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칼국수집
바지락 칼국수를 한참 엄청 맛있게 먹고 있었다. 면발 사이로 까만 날개가 보였다.
아 면발이 진짜 손칼국수야. 맛있군. 어, 날개?!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날개가 맞았다. 검은색. 난 시력이 좋아 날개그물까지 알아보았다.
가운데에는 이미 생명력이 빠져버린 흑임자같은 몸통이 있고 다른 한쪽 날개까지 온전히 잘 붙어있었다. 날파리가 맞았다.
음, 언제 들어갔지. 맛있게 반을 먹었는데. 이걸 말을 할까 말까. 내가 말하면 2미터 떨어져 있는 손님들도 다 들을 텐데. 처음부터 국물에 빠져있었을까? 국물에 우러났을까? 이제 칼국수를 받은 손님들 입맛이 뚝 떨어질까봐 좀 고민했다.
쫄깃한 면발사이, 얕게 고인 칼국수 국물의 흐름따라 까만 사체가 흐느적흐느적 움직였다.
젓가락으로 근처를 깔짝대다가 마침 옆에 지나가는 홀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다.
어머, 언제 들어갔지? 다시 끓여드릴게요.
하시는데 괜찮다고 했다. 이미 반이나 먹었다.
날파리사체가 유영하는 앞접시를 건네드리고 나는 다시 칼국수그릇을 잡아 가슴 앞에 놓았다.
괜찮다. 바지락 국물은 여전히 맛있으니까. 뭐 어차피 먹은거. 저것만 건져내면 되지.
다시 숟가락을 들고 국물을 퍼먹었다. 뭐가 둥둥. 어, 뭐지 이 으깨진 흑임자는?
다시 보니 털같은 것도 있다. 아, 그렇다. 그건 날파리의 다리였다.
아까 것보다 작은 날파리 한 마리가 또 있었다.
젓가락으로 한번 더 휘휘 저으면 몇 마리가 더 나오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가 훅 끼쳤다.
아까부터 내 옆에 미안해서 서 계시던 아주머니께 민망한 웃음을 흘리며 속삭였다.
여기..또....
아이고, 진짜 미안해요!
나는 저쪽 테이블 손님들에게 안 들리게 하려고 일부러 작게 말했는데 이 분이 더 크게 말씀하신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사실 나는 이런 사람 손길 묻어나는 껍데기용 종이그릇도 좋아서 사진으로 찍어가며 신나게 먹고 있었다.
처음 상이 나왔을 때는 이 종이그릇이 접힌채로 눕혀서 왔다. 쟁반에 이상한 전단지 조가리가 있길래 다시 가져가시겠지 했는데 그걸 상위에 내려놓으셔서 좀 의아했다.
이걸 왜 주셨지?
바지락 칼국수를 먹다보니 이유를 알게 됐다.
보통 뼈해장국집이나 치킨집에 있는 뼈담는 스텐그릇이 아니라 이렇게 일일이 접어야 하는, 그것도 늘 눈에 발에 채는 전단지로 만든 종이그릇이라니.
한번 껍데기를 담으면 꽉 움켜쥐어 휙 버릴 수 있는 간편함을 생각하면 무심해보이지만 이걸 일일이 접었을 손길은 얼마나 수고로운가.
이렇게 오래되어 앞 글자만 매직으로 바꿔 적은 차림표도 좋았다.
이런 메뉴판을 볼 때마다 늘 생각한다. 이 메뉴는 원래 얼마였을까. 도대체 얼마일 때부터 팔기 시작했을까.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다면 음식에 더 신뢰가 가니까.
역시 오래 돼서 색이 바란 벽지와 누래진 에어컨. '커피 셀프' '금연'임을 알려주는 안내문구도 크기가 다른 궁서체로 뽑아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깔끔한 시트지도 아니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디자인 된 세련된 포스터도 아닌데 난 이런 손때같은 안내판이 좋았다.
최근 며칠간 칼국수를 먹는 장면이 많이 눈에 띄어 칼국수가 먹고 싶었다. 칼국수 전문점을 집근처에서 찾아보니 매일 지나간 곳인데 있는지도 몰랐던 아주 작은 가게가 대로변에 있었다.
일정 때문에 좀 이른 점심을 먹어야겠다, 문은 열었을까 하며 열시 갓 넘은 시각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직 개시도 안 한 가게, 4인용 테이블 8개인 작은 방바닥을 아주머니 한분이 빗자루로 조심조심 쓸고 있었다.
다행히 칼국수 준비는 되었다고 해서 앉았다.
아주 오랜만에 먹은 바지락 칼국수는 첫입부터 국물이 기가 막혔다. 면 한 가닥도 양 끝 사이의 굵기가 들쭉날쭉한 진짜 손칼국수였다. 오동통한 면발을 입에 하나 물고 씹으니 참 쫄깃쫄깃했다. 국내산이라는 배추김치와 깍두기도 오랜만에 나트륨 생각 않고 실컷 먹어야지 하며 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손가락만한 김치를 싸먹었다.
그리고 반쯤 먹고 이거 다 먹을까 다이어터의 양심상 좀 남길까 고민하던 차에 나타난 흑임자 두 마리.
아주머니는 뜻밖의 연타에 매우 당황하시며 다시 해주겠다 하셨지만 나는 진심으로 괜찮았다. 주방에서 일하시던 할머니가 내 뒤 테이블에 앉아계셨는데 홀을 맡은 아주머니와 모녀지간이셨다.
할머니는 아이구, 그게 언제 들어갔누 하며 멋쩍어하셨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도 안다. 요리를 하다보면 온갖게 다 날아들고 푼수같이 뛰어들기도 한다.
다만 두 번째 날파리 사체를 발견하고 숟가락을 내려 놓은 것은, 안 그래도 배가 불러오던 차에
날파리가 다이어터의 양심을 붙잡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갑에서 오천원 짜리 한장과 천원짜리 두 장을 꺼내어 일어섰다. 아주머니가 괜찮다고 하셨지만
저도 진짜 괜찮다고 맛있었다고 손에 쥐어드렸다.
신발을 신으러 나오려는데 아주머니가 그럼 이거라도 받으라며 천원짜리 두 장을 손에 억지로 쥐어주셨다.
저 진짜 괜찮아요. 진짜 맛있었다고요!
아니에요 진짜 이거 받아가시라고요!
옆에 손님들이 보면 웃길 것 같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이 천원을 받아쥐고 신발을 신었다.
체인점이 늘어나고 세련된 간판이 즐비한 도시의 거리. 나는 이 맛있는 칼국수집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다녔다.
언제부터인가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 그런 가게를 찾을 때는 내 기억속에 익숙한 다른 체인점들의 간판처럼 커다랗고, 깔끔한 디자인의 새것 같은 간판들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런 '나 오래됐슈'하는 작은 가게의 낡은 간판 같은 눈에 띄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이 칼국수집은 이름도 정답다. 날파리가 빠졌어서 읽는 분들에게 위생상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이름을 직접 적지는 않지만 좀 비슷한 말로 가게 이름 흉내를 내보자면 '먹읍세' 이런 식이다.
난 그 이름도 너무 좋았다. 바깥에 붙어있는 간판의 시트지는 갈라지고 다 떨어져나가지만
칼국수는 맛있었고 아주머니는 정갈한 손길로 청소를 열심히 하셨다. 가게 구석구석에 스며든 세월의 흔적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 밖에 있는 세월과 위생상의 더러움을 우리는 구별하지 않고 새것=깨끗한 것이라는 공식으로 음식점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도 않은데.
날파리는, 뭐. 도시가 아무리 깔끔해도 어디에나 날파리는 있다.
사람 손으로 어쩔 수 없는 날개 달린 것에 대한 책임까지 물으면 너무 삭막하지 않나.
요리에 별 것 다 빠뜨려본 사람 입장에서는 한번쯤 다시 가보고 싶은 오래된 칼국수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