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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동 무화과 Oct 30. 2022

그때의 일기들(3)

우울증 초기가 아니었을까

출국이 이렇게 슬프다니.


우리 서비스의 해외 진출을 결정내린지 2주 만에 한국을 뜨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충분하다면 충분한 시간일 테지만,

나에겐 버거웠던 것 같다.


멀쩡히 내 일 열심히 하고, 진짜 미친 듯이 달라져서

우리 팀의 성과를 8주 안에 보여주고 팀을 떠나야겠다고 마음 먹었던 사람이었기에, 더 당혹스러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 몇 주간은 평일에 하는 것만으로는 일이 진전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했고, 사실상 일 때문에 신경 쓰여서 다른 게 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주말에까지 온갖 카페로 일을 챙겨 다니면서 내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내 착각이었나 보다.


언젠간 올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팀으로부터의 분리가 이렇게 빨리 일어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몇 주간의 뿌듯한 긴장감이 그저 성과 없는 조바심으로 보일지는 몰랐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자신감이 사라졌다. 

내가 내딛는 모든 한 발짝에 의구심이 생겼다.

확신이 없어서 아무 행동도 못하고, 아무 결정도 못 내리고,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내비칠까 벌벌 떨며,

그러다가 놓는 수는 최악의 수가 되는 것 같고, 뒤따라오는 타인들의 평가를 두려워하면서,

그런 나를 계속해서 곱씹으며 자책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라서 그런가 보다.

불확실 투성이의 영역으로 가는 게 마냥 즐겁게만 느껴지지 않는 건

내가 지금 너무 약한 상태라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들 강하다고 말하던 내 멘탈.. 그냥 자존심 때문에 강해보였던 걸지도.

이젠 진짜 바닥난 것 같다.

너무 힘들고 마음이 아프다.


그래, 가서 안 되면 때려치우면 되지.

라고 백 번씩 외치자.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자.

가볍게, 가볍게, 나는 자유로운 몸이다.

꿀 빨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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