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치의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몇 달 구독을 하다가 해지한 서비스의 종료 소식일 뿐인데, 정말 그것뿐인데 이상하리만치 감정적으로 흔들렸다.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미디어를 표방하는 매체였기에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후부터 틈틈이 지켜보았는데. 여성주의를 미디어의 정체성으로 내세운 이상 ‘비주류’ 딱지가 붙게 되고, 비주류의 목소리만 담아내는 매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현실을 꼭 두 눈으로 확인한 것만 같아서일까. 넘을 수 없는 장벽과 한계를 확인한 사람처럼 무력감을 느꼈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 반응 없이 조용했다. 포털엔 기사 하나가 있었고, 코멘트는 없었다. 핀치에는 주인을 잃은 글만 조용히 쌓여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류형정 작가의 부고를 들었다. 핀치라는 미디어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종료한 것과 한 작가의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만, 하필이면 일련의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안에서는 두 사건 사이에 교집합이 생기고 말았다. 여성주의 저널리즘을 실현하려던 미디어 스타트업, 독립출판을 하던 일러스트레이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일을 하던 이들이 떠났다.
고인의 소식을 접한 날 마침 받을 물건이 있어서 이후북스에 갔다.
“작가님, 작가님도 우리한테 집주소 알려주세요. 불안해서 안 되겠어 정말…”
자주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책방을 나섰다.
"괜찮다"는 말을 하고 뒤돌아 나오면서도 이게 "괜찮아야 한다"는 책임감인지 정말 괜찮은 건지 정의할 수는 없었다. 같은 소식을 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했다. 다른 분들은 괜찮을까.
누가 청탁을 하거나 돈을 쥐어주지 않아도 자기 작업을 묵묵히 해내는 몇몇의 얼굴이 떠올랐다. 혼자 자기만의 기준을 세운 뒤 외로움을 견뎌내고 일을 해내는 곧은 심지를 지녔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주변의 영향을 잘 받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제는 업계의 부정적인 소식이나 동료의 거취 하나하나에도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데 그들도 이렇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만난 동료에 대한 애정은 개개인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면서 업계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다. 책의 물성을 사랑하고 글의 힘을 믿는 사람들의 선한 의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과 신념이 곧장 물질적 대가가 되어 돌아오지 않는다는 어쩔 수 없는 산업의 한계와 한계를 개인의 저력으로만 버텨내야 하는 구조가 답답하다.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는 매체는 운영을 종료했고, 조용히 작업을 이어가던 작가가 떠나는 동안 방구석에서 나는 또 시급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故류형정 작가를 추모하는 글을 모은 계정이 생겼다. 누군가는 작가의 작업물을 하나하나씩 소개하듯 촬영해 올리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작가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추억하는 짧은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추모의 마음을 표현해낸 글이 누군가가 만든 계정에 모이자 작가와 안면이 없던 나 같은 사람도 쉽게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녀를 상상할 수 있었다.
@pray_for_drawing__stay에 모인 저마다의 추모글은 표현의 방식과 작가와 연결되어 있던 방식이 달라도 한 목소리로 이 계정을 방문한 이들에게 외치고 있다.
이대로 보내지는 않으려 해.
시간을 붙잡고, 기억을 모아 두려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