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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rdSong Oct 06. 2020

호수공원에서 만난 '맘충'

호수공원

청소일 한다고 날 무시하는거야? 나도 이 나이에 남들이 싸놓고 간 거 치우는 인생 고달파!

아, 이건 아닌데. 순간 아차했지만 이미 늦었다.           



도시는 자연을 갈아엎고 만든다. 도시를 만들며 자연을 신경쓰기는 쉽지 않다. 자연이 일부라도 살아있는 도시가 있다면 일부러 보호구역으로 개발제한구역으로 설정해놓아 그나마 가능하거나 유원지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계획도시인 신도시들은 인공적이지만 물과 나무가 있는 공원을 갖추긴 한다. 요즘은 특히 웰빙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늘이 별로 없는 신도시의 공원

광교호수공원도 광교신도시에 있는 공원이다. 광교호수공원은 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로 이루어져 엄청나게 크다. 원래 있던 원천저수지는 수십년 전부터 데이트 장소로 쓰였던 곳이다. 그런데도 광교호수공원에 가보면 매우 인공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호수변을 따라 만들어진 나무데크 산책로와 시멘트 구조물들이 사람들이 걷고 쉴 곳을 제공하기 위해 엄청나게 길게 이어져 있고 그 위에는 의자나 벤치 몇 군데 말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풍경 때문에 광교호수공원은 아주 깔끔하고 쾌적하다. 하지만 뭔가 여유로운 느낌은 아니다. 나무데크 옆에 자란 갈대가 곳곳에서 운치 있게 흔들리긴 하지만 공원에는 큰 그늘을 제공할 나무도 거의 없다. 쓰레기통도 없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머무르다 가기보다는 그냥 넓은 호수와 주변 아파트가 만드는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걷기만 하다 가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살짝 느껴진다. 자연이 자연스럽지가 않다.      


그날은 더 했다. 공원 가로등마다 ‘내 쓰레기 되가져가기 운동’이라는 깃발이 나부꼈다. 두 돌 지난 아들은 기저귀에 응아를 했다. 내가 만든 쓰레기는 가져가는 게 맞긴 하지만 기저귀도 그런가? 그럼 생리대는? 이런 캠페인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집에서 가져온 쓰레기를 공원 쓰레기통에 투기하고 가든가, 공원에서 놀고 마시며 만든 쓰레기가 화장실에 쌓이니 관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똥기저귀를 싸서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비닐도 그날따라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캠페인의 취지도 기저귀까지 못 버리게 하자는 뜻은 아닌 것 같아서 기저귀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언젠가부터 화장실 앞에는 형광색 조끼를 입고 커피잔이나 쓰레기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제지하는 환경관리인이 서 있기 시작했다. 잠시 화장실에 볼일이 있어서 테이크아웃한 커피잔을 들고 들어갈 때도 저지당했다. 그날은 엄마보다 연세가 좀 더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관리인으로 계셨다. 나는 성격상 아무리 작은 오해라도 불필요한 오해를 받는 게 너무나 싫다. 그래서 언짢은 소리 들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먼저 양해를 구하는 편이다. 그날도 그분이 다른 데를 보고 계실 때 슬쩍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먼저 인사를 하고 이거 아기 기저귀이니 버리고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안 돼요. 가져가요.     


아주머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딱 잘라 말씀하셨다. 나는 당황했지만 차근차근 말씀을 드렸다.     


네? 아니, 집에서 가져온 쓰레기나 다른 쓰레기들은 집으로 가져가는 게 맞긴 한데, 아기 똥기저귀도요?      

가져가요.      


얄짤없이 잘라내시니 괜히 오기가 생겼다. 이때까지는 나도 정중했다.     


제가 화장실에 있는 기저귀갈이대에서 갈았어도 가져가야 했나요? 그럼 생리대는요? 그날인 여자들도 여기서 일 보면 생리대는 집으로 가져가야 하나요?      


아이, 시끄럽고. 가져가요. 화장실 밖에서 가져온 건 다 안 되니까.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실 텐데, 인상을 팍 쓰시며 인정사정없이 딱 잘라 말하는 그분의 태도에 순간 나도 엄청나게 기분이 나빴다.     


내 쓰레기 내가 가져가기 취지는 아는데요, 이런 것까지 무조건 막자는 취지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아, 안 된다고오!      


갑자기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씽씽카를 타고 나를 따라왔던 아들은 놀라고, 훅 들어온 고성에 나도 발끈했다.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지 마시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셔도 그렇잖아요. 이번에는 가져가는데요, 진짜 이런 것도 예외가 없는 규정이면 관리소에 건의라도 해주세요.     


아 시끄럽다고. 건의는 내가 왜 하냐고. 그쪽이 건의 하시라고!     


나는 이분이 관리소의 직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의를 해달라고 한 것인데 건의 할거면 네가 하라며 뒤로 갈수록 목소리에 크게 힘을 주시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욱하는 마음에 나도 말이 튀어나왔다.     


관리소에서 일하시니 가시면 건의 좀 하시라고요. 캠페인도 융통성이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 융통성이.       

아뿔싸! 방금 한 말은 내가 생각해도 말투가 좀 아니었다. 내가 미쳤나? 옆에 아들도 보고 있는데. 엄마가 보여줄 태도는 아닌데! 너무 무례했구나. 자각이 들던 찰나, 화장실 앞에 앉아있던 사람도 날 쳐다봤다. 제 3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관리인 아주머니는 약점을 잡았다는 듯 더 신랄하게 말하기 시작하셨다.     


싸가지가 없어, 싸가지가. 말하는 말투가 그게 뭐야. 지 새끼 똥은 지가 치우지. 요즘 것들은 싸가지가 없어.      


아, 맘충이라는 혐오표현이 있는 시대, 튀는 행동을 하면 애 엄마는 불리할 때가 많다. 하지만 방금 말투는 내가 실수한 게 맞으니 조용히 가야겠다. 상황판단이 내려지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걸어왔던 길로 걸어 내려갔다.      


아니, 그렇잖아요. 저런 것들도 엄마라고. 애가 뭘 보고 배우겠어. 애한테 참 좋은 꼴 보여 준다.     


관리인 아주머니는 이제는 아까 우리를 쳐다 본 사람에게 대화하듯 내 욕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도 내 뒷모습을 보고 있는지 뒤통수가 따가웠다.      


그렇다, 그 순간 나는 맘충이었다.      


‘맘충’이라는 말이 가진 문제점은 둘째다.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떠올렸을 가장 간단하고 직관적인 표현은 바로 그 말이었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호수공원을 즐기는 사람들(2019년)




남편 옆으로 돌아와서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남편도 그렇게 서로 감정대립 할 건 아니니 구청에 전화해서 확인해보고 건의하라고 했다. 구청에 전화까지 하기는 싫었지만 캠페인의 지침이 정말 그렇다면 그 또한 지나친 것 같아 구청 콜센터로 전화했다. 상황을 설명하니 전화 너머 직원은 아기 기저귀까지 못 버리게 하는 건 아니라며 공원관리소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화장실 관리인에게 구청에서 확인받았다 말하고 버리고 가시라는 안내까지 해주었다. 다시 마주쳐야 한다니. 진짜 비닐이라도 있으면 그냥 싸가지고 갈 텐데, 그럴 수도 없어서 나는 다시 똥기저귀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이번에는 아들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하고 혼자 갔다.     

환경관리인 아주머니는 저것이 또 왔네라는 황당한 표정으로 보고 계셨다.     


구청에 전화해봤더니 기저귀는 버리고 가는 게 맞다고 해서요.     


아이고, 그러셨어요. 그럼 버리고 가세요. 기어코 버리고 가네!       


비꼬는 말투가 기분 나빴지만 아까 실수한 것도 있어서 나는 차분히 말씀드렸다.      

       

제가 우기는 게 아니고요, 구청에서도 지침상 그렇다니까 다른 아기엄마들이 버리고 가도 잘못된 게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아, 알았으니까 버리고 가면 되잖아!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알았다고. 네 애 똥기저귀 그렇게 버리고 가고 싶으면 버리고 가라고!     


그 순간 공원에서 놀던 사람들 수십 명이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 와, 이거 가끔 인터넷에서 떠돌던 맘충영상들의 그 상황이 된 건가. 눈앞에 아찔해져서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아주머니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그동안 쌓인 게 많으셨는지, 소리를 지르며 쏟아놓기 시작하셨다.      


당신 같은 사람이 한 둘인 줄 알아? 나도 힘들어. 나도 힘들다고! 쓰레기 버리고 간다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나도 힘들어! 그러니까 버리고 가시라고 했잖아으아!!      


아주머니는 문장 한 문장 한 문장 말할 때마다 끝에 속부터 우러나오는 울화를 담아 진저리를 치며 소리치셨다.      


그런데 왜 자꾸 토를 다냐고. 청소일 한다고 날 무시하는거야? 나도 이 나이에 남들이 싸놓고 간 거 치우는 인생 고달파!      


순간 나는 아차했다. 절대로 청소일을 한다고 무시했기 때문은 아니었는데, 상대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하는 일을 낮춰봐서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니! 직업에 대한 편견으로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낀다면 무엇보다 큰 상처이다. 그런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     


아주머니는 그러면서도 계속 그놈의 똥기저귀, 버리고 가라고. 라며 똥기저귀를 강조하셨다. 남들이 보기엔 버리지 말라는 아기 똥기저귀를 기어코 버리고 가려는 이기적인 ‘맘충’이겠지.      


하지만 그런 시선보다도 나를 슬프게 한 건 청소일을 해서 무시받는다는 말이었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청소일이 하찮은 일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사람이 하는 일로 사람 인격을 무시하는 인간이 아닌데. ‘맘충’이 된 것보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직업 때문에 차별받고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지 못했다 느끼는 점이 안타까웠다. 오해든 뭐든 그런 상처를 받았다면 너무나 죄송했다. 그런데 이분은 지금 너무 격앙돼서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안 들리실 것 같다.     


나는 그냥 조용히 돌아서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결국 기저귀를 버렸다. 나에게 눈으로 쯧쯧쯧 혀를 차던 수십 명의 사람들도 흩어졌다. 아주머니는 내가 사라질 때까지 분을 삼키지 못하셨다.     


결국 나는 똥기저귀를 버렸고, 그분에게도 잘못 알고 계신다 말씀드렸다. 그렇게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졌는데, 속이 전혀 시원하지가 않았다. 청소일 한다고 무시하냐고 소리치시는 아주머니의 눈빛에 절망스러운 한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청소일을 하기 때문에 무시받는다고 생각하셨다면 안 그래도 마음이 힘들었을 텐데, 새파랗게 어린 애 엄마가 와서 말투를 그렇게 했으니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남편은 후회되는 마음을 괜히 더 이야기해봐야 서로 긁어 부스럼이니 잊으라 했다. 어린 아들도 아까 본 게 있어서 엄마 분위기가 안 좋다는 눈치가 있는지 엄마, 엄마 놀자, 하며 자꾸 나를 움직이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엉덩이도 무거워 놀 마음이 안 생겼다.      

다시 일어나 어딘가로 가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거, 참 그냥 있으라니까. 저 봐라. 엄마 또 간다. 아, 괜찮다니까.     


아, 있어 봐. 하고 남편의 염려를 뿌리친 나는 편의점에 들러 보리음료 두 개를 샀다.하루 종일 남들 놀러 온 거 보면서 그늘 없는 화장실 앞에 앉아계시려면 물도 못 마실 것 같았다. 화장실 쪽으로 내려가니 혼자 화장실 앞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있으신 뒷모습이 보였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키도 작으신데 굽은 등이 우리 엄마 같았다. 가까이 다가오는 인기척이 들리자 돌아보신 그분의 눈은 아까처럼 악에 받친 눈빛이 아니었다.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느꼈다. 그분도 마음 아파 하고 계셨다는 걸.


날은 더웠다. 냉장고에서 방금 꺼내와서 겉에 물이 흥건한 보리음료를 천천히 내밀었다.      


죄송해서요.      


아이고, 아니야. 뭘 이런 걸 사왔어.       


하루 종일 여기 계시면 물도 잘 못 드시잖아요.          

아주머니는 민망해하며 음료수를 받았다.     

나도 미안해. 나도 딸 같은 사람한테 그렇게 해 놓고 내가 돌았나 싶더라고. 왜 그랬을까 후회하고 있었어.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주머니도 그런 것 같았다. 내가 돌았나 싶더라는 말씀이 내 마음 같았다. 사람은 이렇게 도는 순간이 한번씩은 있는 걸까.     


저도 그랬어요. 저도 원래 그렇게 싸가지 없는 애는 아니에요.      


어설프게 웃으니 아주머니도 긴장이 탁 풀리셨는지 따라 웃으셨다.

나란히 앉아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 있다 보면, 별사람이 다 있어. 이 나이에 하려니 서러울 때도 많고. 그걸 괜히 애엄마한테 풀었네. 그냥 놀러 온 사람 기분 좋게 있다 가게 하면 되는데. 내가 왜 그랬는지.     


분명 나도 잘못했는데 당신의 행동만 후회하고 계신 아주머니의 마음이 진짜 엄마들의 마음 같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자식도 아닌 사람들을 이런 너그러움으로 바라보고 인내하며 보내셨을까. 융통성이 없냐고 따질 때만 해도 나는 이분이 관리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관리소 정식 직원도 아니고 청소 위탁을 받은 임시직원이신 것 같았다. 그러니 건의하라는 민원 앞에 무력감도 느끼셨을 터였다.     


여기 자주 와? 다음부터는 우리 웃으면서 보자. 또 보면 반가울 거 같아.      




광교호수공원의 야경


그렇게 아주머니와 헤어지고, 나는 그 뒤로 광교호수공원을 갈 때마다 아주머니와 인사를 하며 지냈다.      

그날 사람들은 ‘맘충’을 만났다. 나는 몰랐던 내 안의 낯선 모습을 만났다. 이렇게 어이없는 실수를 하고 나면 황당한 일이 있을 때 저 사람도 실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너그러운 마음이 조금은 더 생긴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 겸손해지게 된다. 나는 최소한 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배운 사람이라는 자아상은 허상이다.      


누구에게나 도는 순간이 있다. 실수는 반복되면 안 되지만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그날 아주머니와 나 둘 중에 누구 하나라도 나는 실수하지 않고 무결하다 믿었다면 우리는 서로를 껴안아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쓰레기 없는 공원. 도시가 깨끗함과 완전함을 유지하려고 해도 사람들은 빈틈이 있고 그렇게 도시는 불완전하게 돌아간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은 서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그래서 도시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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