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능력부터 갖추고 볼일이다.
글 잘 쓰려면 많이 쓰라는데, 난 지금 그럴 시간이 없어 묻는 건데?
글을 잘 쓰고 싶어 조언을 구하면 돌아오는 말은 답답하고 허무하기까지 하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는 조언.
글 쓰는 방법에 대한 책까지 사서 보면서 얻으려고 한 것은 어떻게 빠른 시간에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과연 출판사 관계자들과 이런 책을 내는 작가들은 이걸 몰라서 매번 똑같은 말만 하는 책들을 쏟아내는 것인지 한번 묻고 싶었다.
‘누가 몰라? 많이 쓰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이런 말은 나도 하겠다.’
괜히 성을 내고는 책을 덮어 버린다.
정해진 수식이 있어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정확한 해법이 있고 답이 나오는 것에 익숙한 이과생에게 글 쓰는 방법, 그 '수식'을 찾는 일은 험난하기만 했다.
도통 절차와 수식도 없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한다.
현란한 말만 오가는 문과의 세계는 나에게 익숙지 않은 세상이었다.
시키는 대로 많이 읽으려고 노력했고, 생각도 많이 해봤고, 많이 쓰려고도 했지만 실력이 쉽게 늘지 않는다.
이것 참 난감하다. 뭘 어찌해야 할까.
나에게 글쓰기는 생존과 같은 문제였다.
뒤늦게 언론사 취업시험을 준비하면서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글을 써야 했다.
단순 취미로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보여주고 싶어서 글을 쓴 게 아니었다.
나에게는 ‘취업’이라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더 간절하고 집요하게 글 쓰는 것에 대한 방법론을 파고들었다.
'글 쓰는 법'을 다룬 유명한 책들은 거의 다 본 것 같다.
하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선, 글에 대한 장르도 여럿이어서 내가 시험에 임할 때 써야 하는 논술과 작문에 대해 딱 떨어지는 책을 찾는 것도 힘들었다.
소설 작법도 많았고, 어떤 건 무슨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지 도통 모를 책도 있었다.
아니면 ‘이거 쉬워, 왜 못할까?’ 하며 나 같은 평범한 사람 수준을 생각 못하고 이야기하는 책도 더러 있었다.
생존이 걸린 만큼 ‘글 쓰는 법’에 대해 치열하게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명쾌한 '수식'이 없었다.
괴상한 문과 세상에 적응을 못한 이과생은 자신의 의지와 달리 몇 년간 취업 준비를 해야 했고, 강제로 글을 자꾸 써봐야 했다.
다른 취업 준비생과는 다르게 그다지 암기할 게 없어 남는 시간이 많았던 만큼 매일 읽었고, 생각만 많아졌으며, 매일 무언가 써대야 했다.
글 실력이 느는지 않는지 모르는 시간이 흘렀고, 어쩌다 보니 엄청난 시간이었다.
글 쓰는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글이 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차 글을 쓰면서 무엇에 대해 쓰고 있는지 정신 차리는 날이 늘어갔다.
점점 언론사 필기시험에 합격하는 횟수도 늘었고, 어느새 필기시험은 자신 있는 날도 왔다.
수려한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은 여전히 없었지만 논리적으로 내 생각을 담는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한 거라고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쓴 것. 그뿐이었다.
허망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그랬다.
왜 수많은 글쓰기 책이 ‘쓸데없는 말’만 하는지 조금 알 만도 했다.
글이라는 것은 수학 문제 풀듯이 어떤 법칙과 수식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론과 본론과 결론, 수미쌍관의 글의 구조, 문장은 짧게 문단의 시작은 강렬하게.
나름 경험으로 터득한 나만의 방법은 있었지만 매번 들어맞는 법칙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글 쓰는 것에 익숙해질 길고 긴 시간이 필요했다.
글을 많이 쓰면 글 쓰는 실력도 는다는 새빨간 거짓말
그렇다고 글을 많이 쓰면 글 쓰는 실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글을 쓰며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머리를 쥐어뜯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새하얀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를 노려보며 여전히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근육이 생겨 점점 어려운 운동도 거뜬히 하듯이 글을 많이 쓰게 되면 글쓰기 근육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글을 많이 쓰는 게 '글 쓰는 능력'을 높이는 가장 쉽고 단순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 지난했던 암흑 터널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역시, 뚜벅뚜벅 그저 앞으로 나아간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글 쓰는 능력’이 ‘글 쓰는 실력’과 같은 말은 아니다.*
일 년 내내 작은 근육을 간신히 키워 10kg에서 20kg을 들 수 있게 몸을 만들었더니 짐(Gym)에 처음 온 우람한 친구가 거뜬히 50kg을 들어내는 것처럼 글 쓰는 것도 그렇다.
선천적인 감각이 정말 중요하고, 그런 환경에서 좌절하지 않고 매일 자신의 작은 근육을 키워나가는 의지도 중요하다.
글을 많이 쓰면 '글 쓰는 실력'이 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실력은 쉽게 늘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몇 년 썼는데, 왜 나는 안될까.’ 하며 좌절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잘 쓴 글을 곁눈질하며 질시하는 마음에 당황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마음에 나가떨어지면 영영 글을 쓸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나는 오늘도 새하얀 브런치 화면을 보고 좌절하고 머리를 쥐어뜯다가 어떻게든 글 한편을 마쳤다.
잘 쓴 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전달이 되었길 바라며 말이다.
* 이해를 위해 사전에서 찾은 뜻을 덧붙인다. 우리는 일단 ‘능력’부터 갖춰야겠다.
- 능력 :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힘.
- 실력 : 실제로 갖추고 있는 힘이나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