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라.
마트, 백화점, 찜질방, 그냥 좀 엿듣기도 해라. 뭐 어떠냐.
난 목욕탕에서 인생을 배운다. 특히 건식 사우나.....
진짜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엄마들은 뱃살을 쥐어 뜯으시며 왜 뱃살이 안빠지냐고 하시면서 달달한 식혜를 시키신다. 어젯밤 이놈의 영감쟁이가 술먹고 몇 시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뚜껑이 열렸는지도 목욕탕에 가면 술술 다 들을 수 있다 .
그런가 하면 미용실은 어떤가? 미용실도 기가 막힌 장소다. 한 달에 한 번 머리하러 갈 때 마다 원장님의 손을 거쳐간 많은 여인네들의 이야기들을 원장님의 입을 통해 아주 진하게 압축해서 들을 수 있다.듣고 있노라면 인생 사는 거 참 재밌네 싶기도 하고, 세상에 저집 남편은 왜 저런대 싶기도 하고, 각종 별별 시어머니들의 시집살이 잔혹사를 듣고 있으면 감사의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아들 가진 엄마들의 고충, 애 둘인 엄마들의 애환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있으면 나에게 없는 부분을 간접경험하게 되어 내 생각창고의 다양한 재료들이 쌓인다.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나와 완전 다른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잘 맞는 친구들도 많지만, 완전 다른 성향, 종교, 식성, 나이, 방송 스타일 모두 나랑 딴판인 사람들도 많다. 난 그들과 만나면 즐겁다. 각자 가지지 못한 부분에 대해 대리 만족도 해보고, 대리 경험도 해볼 수 있어서 좋다.
방송에 들어가서만 수다쟁이?
후배 중에 얼음공주가 있다. 술 한잔 들어가서 얘기해보면 진솔하고 좋은 놈인데, 평소 너무 과묵해서 선배들하고도 인사 외에는 말을 잘 섞지 않는다. 10년 내내 그랬다. 선배들과 후배들과 쇼호스트 휴게실에서 커피마시면서 수다떠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평소에 저렇게 조용한 놈이 방송에 들어가면 굉장히 사교적인 척을 했다. 우린 그녀를 알아서 그런건지 보고 있으면 왠지 그녀가 아주 많이 '노력'하는 구나.라고 느껴졌다. 평소는 잘 웃지 않는 녀석이 방송에 들어가서 '애쓴다.'싶었다.평소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는 쇼호스트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 '나 중심'의 생활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어느정도 연차가 차면 독립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선배들과 섞일 일이 별로 없을 수 있다. 그럼 굳이 불편한 선배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후배들도 있다. 나는 나 너는 너 라는 거다. 하지만 난 생각이 좀 다르다. 선배는 내가 그 나이가 되어 보지 못하면 죽었다 깨도 알 수 없는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경험과 노하우나 철학은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많이 보고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난 후배들에게 선배들과 친해지라고 말한다. 선배들이 대충 던진 농담들도 거기엔 경륜과 내공이 있다. 진짜 일 잘하는 사람, 방송 잘하는 사람은 정말 다양한 이들의 삶의 노하우와 삶의 경험을 잘 흡수하는 사람이다. 사람 속으로 들어가길 바란다. 어울리고, 때론 상처를 받더라도, 그러면서 선배들에게 배우고, 후배들에게 배운다.
관찰을 즐겨라.
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상대방이 저렇게 말하는 '의도'가 있음을 생각한다. 무슨 뜻이 있어서 저런 말을 할까? 저런 행동을 할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같이 방송하는 파트너가 자꾸 눈을 찌푸린다면 혹시, 화면이 잘 안보이세요? 앞으로 당겨드릴까요? 라고 물어볼 수 있다. 선배가 너희 배고프지 않니? 라고 물어보는 건 본인이 배고프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같이 가줄래라는 뜻이다. 이제 말하지 않아도 선배들의 표정만 봐도 배가 고픈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정도다. 홈쇼핑 방송 파트 사람들은 끼니를 제 시간에 제대로 챙겨 먹는 일이 드물다. 방송 시간이 식사시간과 겹치거나 방송 하고 나왔는데 미팅이 바로 잡혀서 두끼를 연속 못먹고 일할 수도 있다. 그런 구조에서 선배의너희 밥먹었니라는 질문은 나 배고픈데 같이 먹을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즘 후배들은 너희 밥먹었니? 라고 물어보면 "네" 라고 대답만 하고 할일만 한다. 그럼 선배들은 더 이상 말을 길게 안하신다.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 괜히 늙은 선배가 후배 귀찮게 하나 싶기도 하고, 그들도 자기 일하느라 바쁠텐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우리의 말이 들리는 대로 그대로 해석프로그램에 넣어서 다 해석이 된다면 이세상에 말로 인한 오해와 불신은 없을것이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연습을 못하는 사람은 자신도 상대방에게 이해와 신뢰를 구할 수 없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장사 세포가 클 수 없다.평소 사무실에서 업무 현장에서 타인이 말하는 속뜻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자.
처음 결혼을 해서 시댁에 선물을 보냈는데, 어머니가 막 화를 내셨다. "와 이런 거 보냈노? 아이고 이거 필요 없다. 없어도 된다. 아이고 왜 보냈노~~!!!" 오리지널 경상도 스타일로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고맙다는 또 다른 표현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게다가 진짜 화난 말투였다. ㅋㅋㅋ
경상도 사람들은 식구끼리 고맙다고 얘기를 잘 안해. 신랑 번역기를 통해서 속뜻을 알기 전까지, 왜 선물을 보냈는데 화를 내시나 했다.고마우면 고맙다 .싫은면 싫다. 좋으면 좋다. 그런 말을 잘 안한다는게 나로서는 잘 이해가 안되었다.나는 태생은 부산인데, 학교는 서울에서 다니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서울 사람들과 소통하고 살았다. 수십년 그렇게 살다가 오랜만에 오리지널 네이티브 스피커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오해가 생길 법했다. 이젠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액면 그대로의 말이 아닌 속뜻이 무엇인지 나름 고민하고 들어본다. 같이 얘기 나누다 보면, 어머님 세대의 생각과 아픔 애환 이런 것들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아마 어머니도 OX 가 확실한 며느리를 보고, 요즘 서울 사람들은 다 저러나 싶으셨을거다. ^^
이러면서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인생을 배워 나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