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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rdSong Oct 05. 2020

칼국수에 날파리가 두 마리 빠졌지만 뭐, 괜찮아

오래된 칼국수집


바지락 칼국수를 한참 엄청 맛있게 먹고 있었다. 면발 사이로 까만 날개가 보였다. 

아 면발이 진짜 손칼국수야. 맛있군. 어, 날개?!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날개가 맞았다. 검은색. 난 시력이 좋아 날개그물까지 알아보았다.

가운데에는 이미 생명력이 빠져버린 흑임자같은 몸통이 있고 다른 한쪽 날개까지 온전히 잘 붙어있었다. 날파리가 맞았다.

음, 언제 들어갔지. 맛있게 반을 먹었는데. 이걸 말을 할까 말까. 내가 말하면 2미터 떨어져 있는 손님들도 다 들을 텐데. 처음부터 국물에 빠져있었을까? 국물에 우러났을까?  이제 칼국수를 받은 손님들 입맛이 뚝 떨어질까봐 좀 고민했다. 


쫄깃한 면발사이, 얕게 고인 칼국수 국물의 흐름따라 까만 사체가 흐느적흐느적 움직였다.

젓가락으로 근처를 깔짝대다가 마침 옆에 지나가는 홀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 언제 들어갔지? 다시 끓여드릴게요. 

하시는데 괜찮다고 했다. 이미 반이나 먹었다.


날파리사체가 유영하는 앞접시를 건네드리고 나는 다시 칼국수그릇을 잡아 가슴 앞에 놓았다. 

괜찮다. 바지락 국물은 여전히 맛있으니까. 뭐 어차피 먹은거. 저것만 건져내면 되지.

다시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퍼먹었다. 뭐가 둥둥. 어, 뭐지 이 으깨진 흑임자는?


다시 보니 털같은 것도 있다. 아, 그렇다. 그건 날파리의 다리였다. 

아까 것보다 작은 날파리 한 마리가 또 있었다.

젓가락으로 한번 더 휘휘 저으면 몇 마리가 더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가 훅 끼쳤다.

아까부터 내 옆에 미안해서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속삭였다.


여기..또.... 


아이고, 진짜 미안해요!


나는 저쪽 테이블 손님들에게 안 들리게 하려고 일부러 작게 말했는데 이 분이 더 크게 말씀하신다.


특별한 껍데기 그릇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사실 나는 이런 사람 손길 묻어나는 껍데기용 종이그릇도 좋아서 사진으로 찍어가며 신나게 먹고 있었다.

처음 상이 나왔을 때는 이 종이그릇이 접힌채로 눕혀서 왔다. 쟁반에 이상한 전단지 조가리가 있길래 다시 가져가시겠지 했는데 그걸 상위에 내려놓으셔서 좀 의아했다. 

이걸 왜 주셨지?  

바지락 칼국수를 먹다보니 이유를 알게 됐다. 

보통 뼈해장국집이나 치킨집에 있는 뼈담는 스텐그릇이 아니라 이렇게 일일이 접어야 하는, 그것도 늘 눈에 발에 채는 전단지로 만든 종이그릇이라니. 

한번 껍데기를 담으면 꽉 움켜쥐어 휙 버릴 수 있는 간편함을 생각하면 무심해보이지만 이걸 일일이 접었을 손길은 얼마나 수고로운가. 


손으로 적은 매직글씨로 앞 숫자만 바꿔놓은 오래된 차림표


이렇게 오래되어 앞 글자만 매직으로 바꿔 적은 차림표도 좋았다. 

이런 메뉴판을 볼 때마다 늘 생각한다. 이 메뉴는 원래 얼마였을까. 도대체 얼마일 때부터 팔기 시작했을까.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음식에 더 신뢰가 가니까.



커피 셀프 금연 진지한 궁서체



역시 오래 돼서 색이 바란 벽지와 누래진 에어컨. '커피 셀프' '금연'임을 알려주는 안내문구도 크기가 다른 궁서체로 뽑아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깔끔한 시트지도 아니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디자인 된 세련된 포스터도 아닌데 난 이런 손때같은 안내판이 좋았다.



최근 며칠간 칼국수를 먹는 장면이 많이 눈에 띄어 칼국수가 먹고 싶었다. 칼국수 전문점을 집근처에서 찾아보니 매일 지나간 곳인데 있는지도 몰랐던 아주 작은 가게가 대로변에 있었다.


일정 때문에 좀 이른 점심을 먹어야겠다, 문은 열었을까 하며 열시 갓 넘은 시각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직 개시도 안 한 가게, 4인용 테이블 8개인 작은 방바닥을 아주머니 한분이 빗자루로 조심조심 쓸고 있었다.

다행히 칼국수 준비는 되었다고 해서 앉았다.

아주 오랜만에 먹은 바지락 칼국수는 첫입부터 국물이 기가 막혔다. 면 한 가닥도 양 끝 사이의 굵기가 들쭉날쭉한 진짜 손칼국수였다. 오동통한 면발을 입에 하나 물고 씹으니 참 쫄깃쫄깃했다. 국내산이라는 배추김치와 깍두기도 오랜만에 나트륨 생각 않고 실컷 먹어야지 하며 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손가락만한 김치를 싸먹었다. 


그리고 반쯤 먹고 이거 다 먹을까 다이어터의 양심상 좀 남길까 고민하던 차에 나타난 흑임자 두 마리.


아주머니는 뜻밖의 연타에 매우 당황하시며 다시 해주겠다 하셨지만 나는 진심으로 괜찮았다. 주방에서 일하시던 할머니가 내 뒤 테이블에 앉아계셨는데 홀을 맡은 아주머니와 모녀지간이셨다.


할머니는 아이구, 그게 언제 들어갔누 하며 멋쩍어하셨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도 안다. 요리를 하다보면 온갖게 다 날아들고 푼수같이 뛰어들기도 한다.


다만 두 번째 날파리 사체를 발견하고 숟가락을 내려 놓은 것은, 안 그래도 배가 불러오던 차에

날파리가 다이어터의 양심을 붙잡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갑에서 오천원 짜리 한장과 천원짜리 두 장을 꺼내어 일어섰다. 아주머니가 괜찮다고 하셨지만

저도 진짜 괜찮다고 맛있었다고 손에 쥐어드렸다. 

신발을 신으러 나오려는데 아주머니가 그럼 이거라도 받으라며 천원짜리 두 장을 손에 억지로 쥐어주셨다.

저 진짜 괜찮아요. 진짜 맛있었다고요!

아니에요 진짜 이거 받아가시라고요!

옆에 손님들이 보면 웃길 것 같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이 천원을 받아쥐고 신발을 신었다.


체인점이 늘어나고 세련된 간판이 즐비한 도시의 거리. 나는 이 맛있는 칼국수집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다녔다. 

언제부터인가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 그런 가게를 찾을 때는 내 기억속에 익숙한 다른 체인점들의 간판처럼 커다랗고, 깔끔한 디자인의 새것 같은 간판들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런 '나 오래됐슈'하는 작은 가게의 낡은 간판 같은  눈에 띄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이 칼국수집은 이름도 정답다. 날파리가 빠졌어서 읽는 분들에게 위생상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름을 직접 적지는 않지만 좀 비슷한 말로 가게 이름 흉내를 내보자면 '먹읍세' 이런 식이다.

난 그 이름도 너무 좋았다. 바깥에 붙어있는 간판의 시트지는 갈라지고 다 떨어져나가지만

칼국수는 맛있었고 아주머니는 정갈한 손길로 청소를 열심히 하셨다. 가게 구석구석에 스며든 세월의 흔적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 밖에 있는 세월과 위생상의 더러움을 우리는 구별하지 않고 새것=깨끗한 것이라는 공식으로 음식점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도 않은데.


날파리는, 뭐. 도시가 아무리 깔끔해도 어디에나 날파리는 있다. 

사람 손으로 어쩔 수 없는 날개 달린 것에 대한 책임까지 물으면 너무 삭막하지 않나. 

요리에 별 것 다 빠뜨려본 사람 입장에서는 한번쯤 다시 가보고 싶은 오래된 칼국수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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