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던 그 날의 심정들
D-day
퇴사 일자가 정해진 건 한참 전이었는데도, 막상 당일이 되니까 기분이 묘했다. 더 정확히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았을 것이다. 이렇게 아침마다 이곳으로 출근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결국 이런 날이 오는구나.
왔구나.
오늘이구나.
의미 부여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괜히 많이 생각할수록 슬퍼질 것 같았다. 그럴 수록 나만 내 처지가 더 안쓰러워질 것이고.
생각을 비우고 담백하게 심플하게 바라보기로 했다. 사실 아무 생각도 안 하도록 그냥 뇌를 멈췄다. 어차피 마지막 날이라서 할 일도 없으면서 괜히 컴퓨터하는 척 끄적끄적, 회의실을 왔다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 오히려 좋아 밝은 척을 했다. 꽤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음이 너무 울적했다. 누군가와 조금만 더 깊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바로 울음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런 날일수록 회사에서 울면 스스로도 너무 창피할 것 같아서, 한없이 가벼운 대화만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몸에 한 가득 눈물을 채운 채로, 그러나 얼굴은 웃는 채로 다닐 수 있다는 게 놀랐고 힘들었다.
우리 회사에서 그간 들어왔다 나간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으며, 앞으로 또 얼마나 많겠나. 그리고 나도 그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 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다. 나라고 예외라는 생각을 버려하지, 하고 스스로 가스라이팅도 해본다.
그러나 그 자체가 너무나도 씁쓸한 건 사실이었다. 결국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던 것이었다. 듣기 좋은 그럴싸한 말들로 아무리 포장을 한다 하더라도, 결국 기능으로서 나의 직무는 시스템 속에서 손쉽게 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 행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시스템을 만든 게 나였고, 결국 그 시스템을 만들고 나니 나가게 되는 처지가 되었지만 말이다.
'공동창업자'라는 그럴싸한 타이틀도 있었지만, 결국 수많은 팀들이 그러하듯 이러한 결론이 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흔히들 살면서 죽음을 신경 쓰지 않듯, 나도 이런 옵션은 생각 조차 안 했을 뿐이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책상과 서랍의 짐들을 싸면서 정말로 실감이 났다.
오래 전에 받았던 편지와 쪽지들, 예전에 구상하던 사업 모델이 끄적여 있는 공책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쌓아온 각종 명함들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생각보다 나에게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인지, 이미 웬만큼 마음 정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괜시리 울컥했다.
이성적으로는 이미 마음이 다 떴는데도 그런 섭섭함이 느껴지는 것은, 내가 지난 날 불태웠던 밤들, 고민하며 지새웠던 날들, 그리고 그럼에도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들 때문일 것이다. 아쉬움일지 그리움일지 모를 감정에 휩싸이는 스스로를 보며, 그간의 시간 동안 내가 쏟았던 애정이 새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깊은 밤, 집에 혼자 남고 나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번 시작한 눈물을 그칠 줄을 몰랐고, 아무 생각 없이 머리가 아프도록 내리 울었다. 소리내서 엉엉 울었다.
첫사랑의 아픔에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처럼, 이렇게 가슴 아파하며 운 것도 얼마만이었던지.
다음날 아침, 퉁퉁 부은 눈을 보니 웃음이 피식 나왔다.
몸에 충만한 자유와 생기를 느끼며, 그래도 후회는 없이 최선을 다했기에, 어제의 눈물이 마지막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돌이켜보니 2년 5개월 동안 그래도 나는 열심히 했었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났나 보다.
비록 이 회사와는 여기까지지만, 나의 삶은 계속해서 흘러간다.
수고했다,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