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거세게 달려드는 비에 바지 밑단이 젖어든다. 이내 허벅다리까지 거멓게 물드는 바지를 보다 말없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 시원한 공기를 타고 달라붙는 바지가 영 꺼림칙하다. 억지로 살갗에서 덜어내려 해도 붙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달라붙는 바지에게 질투가 났다.
오늘도 타인의 삶과 꿈을 위해 사느라 건조해진 나니까. 그래서 잔뜩 물 먹은 바지가 날 타박한다. 살아야지. 살아야지. 비에 젖어 살에 붙어 그렇게 살아야지. 그래서 고개를 조금 돌려 창문 밑에 사랑이라 조그맣게 적었다. 사랑이 오니까. 그럼, 나는 사랑에 젖어야겠다. 그렇게 사랑에 붙어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