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보여."
1년간의 육아휴직을 끝으로 퇴사를 선택한 나를 두고 친구가 말했다. 이제 돌아갈 직장도 없고, 나를 대변해 줄 명함 한 장 없는데. 10년 동안 4번의 이직을 거치면서 내가 몸 담은 회사의 규모는 계속해서 점점 더 작아졌다. 첫 회사는 직원수 4천 명이 넘는 대기업이었고 다음은 30명 남짓이 함께 일하는 광고 대행사. 그리고 두 곳의 스타트업을 다녔는데 처음은 20명, 마지막 회사는 대표를 포함해 6명이 전부였다. 이제는 혼자다. 기댈 조직 자체가 사라졌다. 이런 나에게 친구는 왜 자리를 잡았다는 표현을 했을까? 사람이 '자리를 잡는다'는 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걸까?
몇 차례 이직과 회사밖 사이드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나는 내가 잘 자랄, 또 잘할 수 있는 환경이 어느 곳인지 알게 됐다.
일터에서 발견한 나의 특징들을 몇 가지 열거하면
업무의 전체상이 내 눈에 보여야 한다. (돌아보면, 학창 시절에도 전체상을 파악해야 하는 과목들을 좋아했다. 가령, 국사, 세계사, 지리, 윤리 같이 스토리가 있는 과목들)
누가 이래라저래라 시키는 걸 싫어한다.
내가 맡은 일을 내 영혼의 일부로 여긴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를 채워갈 때 보람을 느낀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쥴스는 어떤 과업이든 짬바로 유연하게 잘 적응하고, 쳐낼 수 있다는 게 강점이에요."
스타트업 두 곳에서 3년간 함께 일했던 이사님은 나를 이렇게 평가하셨다. 본업은 마케터이지만 사업계획, 앱기획, 영업, 디자인까지 두루 배우고 경험해 볼 수 있는 스타트업의 일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내가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하고,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며 성장시켜 나가는 과정은 보람찼다. 매일 내가 조금 더 나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대기업에서 나는 상사가 관리하기 까다로운 직원이었지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회사에 꼭 필요한 멀티플레이어였다. 한 분야를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빌드업하는 대기업의 일도 분명 장점이 많지만 나와의 궁합은 쪽박이었다.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1년이 지날 즈음, 나만의 스타트업을 해보고 싶어졌다. 위험 부담 없이 직장을 다니는 상태에서 사이드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독서커뮤니티를 만들어서 4년간 운영했고, 글쓰기 모임, 뉴스레터 편집자, 강의로 일을 확장했다.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브랜딩 하며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반을 쌓았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 일을 스스로 좋아서 본업과 병행하며 꾸준히 해왔다.
나는 내가 "타인의 성장을 돕는 일을,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행복한 일을 하면서도 월급에 준하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돈은 받는 게 아니라 버는 것이라는 배웠다.
친구가 말한 자리를 잡는다는 말은 "나에게 맞는 일을, 내게 맞는 형태로 하면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역량과 기반을 갖춰다."를 의미한다. 여기서 방점은 '나에게 맞는'에 찍힌다.
나에게 맞는 일을 찾고, 내 뜻대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갖추는 과정을 거치면서, 일을 대하는 나름의 철학이 생겼다.
1. 안정적인 직장보다 '안정적인 나'가 우선이다.
변한다는 말만 빼고 다 변하는 세상이다. 변화가 변수가 아닌 상수인 시대에 안정적인 직장을 삶의 목적이자 목표로 삼는 건 마치, 흔들리는 과녁 정중앙에 화살을 쏘는 일처럼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진다. 안정적인 직장인이 되기 위해 학창 시절 전부를 올인했다. 마침내 원하는 회사에 입사했지만 허무하게도 나는 그 시절이 인생을 통 틀어 가장 불안하고 불행했다.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할까? 이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명함이 없으면 날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와 같은 미래를 향한 고민들을 끊임없이 하면서.
안정적인 회사에 다닌다고 해서 내 삶도 안정적인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는 뼈아픈 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원형탈모에 위경련을 달고 살면서 그만두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상견례와 결혼식. 신부가 다니는 회사의 대기업 타이틀과 화환이 필요했다. 내가 내세울 건 회사 타이틀 밖에 없다고 되뇌면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버텼다. 이 시절을 지나며 배운 게 하나 있다.
'안정'이란 단어에 나만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
나에게 '안정'이란 어제보다 오늘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는 상태를 말한다. 흐르지 못하고 멈춰 있다고 느낄 때 불안을 느낀다. 규모가 크고 재정상태가 안전한 회사는 나에게 안정을 주지 못했다. 실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안정을 맹목적으로 좇기 전에, 나에게 있어서의 안정의 정의를 내려야 했다. 비단 안정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지향하는 성공, 성장, 행복, 사랑과 같은 반짝이는 단어들에 나만의 정의를 내리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누군가에게 성공은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권력을 거머쥐는 일일 수 있다. 나에게 성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자에게 더욱더 사랑받고 존경받는 평온한 삶이다. 사람이 제각기 다르듯, 지향하는 가치의 의미의 뜻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다수가 믿는 것을 그대로 따라 믿기 보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태를 지향하는지 탐색해볼 필요가 있다.
2. '일하는 나'와 '일하지 않는 나'를 분리할 수 없다.
마케터, 강사, 예비사업가, 엄마, 아내, 며느리, 친구. 나는 하나인데 나를 둘러싼 관계들 속에서 나는 복합적이면서 또 다른 사람이다. 얽히고설킨 존재인 나를 3단 로봇처럼 머리, 가슴, 배로 심플하게 뚝 떼어 분리할 수 없다. 일을 통해 생긴 나의 관점들은 세상을 보는 렌즈가 된다. 내가 함께 지낼 인맥에도 나의 일이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운이 좋으면 하루에 최소 8시간을 일하는 데 쓴다.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일 하는데 쓰는 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하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으면 삶도 행복할 수 없다. 우리는 왜 일 할까. 먹고살기 위해서. 잘 먹고 잘 살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행복이란 '즐거움'과 '목적의식'의 균형을 맞춘 '설계된 경험'이다. - 행복 전문가, 폴 돌런 교수
행복 전문가 풀돌런 교수는 행복이란 '즐거움'과 '목적의식'의 균형을 맞춘 '설계된 경험'이라고 말했다. 일 하는 나와 일하지 않는 나 모두가 만족스러울 수 있도록 일상 속에 경험들을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장 속 단어 하나하나를 풀어서 설명해 보면
'즐거움' = 퇴근 후의 여가 : 쇼핑, 친구 만나기, 맛집 가기
'목적의식' = 일 하는 시간 : 보람 : 성취, 보람, 성장
삶에 있어 의미를 찾는 인간은 퇴근 후의 즐거움 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게끔 설계되어 있다. 일을 통해 의미를 추구하며 자기 효능감을 느끼고, 여가 시간의 즐거움이 균형이 맞을 때 인간은 진짜 행복을 경험한다.
3. 돈을 꼭 힘들게 벌어야 하는 건 아니다.
평생 먹고 살 충분한 돈이 있어도 지금 하는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그렇다 말할 수 있다. 일은 어쩔 수 없이 힘들다. 다만, 그 힘듦이 '기꺼이'냐 '억지로'이냐 3글자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결과는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최근 대기업 공채 경쟁력이 스펙에서 경험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최근 남편이 교육 중인 신입사원들의 특징을 예로 들어 보겠다. SNS 담당 마케터는 회사 밖에서 인플루언서로 활동함과 동시에 타 브랜드의 공식 계정을 외주 받아 키워본 경험이 있다. 패션 MD는 본인의 패션 브랜드를 론칭해 본 경험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입사 전의 경험이 니치하고 뾰족하며, 이 경험은 회사에서의 업무와 완벽하게 꼭 맞는다. 스스로 하는 일을 스스로 의미 있다고 믿는 사람이 귀해졌다. 직원이 일에 대한 동기부여를 셀프로 할 수 있으면 직원도 좋고 회사도 좋다. 돈벌이를 넘어 나를 위한 일을 할 때 우리는 그 일에 정성을 다한다. 이때 우리는 일을 자아실현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일을 대하는 나만의 기준을 세우기까지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왔지만,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자리가 있다."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일부이다. 인간도 자연이다. 거대한 정글이 멋지고 웅장하다 한들 그곳에서 예민하고 섬세한 난초가 뿌리내릴 수 없다. 자연도 사람도 나에게 맞는 자리에 있을 때, 편안하게 숨 쉬며 무럭무럭 자랄 수 있다.
삶을 사회에 끼워 맞추던 시대는 끝난다. 『생각하는 힘은 유일한 무기가 된다.』 야마구치 요헤이
일에 나를 맞추지 말고, 나에게 일을 맞춰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지금 서있는 내 자리가 위태롭고 불안하다면 내가 못난 탓이 아니다. 단지 나 자신을 충분히 공부하지 못했고, 그래서 나에게 맞는 자리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2023년을 상징하는 다양한 키워드 가운데 '평균 실종'이라는 단어를 선정했다. 과거 산업화 혁명을 시작으로 멈출줄 모르던 경제성장이 끝남과 동시에 개인화 시대가 열렸다. 사람들의 취향이나 개성이 다변화되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평균'이라는 단어가 힘을 잃고 있다. 기업도 사람도 뾰족한 개성을 갖출수록 선택받는 사회가 된 거다.
앞으로 우리의 경쟁력은 각자의 나다움에 달려있다. 언제든지 쉽게 대체 가능한 ‘평균’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질 것이다. 누구나 대체불가능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꼭 필요한, 내가 아니면 안 되는 나의 자리에서 아름답게 피어나겠다 마음을 먹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