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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주간 성찰

산책하듯 즐긴 고베 3박 4일 여행

여행이 일상을 다시 빛나게 할 때

by 일과삶

오사카 여행을 준비하는 여행자들에게 고베는 보통 하루쯤 들르는 근교 여행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릅니다. 한곳에 진득하게 머물며 현지의 공기와 사람, 리듬을 느끼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루 만에 훑고 가는 도시를 저는 산책하듯 천천히 걷습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총 11박 12일의 일정 중 3박 4일을 고베에, 4박 5일을 교토에, 나머지를 오사카에 머물며 나누어 여행합니다. 그중 가장 먼저, 행복했던 고베의 3박 4일을 나누어 보려 합니다.


고베 3박 4일 일정

1일차 포트 타워, 하버랜드 모자이크 관람차, 야경 구경

2일차 고베 꽃시계, 동유원지, 시청 전망대, 고베시립박물관(고흐전), 누노비키 허브 정원, 기타노이진칸

3일차 나기사 파크, 효고현립미술관(안도 타다오관), 롯코산


미술관을 좋아하는 제게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고흐전과 안도 타다오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여행지’로만 본다면 누노비키 허브 정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로프웨이를 타고 산 정상으로 올라갈 때의 속도감과 높이는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듯 짜릿했습니다. 정상에 도착하자 탁 트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곤지암 화담숲의 열 배쯤은 될까 싶은 규모였어요. 길을 따라 내려오며 향기로운 허브와 계절의 꽃, 잔잔한 물소리, 새소리가 어우러진 공간에서 자연과 함께 천천히 걷는 그 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여행자의 사색이 깊어지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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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내려오면 바로 기타노이진칸 거리로 이어져 동선을 절약할 수 있었는데, 기타노이진칸은 솔직히 기대에 비해 다소 조악했습니다. 롯코산은 대자연의 웅장함이 느껴졌지만, 숲의 소리 뮤지엄이나 보태닉 가든, 가든 테라스는 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포트 타워는 낮에 올랐는데, 고베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루프탑에서 맞는 바람이 상쾌했습니다. 하버랜드 모자이크 관람차는 평범했지만, 바다와 어우러진 야경이 만들어내는 낭만은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특별했습니다. 제가 관람차를 좋아해서 이 부분은 좀 관대하게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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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해가 빨리 집니다. 오후 다섯 시만 되어도 어둑해지고, 여섯 시면 완전히 밤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저녁이면 일찍 숙소로 돌아와 쉬고,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2만 보 넘게 걸었기에 따로 운동할 여력은 없었습니다. 운동화를 따로 챙겨왔지만 결국 여벌의 신발로만 쓰였지요.


고흐전은 평소 한국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엄두를 못 냈던 전시였는데, 일본에서 평일 오픈런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림 앞에 서서 가까이, 때로는 멀리 바라보며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고흐의 거친 붓 터치와 따뜻한 색감은 제 마음을 오래 흔들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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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타다오관는 이번 여행의 영감이 되었습니다. 정규 건축 교육을 받지 않고도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끝내 해낸 그의 열정은,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 Youth〉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신체와 지성이 나이를 먹더라도 열정을 잃지 않는 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영원한 청춘은 잘 익어 달콤한 붉은 사과가 아니라, 아직 미숙하고 신맛이 강하지만 내일의 희망으로 가득 찬 푸른 사과의 정신이다.”라는 그의 인용문을 읽으며, 저 역시 그런 ‘푸른 사과’로 살고 싶다고 다짐했습니다. 아직 미숙하고 신맛이 강하더라도, 내일의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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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늘 새로운 도전입니다. 낯설고, 어색하고, 때로는 걱정스러워도 어느새 익숙해지고 적응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행이 좋습니다. 이번 고베 여행으로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제가 치열하게 일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서라는 것을요. 자유롭게, 여유롭게, 산책하듯 걷는 여행. 그것이 제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삶의 쉼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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