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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우 Aug 08. 2021

배달의민족 김봉진, 흙수저로 시작해 5000억 기부까지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대표


1. 납땜을 하다 미술을 전공했다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난 김봉진 대표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유복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공고에 진학한다. 김 대표는 원래 미술을 배우고 싶어 했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예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어 고등학교 시절 성적은 거의 꼴찌 수준이었다. 학업이 도무지 맞지 않아 학교 수업을 빼 먹기도 했다. 미술에 대한 김 대표의 열망은 공고에 진학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어렵게 미술을 시작하게 된다. 아버지를 설득해 디자인 학원을 다니며 입시를 준비했고, 그 결과 서울예대 실내디자인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2. 디자이너 김봉진, 2억 원의 빚을 지다
     
대학교에서 실내 디자인을 전공한 후 그는 네오위즈, 네이버 등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했다. 김 대표는 디자인으로 커리어를 쌓아 2008년, 가구 분야로 첫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완성도 높은 수제 가구 디자인으로 매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며 주목을 받았지만, 높은 단가와 낮은 사업성으로 인해 사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이후 그에게 남은 것은 2억 원의 빚이 전부였다.
 
     
3. 스마트폰 시대, 앱에 주목하다
     
사업 실패 이후 김 대표는 다시 디자이너로 일하며 빚을 갚아갔다. 그는 빚을 완전히 갚기도 전에 사업에 재도전하며 컨설팅 에이전시 ‘플러스엑스’를 창업했다. 하지만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봉진 대표는 자신의 능력을 보다 갈고닦기 위해 회사를 떠나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그때 아이폰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고,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혁명이 불었다. 김 대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마트폰 앱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중 그가 주목한 분야는 ‘전화번호’였다. 그는 스마트폰용 전화번호부 앱을 만들고자 했으나 수익성과 DB 구축에 어려움을 느끼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그것이 바로 배달이었다.




4. 전단지를 줍고 다녔다
 
그가 배달 앱을 만들기 위해 처음 시작한 일은 전단지를 줍는 일이었다. 2010년, 6개월 간 골목 곳곳을 돌아다니며 배달 전단지를 주웠다.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단지를 모으기 위해 경비 아저씨에게 자양강장제를 돌리고, 폐지를 줍는 할머니들과 친목을 쌓는 등 피나는 노력을 했다. 새벽에 택시를 타고 가서 전단지를 수거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에 천 장 이상의 전단지를 수거했고, 수거한 전단지를 스캔해 식당 리스트를 만들어갔다.
     
당시에는 배달통, 배달114 등의 배달 앱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거리에서 모은 5만 개의 전단지 데이터와 B급 감성의 디자인 등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배달의 민족은 인기몰이를 하며 앱스토어 다운로드 순위 1위에 등극한다. 2014년에는 배달업계 최초로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으며, 2018년에는 연간 거래액 5조원을 넘긴다.
   
 
5. 수작업으로 시작한 바로 결제 서비스?
     
요기요가 바로 결제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김봉진 대표도 바로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채 서비스를 시작해 모든 작업은 수작업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고객이 배달 앱으로 주문을 하면 배달의 민족 직원이 주문 내용을 확인하고, 해당 음식점으로 전화를 걸어 재주문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 메뉴나 배달 장소가 바뀌는 경우도 종종 일어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바로 결제 서비스는 모바일 주문의 시대를 열었고 실리콘밸리의 투자사로부터 20억 원의 투자를 받게 된다.
     
     


 
6. B급 감성이 먹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달의 민족은 이 문구로 광고계의 한 획을 그었다. 매력 넘치는 B급 감성과 키치한 분위기로 단순 홍보가 아닌 즐거움을 주는 광고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이외 “다이어트는 포토샵으로”, “오늘 먹을 치킨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등의 유머러스하고 인상적인 카피들을 옥외광고로 내세우며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배민신춘문예,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 배민 글씨체 등 파격적이고 전에 없던 마케팅으로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7. 기업가치 4조 원에 이르다
     
배달의 민족은 서비스 확장을 멈추지 않았다. 2015년에는 외식 배달 서비스인 배민라이더스를 출시했고 이후 소상공인을 위한 배달음식용품 판매 사이트 ‘배민상회’를 오픈했다. 또한 모바일 반찬 배송 서비스 ‘배민찬’, 바로 장을 볼 수 있는 ‘B마트’ 등의 혁신적인 시도를 반복하며 흑자를 기록했다.
 
우아한형제들은 2011년 3억, 2012년 2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후 2014년에 520억,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각각 570억 원과 350억 원 및 360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2019년에는 요기요와 배달통의 모회사인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합병 됐다. 딜리버리히어로는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가치를 40억 달러(약 4조7500억 원)으로 평가하고 국내외 투자자 지분 87%를 인수했다. 이는 토종 인터넷 기업의 M&A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2010년 3천만 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 기업가치 4조 원을 넘는 유니콘으로 성장한 것이다.
     





8. MZ 세대가 원하는 기업을 만들다


“경희야, 넌 먹을 때가 제일 예뻐” 배우 류승룡이 모델로 나온 배달의 민족 광고 문구다. 여기에 나오는 경희는 사실 회사 직원의 이름이라고 한다. 김봉진 대표는 광고가 반응이 좋은 것을 확인하고 다른 직원의 이름도 따서 다양한 카피를 만들어갔다. 그렇게 ‘펀 경영’을 하며 고객은 물론 직원들까지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배달의 민족은 현재 MZ 세대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 중 한 곳이 되었다. 다양한 사내 제도를 통해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근무환경이 그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어,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뜻의 ‘지만가’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본인과 배우자, 부모, 자녀 등의 생일에 조기 퇴근하는 제조다. 지만 먼저 간다 해서 ‘지만가’라고 부르기도.  
     
자유로운 사내 분위기를 만든 김봉진 대표지만, 그는 예상외로 규율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실행은 수직적으로 문화는 수평적으로" 라는 모토를 내세웠다. 규율과 자율의 밸런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판단한다.
 
     
9. '5000억 기부' 한국인 최초 더기빙플레지에 이름을 올리다

김봉진 대표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기부단체 더기빙플레지 이름을 올렸다. 김 대표는 배달의민족을 딜리버리히어로에 매각하면서 취득한 DH 주식 가치 등을 포함해 총 1조 원대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그의 기부 금액은 전체 재산의 절반 가량인 5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는 손님들이 쓰던 식당 방에서 잠을 잘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에, 어렵게 예술대학을 나온 제가 이만큼 이룬 것은 신의 축복과 운이 좋았다는 것으로 밖에는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2017년 100억원 기부를 약속하고 이를 지킨 것은 지금까지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며 이제 더 큰 환원을 결정하려 한다”라고 말했다.





▼ 영상으로 확인하기 ▼

https://www.youtube.com/watch?v=XofntkX951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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