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출퇴근길에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사람들의 엉덩이이다. 지하철은 두 번씩 갈아타면 올라야 할 계단이 많다. 사람이 많으면 거의 항상 누군가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걸어야 하는데 마침 딱 키가 작은 내 눈 앞에는 누군가의 엉덩이가 있다. 그 사람이 입은 옷이 그 사람이 어떤 기분으로, 어떤 일정을 기대하며 집을 나섰을지 아주 조금 힌트를 준다. 트레이닝 상하복이든, 양복이든 바쁜 발걸음은 오늘 뭔가 해야만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다양한 색깔의, 재질로 된 엉덩이들을 바라보며 계단을 오른다. 그 움직임에는 성별도 어떤 매력도 없다. 모두 똑같이 그냥 엉덩이이다. 그저 오늘 또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다리의 출발점이며 하루를 지탱해줄 척추의 받침대이다. 삶을 살겠다고 버텨내는 엉덩이에는 어떤 수식어도 미사여구도 필요 없다. 젠더, 직업, 부에 관계없이 모든 엉덩이는 움직일 뿐이다. 설 때나 앉을 때나 하늘 향해 곧게 선 삶을 받쳐준다. 누우면 땅과 가장 편안히 일치되도록 온종일 힘겨웠던 무게를 감싸준다. 묵묵히 계단을 오르는 엉덩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이 소리 없는 노동으로 이루어지는가 경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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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여섯 살 아들이 신이 나서 말했다. "엄마! 내가 쇼파있는 줄 알고 앉았는데 소파가 없어서 꽈당! 하고 넘어졌는데 안 다쳤어! " 같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우리 라파엘 엉덩이가 폭신폭신해서 그런가 보구나. 엉덩이가 충격을 줄여주거든." 어린아이의 엉덩이도 그 여린 삶을 탄탄히 지탱해낸다. 오랜 세월 단련된 어른들의 엉덩이는 오늘도 우직하게 삶을 버텨낼 것이다. 어떤 옷감에 가려져 있든 어떤 의자에 앉든, 모든 엉덩이는 소박하고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