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성인 교육 회사 교육기획자로 취업했다. 동종업계 두 곳에서 면접을 봤는데, 첫 질문이 똑같았다. "회사 안 다니셔도 될 것 같은데, 왜 다시 직장인이 되려고 하세요?" 이 질문이 가장 먼저 나올만도 한 것이, 내 이력서에는 누가봐도 회사 밖에서 독립하기 위해 애써온 서사가 담겨있다. 대기업 공채 2번, 광고 대행사, 스타트업을 거쳐 마지막 회사는 대표 포함 6명이 전부인 찐 스타트업 이다. 그리고, 유료 독서 커뮤니티 운영, 온/오프라인 강의, 프리랜서 마케터로 일해온 야생(?)의 이력이 담겨있다.
솔직하게 답했다.
" 마케팅과 교육 분야에서 넓게 쌓아온 지난 저의 경력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귀사의 성장에 기여하고, 교육회사 운영 노하우를 가까이에서 배우고도 싶어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최고의 생산성은 서로의 이기와 이기가 만날 때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가까운 미래에 교육 회사를 차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망하지 않고 운영하고 싶습니다. 근무하면서 업계 인맥도 만들고 싶어요. 귀사를 내 회사처럼 여기며, 함께 성장시켜 나가고 싶습니다."
결과는 두 회사 모두 합격했다. 집에서 더 가깝고, 월급을 더 많이 주고, 일 7시간 근무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좋을 것 같은 회사를 최종 선택했다. 그런데, 왜 한 달만에 초고속 퇴사하게 됐냐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나는 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너무나 큰 사람인데, 그게 채워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다. 일은 그저 돈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내가 일에 투사하는 욕망이 다양하고 크다. 기본적으로 일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싶고, 사회적 인정도 받고 싶으며, 즐거움도 누리고 싶고, 좋은 사람과 교류하고도 싶다.
회사에 (아주 짙은) 야근 장려 문화가 있었다. 내가 어떠한 퍼포먼스를 내더라도, 야근을 하지 않으면 구성원들에게 인정을 받고, 나의 입지를 굳히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미 면접 때, 어린 아이를 기르는 엄마인데 야근이 가능하겠냐 라는 질문을 받았고 피치 못하게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가능하다 답했다.
하지만 이 회사에서 야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주3회 이상, 밤 9~11시 까지 야근을 하지 않는 직원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매일 17시 00분에 빛처럼 칼퇴. 저녁 6시에는 이제 막 두돌이 된 아이를 하원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일을 진짜 잘해도 본전이다. 만에 하나 성과가 나지 않거나, 티끌만한 실수가 생겨도 야근을 하지 않았음을 근거로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야근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저녁과 주말에 틈틈이 일을 했고,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으론 모자랐다. 그리고 같은 부서에 나와 같은 프로칼퇴러가 어떤 대접을 받으며 일하는지 가까이 에서 볼 수 있었다. 그는 나처럼 이른 아침과 주말에도 일하고 있었지만, 늘 공격의 대상 이었다. 나 역시 칼퇴가 계속되면 머지 않아 민폐 덩어리가 될 것이 그려졌다.
그리고 어제 퇴근 전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팀장 으로부터 직접적인 야근 압력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면담을 요청하고, 나는 현재 여건 상 잦은 야근이 어려우니, 퇴직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리고 2월 말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퇴사 사실을 아직 남편에게 말하지 못했다. 부부 사이에 톼사와 같은 중대사를 미리 논의하고 결정하지 못한 것은 분명 나의 큰 잘못이다.
입사 일주일 차에 남편에게 야근 문화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했다. 남편은 말했다.
"회사에서 꼭 인정을 받고 일해야 할까? 취업한 목적이 인정 받는 게 아니라, 교육회사 차리기 전에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니, 그것만 배우겠다 마음을 먹어봐. 야근이 꼭 필요한 날은 내가 하원을 담당 할게. 그리고, 지금 회사 복지도 너무 좋잖아. 밥값 안 들어, 7시간 근무에 자율 출퇴근에. 그러니까 당장은 마음이 힘들겠지만, 다니면서 계속 방법을 찾아보자."
맞는 말이지만, 정말 너무나 전형적인 T의 대답이다. F가 진 마음의 짐은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런 대답은 어땠을까.
"그냥 영혼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내 일에서 의미를 찾고 인정 받고 싶어하는 모습이 좋아보여. 스스로 중요하다 여기는 가치가 채워지지 않으니, 지금 마음이 내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 어려울 것 같아. 너무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으니까, 조금 길게 멀리 보면서 상황을 같이 지켜보자. 어떤 선택이든 믿고 응원할게."
깨어있는 시간 중 가장 긴, 일하는 시간을 내가 원치 않는 모습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일을 통한 성취와 사회적 인정은 아이를 기르는 엄마는 버려야 하는 욕심일까. 중요한 일을 맡고, 일로서 성장하며, 조직에서 인정 받고 싶은 건 철없는 바람일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당장 내일 부터 취업 준비를 다시 시작하고(야근 문화가 없는 교육회사여야 겠지.), 당분간 일에 대한 생각들을 글과 영상으로 기록해 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취업 전까지 프리랜서 업무와 오전 알바를 병행하며 내 용돈은 내가 직접 벌 것이다.
성급하다, 무책임하다 비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나의 남편이 가장 나를 무책임하다 생각할 것 같아 두렵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는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질 것이고, 지금 이 선택을 가장 좋은 선택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의 선택을 또 나의 앞날을 응원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