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묵 Apr 04. 2023

월급으로 사는 좋음

 어쩌다 월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급여일은 좀 남았지만 월급 받으면 뭐부터 하고 싶냐는 물음에 그냥 저축할 거라고 했다. 동료들은 왜 저축만 하냐며 원하는 걸 사거나 하고 싶은 것 없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그러게요, 요즘은 그리 원하는 게 없네요.'라며 다소 맥 빠지는 대답을 했다. 물론 돈이 이미 너무 많아서 필요한 게 없다거나(그랬으면 좋겠지만) 한건 아니다. 단지, 내가 원하는 것들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라 그럴 뿐인 거다.


 예를 들어, 희망 같은 추상적인 그런 것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대화 주제는 돈이 많으면 사고 싶은 것들로 빠르게 흘러간다.


 내게 그런 주제들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물론, 단순히 비싼 것이나 돈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다. 되려 어릴 때부터 기회만 있으면 잇속을 챙기는 녀석에 가까웠다. 중학생 때만 해도 어떻게 게임으로 돈을 벌지 고민했고, 대신 줄 서주기, 벼룩시장 열어서 중고품 팔기 등등 돈 벌 기회만 있으면 돈을 어떻게든 벌고자 했다. 그러다 결국 왜 세상은 돈으로 돌아가는 건지 궁금해서 경제학과로 진학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비싸고 좋은 것들을 얘기하는 데에 흥미가 없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20대 초중반 즈음이었을 거다. 당시 나는 반쯤 죽어 있었다. 군대에서 혹사당하고, 사랑에 데고, 사람에 치이고, 준비하는 시험은 떨어지고, 인생에 실패의 꼬리표가 달린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맛있다고 하지 못했다. 비싼 선물을 받아도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그야말로 당시의 나는 감정 없이 움직이는 깡통이었다. 늘 고통받고 불행해서 내일도, 내일모레도 똑같을 거라는 절망이 가득했다. 그러면서 아픈 마음을 티 내며 살 수는 없어서 아프지 않은 척했다. 당시 세상은 나에게 너무 가혹해 보이는 곳이었다.


 우울한 일상은 끝이날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러던 중에 친한 친구와 술 한잔을 하면서, 상처받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친구는 옆에서 나의 이야기와 우울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러고선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나는 당시의 네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백 프로 공감할 수는 없다. 그래도 고생 많았다. 조금만 힘내서 같이 재밌게 살아보자.' 그 조금 어설픈 위로가 내겐 희망을 향한 작은 디딤돌이 되었다. 우리 둘은 이내 말없이 술을 주고받으며 요지경인 세상에서 잘살아보자고 약속했다.


 친구와 약속을 한 다음 날, 친구와의 술자리는 이렇게 기억되었다. '희망은 절망과 비탄 속에서 한 번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그 후로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독서부터 그만뒀다. 하루에도 몇 시간, 몇 권이고 읽던 독서는 오히려 해가 된다고 느껴졌다. 대신에 세상에 나를 냅다 던졌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가리지 않고 도전했다. 학생운동이며 대외 활동들을 거침없이 해나갔다. 그러다 또 수렁에 발이 빠질라 치면 친구의 위로를 디딤돌 삼아 건너며 요리조리 세상을 누볐다.


 그런 희망은 얼마쯤의 값어칠 가질까? 적어도 내겐 숫자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무엇에 돈을 쓰고 싶냐는 말엔 그냥 저축할 거라 말한 뒤에 늘 셈 해본다. 희망, 고마움, 배려 등과 같은 좋음에 대한 값어치를 어떻게 매겨야 하는지 말이다. 고마웠단 말과 그냥 생각이 나서 전화했다는 안부로 이자를 치르고, 무엇이 우릴 더 즐겁게 할지 생각하며 좋음의 원금을 계산한다. 원금들은 때때로 형태를 바꿔 맛있는 음식이 되고, 근사한 경험 등으로 치환된다. 이번 달도 월급날이 가까워진다. 좋음을 사고 싶은 날이 다가오고 있다.

사실 맛있는 음식은 그 자체로 우리의 좋음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벚이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