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설렘 사이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제목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아닌 이유는 '낯선 경험으로의 초대'와 관련 있어요. 대개의 프랑스인들이 브람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남자 주인공인 시몽이 여자 주인공인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었고 폴은 스스로 시몽의 질문을 되새기며 불안과 설렘을 느낍니다. 이 낯선 초대를 응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는 상황이 제목인 셈입니다. 저자 프랑수아즈 사강은 물음표가 아닌 점 세 개로 이루어진 말줄임표로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답니다.
"여러분은 타인에게서 낯선 경험으로의 초대를 받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어제 서평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익숙함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식이 세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특히 제안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분도 계셨어요. 만일 시몽처럼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정말 나를 배려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모른다면 어떨까요?
예전의 저라면 두려웠을 겁니다. 저는 틀 안에서 움직이길 좋아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선생님이 알려주는 수업만 열심히 들어도 성적이 올랐고, 직장에서도 사수나 상사가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해도 평가가 좋았으니까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고 싶었죠.
돌이켜보면 소소하게 상식에 도전하기도 했어요. 세상에 없는 제품을 상상하기도 하고, 사용하기 불편하게 만들어진 제품에 개선 아이디어를 떠올려 대기업에 제안하기도 했어요. 다니는 회사에 큰소리로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늘 '왜 이런 식으로 해야 하지? 다르게 할 수는 없을까?'라는 의심을 가지며 혼자만의 프로젝트를 실행했어요.
늘 남을 의식했던 저는 부끄러워 제 생각을 펼치지 못했어요.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이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꾹꾹 눌려 있던 호기심과 자율 의지가 싹트기 시작했어요. 세상에 제 목소리를 냈다고 해야 할까요? 말이 트인 아이처럼 마음속에서만 맴돌던 생각을 입 밖에 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도전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아님 말고' 정신이 발동한 겁니다.
그 이후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설레었어요. 스팸이거나 홍보 전화인 경우도 있지만 주로 '낯선 경험으로의 초대'인 경우가 많거든요. 강의 제안이거나 기고 의뢰 혹은 최소한 저의 조언이나 도움을 구하는 전화니까요. 요즘은 코비드19로 전화번호가 저장되지 않은 직장 동료가 전화하는 경우가 많아 설렘을 잊고 지냈어요.
이번 주에 모르는 번호의 전화로 '낯선 경험으로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낯선 제안은 감사한데 수락을 해야 할지 거절을 해야 할지, 불안과 설렘을 느꼈습니다. 불안한 이유는 모든 게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상황에 '굳이 왜 도전을?'이라는 의문 때문이죠. 새로운 도전은 시간 낭비라는 구태의연한 사고에 저도 모르게 빠져 있었습니다. 대신 'Why not?'이라고 사고를 전환해 봤어요. '아님 말고'와 같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이야기를 듣는 게 시간 낭비일지 아닐지는 경험해야만 아는 거니까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중략) 아무튼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좋은 지표가 되어 준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에서
폴은 고민 끝에 결국 시몽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저도 고민 끝에 낯선 경험에 발을 담그기로 했습니다. 폴은 다시 원래의 연인에게로 돌아가는데 저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제 경우 사랑의 고민은 아니니 오해는 없으시길. 아무튼 경험이란 좋은 것입니다. 도전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