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원 Jul 10. 2023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 (35) ‘공백 기간’

서른다섯 번째, 공백 기간 그리고 요즘 나를 지배하는 생각들


며느리 채원의 이야기


‘공백’

어머니께 주제를 전달하고 혼자 곱씹으며 생각해 보았다. 공백이란 단어의 아이러니, 글쓰기의 공백을 제외하면 내 삶은 가득 채움인데 말이다.

한 겨울에 태어난 둘째 아이 ‘래나’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했고, 까치발을 들어 식탁의 물건을 집던 첫째 아이 ‘래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쉽게 그 위를 눈으로 훑는다.


쉽지 않을 거라 각오하고 다짐했던 ‘두 아이를 키우기’는 우리 부부의 나름 세밀한 노력으로 이제 서로를 잘 받아들였고 조화롭게 지내고 있다.

래하에게는 자연스러운 질투 이외에 엄마와 아빠를 빼앗겼다고 느끼지 않게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집중해 주었다. 역시 애바애라고 조금 까다로웠던 래하와 달리 둘째 아이는 잘 먹고, 잘 자는 스타일이라 래하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넉넉히 선물해 주었고 덕분에 래하에게 래나는 사랑스러운 동생이 되었다.


래하는 둘째를 낳을 시기부터 현재까지 약 반년 동안 언어가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어느 날은 방문을 열고 먼저 잠든 래나에게 다가가길래 ”래하야 나와서 엄마랑 놀자, 나와~“라고 하니


“인사를 못 했어!”

“응?”

“잘 자, 래나야. 우리는 가족이야~”


라고 귀에 속삭여 주었다. 래하의 언어에 놀랐고, 래하의 사랑에 놀랐다.

보통은 우악스러울 수 있다는 남자아이인 래하가 래나와 함께 하려는 모습은 참 감동일 때가 많다.

엄마, 아빠의 걱정을 뛰어넘어 아이들은 스스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어 감탄을 자주 하는 요즘이다.

래나가 성장함에 따라 남매의 격동기는 매 순간 오겠지만, 느낌 좋은 처음처럼 우리는 잘해나갈 것 같다.


내가, 우리의 선택으로 세상을 만나게 된 아이들에게 ‘아름답게 이 곳을 받아들이고, 단단하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다.

그냥 흐르는 대로 받아들인 많은 것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공부해 나눠줘야지. 언젠가 나이가 들어 남편과 마주 앉아 “우리 아이들에게 꽤 괜찮은 어른이었지?”라고 말할 수 있게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어봐야겠다.


요즘은 그렇게 어른이 되기 위해 내가 비워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에 대한 고민을 하며 지내고 있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머릿속에 맴도는 것들이 조화롭게 나오지가 않는다. 글쓰기 또한 열심히 다시 채워나가야겠다. 이제 다시 부지런히 만나봐요, 시어머니 명희님과의 생각 교환일기 :)


래나를 지켜주는 래하




시어머니 명희 이야기


이 주제를 받고서 나는 행복했다. (글쓰기 공백이지만)

과연 나의 삶에 공백이란 단어가 차지할 만큼의 여유가 있었는지 자문해 보았다.

문득 ’ 장기하‘의 멋진 노래가… 공백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별일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 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도 없다.


작고하신 엄마의 말씀처럼 ‘죽음’이 아니라면 다 별일 아니라고 하신 말씀. 그 의미를 이제야 나는 깨달았음을…


주제의 답을 나열해 보아야겠다.

공백의 기간 동안 뭘 했는지?

나는 꾸준히 남편을 케어하며 지냈다. 나의 손자, 손녀들도 보살피면서 지내고.

언제나처럼 공연도 보고, 미술관도 가고, 음악회도 가고, 보건소에서 ‘연명의료의향서’도 작성하고…


하루하루 현금보다 빳빳한(?) 지금을 아름답게 쓰고 있다. 이제 우리 부부는 이렇다 할 고민 없이 시간 부자가 되어있다.

그 시간을 잘 사용하려고, 남은 삶을 잘 보내려고 노력 중이다.

여유로웠던 시절이 없었기에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어설프지만 연구의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


어제는 하얀 연꽃이 떨어져서 지은 절이라는 ‘백련사’를 찾았다. -강화 고려산에 위치한- 연애시절 엄마 몰래 갔었던 무주구천동 ‘백련사‘ 그 이름이 같아서 집에서 가까운 강화 ‘백련사’를 바라보면서 지나간 옛 추억을 살포시 꺼내어 내 마음속에 진열해 보았다.

우리를 이어준 ‘백련사’ 아름다웠다!!!


요즈음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well-living  건강한 삶

well-aging 활기 찬 노후

well-dying 아름다운 마무리

이다.


그중에서도 어떻게 well-dying을 할까 연구 중이다.

‘케이틀린 도티‘의 글처럼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ㅋㅋ

나는 노후에 한가히 별일 없이(?) 살면서 그 어떠한 것도 부럽지 않은 나의 인생길을 가고 있다.

노후에 남편도 있고, 손자 손녀도 있고, 채원이랑 브런치에 글도 쓰고…


‘장기하’ 노랫말처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도 괜찮어 한 개도 부럽지 않어…

시어머니, 며느리 브런치에서 coffee date를 하기에 …


P.S :

글을 재개하는 자부에게 경의를 표한다.

(예쁜 손녀를 안겨주고서)…


김명희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매거진의 이전글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34) '나에게 쓰는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