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란 묘한 시간입니다. 가만히 멈춰 있는 듯하지만, 그 안에서 우리 마음은 조용히 움직이며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이번 겨울, 동네 작은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한 날이 떠오릅니다. 창밖으로 조금의 쌀쌀함이 느껴졌으나, 카페 안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히 커피와 빵의 향기처럼 가득했던 오후였습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눈길을 먼 곳에 두었습니다.
유리창틀에 성에가 얇게 끼었고, 손으로 문질러 바깥을 다시 보니 부산에서는 보기 드문 가랑눈들이 천천히 춤추고 있었습니다. 손끝에 느껴지던 차가운 감촉과 커피잔을 감싸 쥐던 따스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던 순간, 기다림이라는 특별한 시간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카페 안은 고요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손님들의 낮은 대화 소리가 배경처럼 흘러갔습니다. 테이블 옆에 놓인 작은 장식들이 은은한 빛을 내며 공간을 채웠습니다. 나는 잠시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의 웃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만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 순간 나 또한 마음속에서 은은한 설렘이 피어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기다림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기쁨들, 그것들은 우리의 일상을 한층 더 빛나게 합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내 마음은 점점 더 분주해졌습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언제쯤 도착할지 모른다는 불확실함마저도 묘하게 즐겁게 다가왔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양한 상상들, 그리고 그 상상 속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감정들이 기다림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지요. 나는 무릎 위에 쓰다만 공책을 펼쳐 들었지만, 활자는 그저 눈앞을 스칠 뿐,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습니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며, 나의 기다림 속에 함께했던 겨울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눈 내리던 날 산책로에서 느꼈던 차가운 바람, 그와 대비되던 붕어빵의 따스한 온기, 그리고 오랜 친구와 오랜만에 나누었던 대화의 여운. 이런 기억들이 기다림 속에서 하나둘 떠오르며 나를 감싸주었습니다.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기억을 깨우고 그것을 되새기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찬바람과 함께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은은한 커피 향이 발갛게 물든 코를 다독이는 듯해 보였습니다. 그러고 조금은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기다림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 미소는 기다림 끝에 마주한 작은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내 앞에 앉아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많이 기다렸어요?"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지만, 사실 그 기다림의 모든 순간이 즐거웠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기다림의 설렘은 단지 그 끝에서 마주한 기쁨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다리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순간들, 평소엔 지나치기 쉬운 풍경과 감정들이 더욱 큰 가치를 지닙니다. 카페 창밖을 보며, 내 안에 있는 설렘과 기쁨이 조용히 커져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치 커피 잔 속에서 퍼지는 따스한 김처럼, 기다림의 설렘도 서서히 우리를 감싸며 특별한 온기를 전해줍니다.
그날 나는 카페를 나서며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기다림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요. 기다림은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시간입니다. 그것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혹은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든 간에, 기다림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다림은 단순히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삶 속에서 더욱 깊이 숨 쉬고, 더욱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과정입니다.
오늘도 겨울의 어느 카페에서 다시 한번 기다림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번엔 창가에 앉아 따뜻한 차를 주문하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기다릴 겁니다. 잠시 눈을 감고 펑펑 내리는 눈을 마음속에 그려보면, 이내 내린 눈 속에서 설렘이 작은 꽃처럼 피어나는 걸 느낄 테지요. 기다림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기쁨이 나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끌어줄 겁니다. 그렇게 나는 이 겨울, 기다림 속에서 더 큰 행복을 발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