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의 힘으로 코끼리와 조련사 돌보기
어제 일입니다. 바쁘게 일하던 중 카톡이 왔어요. 거의 1년도 넘게 연락 못 했던 분이었는데 나찾글 심화과정을 문의하셨어요. 혹시나 제가 기억 못할까 봐 자신을 다시 한번 소개하고 오랜만이라는 인사말을 남긴 후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셨어요. 이런 상황에서 백이면 백 저는 반갑게 맞이하기보다는 상대의 궁금증을 먼저 풀어주고 싶은 본능이 앞섭니다. 우회는 없고 직진만 있는 직진녀죠. 말도 돌직구만 던지고요.
오늘 아침 후회가 살짝 몰려왔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용기 내어 메시지 주셨는데 잘 지내셨는지, 코로나로 어려움은 없는지, 건강하신지 이런 안부를 물었어야 했는데. 질문에 대한 답변만 주고 건조하게 대화가 끝났다는 생각에 미안했어요. 다시 내용을 보니 그나마 "오랜만입니다 ㅎ"라고 시작한 것은 다행입니다만. 메일도 그래요. 어떤 분은 따뜻한 메일을 쓰죠. "코로나로 많이 지치고 힘든 요즘, 건강히 잘 지내시죠? 제가 메일은 드리는 것은 ....." 하지만 제 메일은 보통 "안녕하세요? 일과삶입니다. 지난번 ...."와 같이 바로 용건만 간단히 씁니다.
이런 실수는 외국인과의 대화나 채팅에서도 빈번히 일어납니다. 보통 저는 "Hi XX"라고 부른 후 상대가 "Hi 일과삶"이라고 응답하면 바로 용건을 말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동료는 제가 "Hi XX"라고 응답하면 "How are you?"라고 묻습니다. 때로는 이런 안부에 답하는게 형식적이고 시간 낭비라고 까지 생각하며 "Doing well. Thanks."라고 답하죠. 그제야 상대는 용건을 말합니다. 상대가 "How are you?"라고 물을 때마다 뜨끔뜨끔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제 성격이 급하기도 하고 일에 과몰입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거라 마음속으로 '워~ 워~'를 외치기도 하죠.
미팅에서 누군가가 발표를 한 후 질문이나 피드백을 제공할 때 여실히 느낍니다. 영어로 말해야 하는 긴장감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지만 사실은 한국말로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바로 상대에게 질문하거나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다른 동료를 보면 "간결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준비해서 읽기도 쉬웠고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참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부분은 조금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조금 더 설명해 줄 수 있니?"라고 질문을 합니다. 역시 또 좌절합니다.
저의 부족한 감성과 공감 능력을 절감하기에 책을 읽고 성찰합니다. 여전히 부족하기에 지금도 노력 중인데, 다행히 조금 바뀌었어요. 몇 년 전부터 MBTI 검사 결과가 ISTJ에서 ESFJ로 바뀌었어요. 거의 중간에서 조금 F쪽으로 바뀌었죠. 좀 더 F로 가길 바랍니다. 이런 저에게 도움을 줄 글을 발견했는데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세상에서 가장 발칙한 성공 법칙 (Barking Up the Wrong Tree)》의 저자 에릭 바커 (Eric Barker)의 블로그였어요.
더 나은 의사결정을 위한 코끼리와 뇌과학, 세 가지 방법 (3 Ways Elephants And Neuroscience Can Help You Make Better Decisions)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처는 인간의 욕구(감성)를 코끼리에, 지켜야 할 원칙(이성)을 코끼리 위에 탄 조련사에 비유했다고 합니다(Buddha compared his desires to an elephant and his discipline to a human trainer). 코끼리가 차분해야 조련사가 시키는 대로 이동하지만 흥분하거나 피곤하면 조련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다는 거죠. 어렵지만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생각에 관한 생각 (Thinking, Fast and Slow)》에서 대니엘 카너먼 (Daniel Kahneman)이 말한 시스템1 사고와 시스템2 사고와도 동일한 맥락이라는 거죠.
빨리 핵심만 간단히 일 중심적으로 대처하려는 제 성향은 코끼리이자 시스템1 사고이고, 그러면 안 되고 먼저 인간적으로 가닿아야 한다는 제 생각은 조련사이자 시스템2 사고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 이성이 제 마음을 통제할 수 있을지 그는 세 가지 방법으로 제시합니다.
1. 코끼리를 차분하게 유지하라: 해야 할 일을 쉽게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어렵게 하라.
2. 조련사를 강하게 만들어라: 조련사는 코끼리를 힘으로 이길 순 없지만 강한 조련사는 될 수 있다. 조련사가 지쳤을 때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마라.
3. 코끼리를 훈련시켜라: 나쁜 습관은 버리고 좋은 습관을 만들어라.
결국 습관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거네요. 이 방법은 제임스 클리어(James Clear)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 (Atomic Habits)》에서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일 중심적인 T유형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사람 중심적인 F유형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코끼리와 조련사를 잘 살펴서 차분하고 지치지 않게 해야겠어요. 그러려면 심신의 건강을 잘 돌봐야겠죠?
여러분은 코끼리를 잘 다루는 조련사인가요? 아니면 저처럼 아직 연습 중인가요? 어떻게 돌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