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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hyo Jan 01. 2022

158일간의 세계 여행 그 후


 2018년 8월에 세계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들어왔다. 여행 에세이를 내고 싶어서 한 달간 원고의 초안을 마무리했고, 2차례에 걸쳐서 100군데가 넘는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세계 여행을 다녀오면 여행 작가가 쉽게 될 줄 알았다. 혹은 원고의 1/2를 완성하거나, 원고를 다 완성해버리면 작가라는 타이틀을 바로 얻을 줄 알았다. 내가 세상을 너무 쉽게 보았다. 언제 그렇게 세상이 만만했던 적이 있었을까? 역시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출판사에게서 전부 받은 이메일의 대부분은 출판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원고 성격이 맞지 않아서 출판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 대부분의 대답이었다. 100번이 넘는 거절 끝에 내린 결론은 세상은 지금 이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한 곳 정도는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마치 로또 복권을 기다리는 것처럼 토요일 당첨이 되기 전까지 1등이 되면 무엇을 할지를 놓고서 상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웠다. 그런 드라마는  2019년에는 쓰이지 않았다.  



 줄 곧 낙관 적인 성격으로 지내왔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길들을 가도 모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기 타협을 잘해왔다.  100번이 넘는 거절,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결국 인정이었다. 이번 원고가 출판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두 번째 대안이 독립출판이었다. 말이 독립출판이지, 그 과정이 정말 만만치 않았다. 원고의 내용을 제쳐 두고서라고, 독립출판의 책 형태를 선택하고, 표지, 책 규격, 표지 재질, 책날개를 선택해야 했다. 이 과정은 내용을 시작하기도 전에 껍데기의 선택과정일 뿐이었다. 후에 원고를 등록하고 표지 디자인, 내지 결정, 가격 책정, ISBN등록 등 여러 과정을 지나치면 생각보다 만만찮은 작업들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초고를 완성하는데 30일 정도가 걸렸고, 그 이후의 작업은 3년이 넘는 시점이 되어서 전자책으로 완성이 되었다. 여행을 돌아온 후에 여행 경비에서 남은 잔고로 시간을 보내는 데는 30일 이상을 넘길 수가 없었고, 다시 구직 시장에 취준생으로 내던져졌다.  



졸업 한 취준생으로서의 경쟁력은 있을까?  



 경쟁력은 없었다. 원하는 곳에 입사를 하는 것이 아닌 당장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일을 해야 했다. 급하게 일을 찾다 보니, 대학교 졸업 후 취득한 TESOL 자격증을 다시 꺼내 들었다. 당시에 우여곡절 끝에  취득한 테솔 자격증으로 곧바로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이 자격증을 우대해주는 곳은 역시 교육업계, 학원가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렇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원계로 다시 가게 되었다. 말이 좋은 프리랜서지만, 입사를 해도 아무것도 나를 보호해줄 수 없는 직장이었다. 직장에서 다쳐도, 치료비가 나오지 않았고, 갑자기 학생수가 줄어들어서 일감이 없어도 학원 탓은 아니었다. 학생이 그만두면 다시 밖으로 나가서 영업도 해야 했다. 그렇게 집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초중고 영어 입시학원. 그곳에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영어를 가르친다고는 하였지만, 그동안 입시와 관련된 공부를 할 일이 없었기에 제대로 알고 있는 지식이 없었다. 따라서 매일매일의 수업 준비로 다시 반복된 하루가 채워지고 있었다.   


 학원에서의 일을 하는 동안은 현실의 세계에 자연스레 머무르게 된다. 현실에서의 입시학원이란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한된 시간 안에 빠르게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학원 선생님의 업무는 학생들이 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 그리고 삶의 동기를 부여해주는 일이었다. 문제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공부하면서 채워지지 않는 영어에 대한 갈망이 점점 생긴 것이었다.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사람들이 나의 직업을 물어볼 때 나는 단 한 번도 영어 선생님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영어로 말도 못 하는 영어 선생님이 논리에 맞지 않아서 이다. 그래서 구태여 문법과 독해 중심으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결국 내가 배우고 싶은 영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로서의 도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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