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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Dec 09. 2024

탄핵과 촛불

변하지 않는 것들

12월 6일 국회앞 탄핵 집회_출처: 머니투데이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120913552510162


2016년 겨울, 나는 광화문 한복판에 서 있었다. 손에 든 촛불의 떨림과 그 위를 비추던 나와 친구의 표정. 피켓을 들고 서있던 우리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도 분명 머릿속에 있었지만, 이건 아니라는 마음과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발을 다독이고, 마음 끝을 찔러댔다. 그러고 시간이 지난 지금 비로소 알게 됐다. 그 경험은 바뀌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바뀌지 않을 우리의 모습이라는 걸.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진짜 변한 것은 무엇이었나. 아니,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지낸 것이었을까. 뉴스에서 들려오는 비상계엄, 탄핵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그날 이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 모든 게 반복되고 있는 건 아닌가.


정의를 외쳤던 수많은 목소리들, 손끝에서 빛나던 작은 촛불들이 만들어낸 변화는 분명했다. 헌정사에 전례 없는 탄핵이 이루어졌고, 권력을 견제하려는 시민의 의지는 분명히 드러났다.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것들도 여전했다. 같은 얼굴들, 같은 언어들, 같은 방식으로 다시 반복되는 권력의 무책임함과 왜곡. 우리가 만들어낸 변화조차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더 있다. 그 시절처럼 옳음과 정의의 곁에 선 사람들이다. 촛불을 든 수많은 손, 그 손들이 만들어낸 따뜻한 공기. 8년이 지나고서야 그 의미를 다시 깨달았다. 누군가 대신해 아름다운 이 땅을 만들어 달라 외치는 것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살아갈 이 땅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들었던 촛불은 단순히 저항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로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옛 선택은 내게 다시금 묻는다.  '나는 변하지 않았는가?', '나는 변하고 말았나?' 촛불로 세상이 바뀌길 바라며 외쳤지만, 정작 나 자신은 내 안위만 생각하고 살고 싶은 건 아닌지 말이다. 이제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은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치밀어 오르는 부끄러움에 어디에도 터놓고 말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탄핵을 외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 나는 수개월 동안 거리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 발밑의 아스팔트가 차갑게 스며들던 밤, 수많은 사람들과 어깨를 맞대고 외쳤던 날들. 우리는 다른 이들을 대신해 변화를 요구했던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겠다는 결심을 다지고 있었다. 그 기억과 모습이 나를 다시 끄집어냈다. 부끄러움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지 않는 것이다.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사랑을 물으려 들 때, "왜 사랑해야 하지?"라고 질문하기 시작하면 답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세상은 이유로 가득하지만, 사랑과 변화는 이유를 초월한다. 우리는 그저 사랑하고, 그저 변화해야 한다. 나는 우리가 만들 변화와 시대를 스스로 다시금 사랑하고 싶어졌다.


촛불을 들던 손끝이 생각난다. 그날의 우리는 겨울바람에 떨면서도 따뜻했다. 함께 외치던 목소리들이 만들어낸 울림이 우리를 지탱해 주었다. 변화는 끝나지 않는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변하지 않는 것들은 여전히 우리를 가로막는다. 그러나 그 앞에서도 우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촛불은 겨울바람에도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시 그날처럼, 나는 나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었다.

‘나는 변할 준비가 되었는가?', '스스로 사랑하고 싶은 곳을 만들고 싶은가?'  그리고 훗날 언젠가에도 거리낌 없이 오늘과 같이 생각하길 바랐다.


나는 바뀌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도 변하지 않는 촛불로 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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