 당부하는 기관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후에는 누군가 비상전화를 걸었었는지, "비상전화 거신 분 다시 전화해주세요. 하나도 못 들었습니다." 하는 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곧 "마스크를 코까지 완전히 가려 제대로 써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아침부터 얼굴 찌푸리게 하는 일 없도록 해주세요."하고 방송이 끝났다. 그렇다. 나의 아침은 지하철 기관사에게도 아침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