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날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료를 구하고, 오리고 붙여서 모양을 만들고, 나만의 것으로 꾸며서 새롭게 탄생시킨 연.
그 연을 띄우려면 날씨와 체력과 인내. 이 삼박자가 골고루 갖춰지면 아주 좋다.
적당한 바람, 그때를 기다리는 인내, 열심히 뜀박질을 할 수 있는 체력.
소망이 담긴 연을 멀리 보낼수록 좋아라 하는 기묘한 풍습에서 얻어가는 것은,
손에 붙들고 있지 않고 멀리 보내줘야만 오래 날 수 있다는 것.
연이 날려면 바람이 꼭 필요하다는 것.
한 번이라도 연을 날려본 기억은 바닥으로 고꾸라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실패했다고 해서 그대로 창고에 둔다면, 연을 고치고 계속 뛰어본 기억이 없는 아이에게는 위기를 헤쳐나갈 힘이 부족해지고, 무력하게 포기해 왔던 기억이 쌓여 직장도 관계에서도 회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어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연이 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때로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계속 응원해 주고 지켜봐 주는 것.
그러다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이만큼 했으면 됐어. 다음에 꼭 성공하자." 성취보다 더 값진 수고와 희망을 아이의 품에 안겨준다면 그 아이는 훗날 또 다른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생 때 다 함께 운동장에서 연날리기를 했었다. 모두가 처음이어서 힘 없이 내려오는 연이 더 많았다. 그래도 반에서 한 두 명씩은 잘하는 애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만들던 연을 팽개쳐두고 훨훨 나는 연을 보며 환호했다.
나도 그 애가 부러웠지만 내 연을 꼭 띄우고 말겠다는 집념으로 근처에 가지 않았다. "나도 저렇게 환호를 받고 말겠어!" 그런 마음이었던 거 같다. 그렇다. 난 관종이었다. 찌질의 역사 중 하나인 학생시절 항상 관심받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왔다. 대체적으로 잘 해낸 것보다는 못 한 것으로 관심받긴 했다. 그래서 찌질의 역사다.
아무튼간에 내 집착을 선생님도 알아봤는지 옆에서 열심히 도우셨다. 한 아이가 태어나 살다 보면 저절로 연을 잘 날리게 되는 게 아니었다. 나무 막대를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뭐가 문제인지, 실을 언제 풀고 감는지 옆에서 선생님이 동참하여 알려주지 않았다면 해내지 못했을 거다.
물 밑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오리의 발처럼, 하늘에 고요히 머무는 연 아래에는 수많은 땀과 노고가 숨어있다. 소망을 이루는 일은 이렇게나 어렵다. 돌이켜보면 연을 날리는 과정에서 느낀 기대와 즐거움이 더 컸지 않나.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 공항에서 더 들뜬 것처럼.
결과물만 중요시하고 너무 큰 기대를 건다면, 그 속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천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띄우지 못했던 연은 하나씩 있기 마련이고, 다른 이의 손을 빌려 쉽게 띄웠던 연이라 해도 반드시 땅으로 내려오게 되어있다. 내 손으로 날린 것이 아니니, 내 손으로 돌아올 수도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실을 제때 잘 풀고 감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품 안에 붙들고 있거나, 앞만 보고 냅다 뛴다고 해서 연은 날 수 없다. 그렇다고 아예 연만 보고 있으면 엉덩방아를 찧거나, 다른 사람과 부딪히겠지. 앞으로 뛰지만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연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실을 풀었다가도 감아야 한다. 그 팽팽한 감각을 익혀야 한다. 실을 냅다 풀어버려서도, 너무 조금씩 풀어서 때를 놓쳐서도 안 되는 섬세한 과정인 거다.
바람을 잘 타고 오른 연은 높은 시야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옆에서 함께 뛰어다니는 친구들과 곁에서 지켜보는 선생님은 물론, 보이지 않던 질서가 한눈에 담길 것이다. 그렇게 머물러 본 기억으로 살아가게 되고, 실컷 머물렀던 연은 잘 내려올 수도 있다.
분명 환호를 받고자 시작했는데 막상 띄우고 나면 정신없어서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잘 내려온 연을 품고 다른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긴다. 함께 응원하고 환호하던 시끌벅적한 운동장이 그리울 때가 있다. 토끼마냥 총총 뛰어다니던 아이가 이제는 30대를 지나며 어디서 어떻게 연을 띄울 것인지 스스로 해야 할 때가 왔다. 또 다른 출발선에서 다른 이들의 연을 보며 하염없이 부러워하고 있는 지금. 운동장에서 집념으로 연을 만들던 아이를 다시 불러내본다.
잘 기다리고, 열심히 뛰고, 잘 보내주자. 실패하더라도 계속 뛰어보자. 무엇이 되었든 원 없이 오래 머물다 잘 내려올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