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한 번째 주제
한껏 몸집을 불리던 우울이 지나간다.
사실 그렇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 더 커져서인지,
실제로 지나가는지는 모른다.
내가 뚝딱거리며 만들었던
나의 공간도 이제 다른사람의
손길이 닿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새로운 곳을 마주할 준비를 한다.
도망친다고 하여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그곳에서
돌아올 너의 미련과,
곳곳에 묻은 너의 흔적을 발견하다보면,
언제라도 모르는 척
내달리고 말 것 같았다.
도망치는 것이 직면하는 것보다
쉬운 것이라곤 하지만
도망이라고 쉬운 길이 없다.
쥐어온 것들을 더러 내려놔야
멀리 갈 수 있거든.
그렇게 계속 가다보면 내가 돌아오는 날에
네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오겠지.
그래서 그렇게 하고싶어.
돌아오는 것은 옴팡
비어있는 것이길 바라.
쥐고 갈 자신이 없어서 그래.
-Ram
지난 시간들을 모두 끌고 가고 싶었다. 혹시나 더 잊혀진 시간들이 있을까, 놓친 시간들이 있을까 싶어 늘 자근자근 살피며 지독하게도 질질 끌고 다녔다. 그러다 끌려다니던 시간들 속 존재했던 곳에 돌아오자 내 손에 오롯이 쥐어진 건 '지금'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기대해도 될 것 같은 '희망'과 함께.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이 더 가볍고, 재미있고, 밝아 보이자 미련하게 끌고 다닌 시간들을 하나둘씩 놓아줘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Hee
이번 주는 휴재입니다.
-Ho
누군가 긴 휴가에서 돌아오거나 꽤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면 Welcome back! 이라고 말한다.
난 왠지 그 말을 할 때 기분이 좋다.
사람들은 각자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있어야 할 곳에 있고,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난 대부분 집을 떠나서 있었고, 내가 집을 떠나는 게 도피라고 생각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집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언제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내 안에 늘 가지고 있는 안정감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우리 집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언제든 가도 되는 곳, 언제가도 내 뿌리가 있는 곳, 언제라도 나를 반겨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들이 있는 곳.
물론 또 돌아가면 답답한 점도, 새롭게 맞춰가야 할 점도 있겠지만 일정 기간에 일정 시간 동안은 무조건 안전할 수 있는 상황도 필요하니까.
그러고 나면 또 나는 나를 찾아 떠나겠지.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언제든 힘들면 돌아오라는 눈빛을 받으며. 사랑을 느끼며.
깨달음은 길위에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나는 힘들고 지쳐도 길위에 있는 내가 마음에 든다.
-인이
2023년 8월 1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