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칸방에서 한국 최고 부자가 되기까지
이재용 제쳤다…카카오 김범수 한국 최고 부자 등극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제치고 대한민국 최고 부자로 등극했다. 7월 29일 블룸버그 지수에 따르면 김범수 의장 자산은 121억 달러(약 13조9천억 원)의 이재용 부회장 자산보다 많은 134억달러(약 15조4천억 원)다.
김범수 의장은 주가 고공행진에 힘입어 올해 들어서만 재산을 60억 달러(약 6조9천억 원) 이상 불린 것으로 집계됐다. 카카오 주가는 올해 들어 91% 급등했다.
1. 단칸방 ‘흙수저’ 신화를 쓰다
지금은 대한민국 최고 부자에 오른 김 의장이지만, 어린 시절 일곱 명의 식구와 함께 단칸방에 살았을 정도로 가난했던 ‘흙수저’ 출신이다. 전남 담양에서 상경한 부모 밑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나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다. 아버지는 목공 일과 막노동, 어머니는 식당일을 했다. 이런 가정환경 탓인지 성공에 대한 김 의장의 집착은 유달랐다고 전해진다. 재수 시절에는 손가락을 베어 혈서를 쓸 정도로 독하게 공부했다. 그렇게 김 의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86학번으로 입학해 과외를 하며 학비를 마련했다. 이후 삼성데이터시스템(삼성 SDS 전신) 입사해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1994년 그는 ‘유니텔’ 개발에 참여해 기술개발은 물론 기획, 설계, 유통까지 유니텔의 모든 것을 담당했다.
2. 가장 성공한 PC방 사장님? 한게임, NHN 등 탄탄대로의 길 걸어
이후 그는 회사를 퇴사하고 서울교대 근처 오피스텔에서 게임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IMF 직후라 직원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사업도 쉽지 않았다. 10여 명의 직원으로 시작했지만 도중에 다 나가고 1명만 남았다. 김 의장은 사채까지 동원해 2억5000만 원의 자금으로 PC방을 차렸다.
한양대 앞에서 전국 최대 규모의 PC방 ‘미션 넘버원’을 오픈한 후 ‘PC방 고객 관리 프로그램’을 제작해 자금을 마련했다. 그 자금으로 바둑, 포커, 고스톱 등의 게임을 서비스하는 ‘한게임’을 세웠다. 그는 실제로도 바둑, 포커, 고스톱 등을 즐겼다고 한다.
컴퓨터와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넘어 사람과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그의 이론이 적중해 한게임은 1년 6개월 만에 회원 천만 명을 모았다. 이후 그는 입사 동기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와 한게임을 합병해 NHN의 공동대표가 됐다. 한게임은 초창기 NHN의 수익 대부분을 담당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는 7년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서 그는 “인생의 정상에서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항간에는 이해진 의장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리지 않았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3. 카카오, 전설의 시작
2007년 김 의장은 새롭게 블로그 사업을 추진했다. 김 의장은 구글의 사업모델을 검토한 뒤 블로그 부문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판단하여 블로그 관련 사업체인 ‘아이위랩’을 창업했다. 그리고 아이폰 출시 이후 모바일에 집중하기 위해 2010년 실시간 그룹형 커뮤니티 서비스 ‘카카오 아지트’를 발표했다. 이것이 카카오라는 명칭을 사용한 첫 서비스다.
카카오 아지트를 발표한 지 약 한 달 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했다. 카카오톡은 기획 두 달 만에 출시까지 이어졌다.
4. “사람이 모이면 돈이 벌린다” 카카오톡 오픈 하루 만에 앱스토어 1위
카카오톡은 오픈 하루 만에 앱스토어 1위, 3만 다운로드를 돌파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당시 카카오톡은 아이폰 사용자간 무료로 문자 메시지 및 사진, 동영상을 주고받을 수 있고 실시간으로 그룹채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지인들을 추천해주는 지인추천 기능을 통해 다양한 네트워크를 확장 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김 의장은 사람들이 모이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관련 책들을 직원들에게 선물하는 등, 당장은 카카오톡이 수익이 나지 않아도 사람이 모이면 언젠가는 수익이 날 것이라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때 김 의장은 아이위랩 사명을 카카오로 변경하며 브랜드 강화에 나섰다. NHN을 창업해 이미 성공 가도를 달려왔던 김 의장은 카카오톡으로 또 한 번 새로운 대박을 기록했다.
5. 다양한 수익모델, 카카오 왕국을 건설하다
첫 시작부터 대박을 터트린 카카오톡이었지만 여전히 숙제는 안고 있었다. 바로 수익성에 관한 부분이었다. 김 의장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방준혁 넷마블˙코웨이 의장 등과 만나 당시 수익모델이 없는 카카오톡의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과 920억 원가량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와 서비스를 카카오톡과 연결할 수 있는 첫 단추를 끼웠다. 선물하기 기능 등을 시작으로 카카오톡은 수익 창출에 시동을 걸었고, 막강한 사용자를 기반으로 더욱 다양한 수익 모델을 만들어 왔다. 금융서비스, 택시, 내비게이션, 쇼핑, 게임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했다. 2014년에는 다음과 합병해 몸집을 키웠다.
카카오는 IT 산업계의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내며 현재 계열사 118개, 시가총액 66조 원의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렇게 김범수 의장은 제로베이스에서 시가총액 1조 원이 넘는 회사를 두 번이나 만들어낸 입지전적한 인물의 상징이 되었다.
6. 승부사 김범수, 딱 6개월만 생각한다
카카오톡이라는 혁신적인 어플을 개발해 거대한 카카오 왕국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김범수 의장의 승부사 기질이다. 그는 “최악의 리더는 결정하지 않는 리더”라고 말하며 빠르고 과감한 결정력을 보인다. 김 의장은 자신의 승부 호흡으로 ‘6개월 원칙’을 꼽는다. 내일이나 한 달은 너무 짧고, 1년 이상은 너무 길어 대응이 늦다는 것. 딱 6개월이 좋다고 그는 말한다.
7. 소탈함과 격식 차리지 않는 성격
김 의장은 격식을 차리지 않는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정장이 아닌 티셔츠와 편한 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편이라고 한다.
카카오는 설립 초부터 영어 이름을 도입해 친근한 기업 분위기를 형성하려 노력하고 있다. 김 의장의 영어 이름은 브라이언.
한편, 조선일보 설문결과에 따르면 ‘후배 창업자에게 누가 더 밥을 잘 사줄까?’라는 질문에 네이버 이해진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2.9%였던 반면 김범수 의장은 87.1%가 선택했다고 한다.
8. “재산 절반 사회에 환원할 것”
김범수 의장의 카카오톡 프로필명은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떠나는 것’으로 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관심이 많다. 지난 3월 김 의장은 ‘더 기빙 플레지’에 참여해 재산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공식 서약했다. 그 규모는 5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김범수 의장은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 다음으로 국내에서 두 번째로 더 기빙 플레지에 이름을 올렸다.
9. 거액 증여, 마음의 빚 갚았나
지난 1월 김범수 의장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 33만 주를 가족과 친인척에게 증여했다. 부인과 두 자녀를 포함한 14명의 친인척에게 1452억 원가량의 주식을 증여했다. 부인과 두 자녀에게 각 6만 주(246억 원 상당), 그 외 다른 친인척에게는 4200~2만5000주를 나눠줬다.
이와 관련해 네티즌들은 상당수가 흙수저 출신인 김범수 의장이 그간 자신을 도와준 친인척들을 잊지 않은 훈훈한 미담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김 의장의 누나와 남동생, 여동생 모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김 의장 뒷바라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친인척에게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주식을 증여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흙수저’ 출신 성공할 수 있다…자수성가의 아이콘으로 우뚝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제치고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다 입 모아 말하는 시대에 ‘흙수저’ 출신인 그가 조 단위의 사업체를 일궈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도전정신과 희망을 엿볼 수 있다. 그가 이뤄낸 성공과 통 큰 기부 그리고 앞으로 보여줄 그의 행보 모두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 영상으로 확인하기 ▼
https://www.youtube.com/watch?v=clzjGGeEqJ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