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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란도란프로젝트 Mar 31. 2024

"한 그릇"

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서른 네 번째 주제


밖에서 밥을 먹으면 꼭

한 그릇 단위로 먹어야 한다.


이 한 그릇이

어떤 곳은 잔뜩이기도 하고

아주 조금이기도 하다.


한 그릇을 오롯이 다 먹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지만

늘 내게 주어진 한 접시에 대해서는

고민해왔다.


난 1인분을 책임질만한

사람인가?


이걸 다 비워낼 수 있는가?


밥 뿐만이 아니다.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한 그릇,

한 분량을 다 책임질 수 있나?


내 인생은

전부 괜찮은 대로 흘러가다가

1인분을 못 채우고 오진 않았나?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 잘 해내오는 것들을

난 흘리고, 남겨오진 않았는가?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담긴다.


내가 부족해서,

모자라서,

마음이 조급해서 그런 가보다.


못난 마음이 드는 

봄날이라서,

야속하고 속상한 날.



-Ram


한국에 있었을 땐 잘 찾지도 않았던 순대국인데. 새벽 네 시 조금 넘어서 눈을 뜨고 나니 갑자기 순대국이 너무 먹고 싶었던 거야. 정확히는 순대국에 소주. 괜히 말레이시아에서 살다가 한국에 오니까 그런 게 먹고 싶더라. 근데 말레이시아에는 순대국은 커녕 순대가 없었냐고? 아니. 순대볶음에 막창에 곱창까지, 거기도 한국 음식은 웬만큼 다 있었는데 말이지. 그래서 자다말고 세수는 커녕 대충 눈 비비고 나와서 24시간 순대국 집을 찾았어. 네이버 지도엔 분명 문 열었다고 되어있는데 닫혀있어서 바람맞은 순대국집 한 곳을 지나치고 눈에 불을 켜고 동네를 한 바퀴 돌다보니 역시 새벽에 문 연 순대국집 하나 정돈 있더라. 해외에서 엄청 오래 살았던 것도 아닌데 24시간 순대국 집 하나하나가 되게 새삼스러웠고 반가웠어. 결국 두 명이서 마주 보고 앉아 순대국 한 그릇을 주문하고 소주 한 병을 냉장고에서 셀프로 꺼내 마셨어. 이제 막 동이 트려고 하는 데 순대국 집엔 단체로 온 테이블 하나, 아저씨들 둘이 있던 테이블 하나, 그리고 내가 있는 테이블 하나, 주말도 아니고 평일인데도 아주 호황이었어. 단체 테이블에서 깔깔거리고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다 보니 주문한 순대국 한 그릇이 보글보글 끓면서 테이블 위에 올려졌는데 매우 뜨거울 것 같아서 순대 몇 개를 앞접시에 식도록 미리 빼두고 일단 소주를 마셨지. 그리고 아직 식지도 않은 순대를 호호 불어서 입에 넣었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 원래 순대국에 소주 조합은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처음 접했던 거라 야근의 상징이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그때의 피곤함과 힘듬은 다 미화되고 좋은 조합만 남았네. 아 맞다. 근데 지금 내가 새로 이사 온 동네엔 24시간 순대국 집을 안 찾아놨네? 언젠가 또 순대국 한 그릇과 소주 조합이 생각나는 새벽이 되서 집을 나서려면 얼른 찾아둬야 겠어. 



-Hee


여러 음식을 식탁에 올리려다 보면 조리과정이 정말이지 복잡해진다. 재료마다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손질, 가스의 화력, 조리 순서, 간을 더하는 타이밍. 여기에 별것 아닌 밑반찬 하나마저도 따뜻할 때(제일 맛있을 때) 먹이고 싶은 마음이 더해지면 그 과정이 몇 배는 더 꼬이게 된다. 맛있는 음식의 가장 맛있는 타이밍을 이미 알아버린 다음에는 이리저리 꼬인 복잡한 과정을 스킵 하기도 쉽지 않다.


음식이 완성됐을 때 바로 먹이고 싶은데 침대에 누워서 보고 있던 유튜브 영상 다 볼 때까지 불러도 안 나올 때는 정말이지 화가 난다. 내 고민과 정성의 결과가 너무나도 하찮게 취급당하는 것 같아서. 음식을 예약받고 노쇼 당한 식당 사장님 마음이 이러할까. 하다못해 라면 한 그릇도 타이밍을 놓쳐서 면이 불면 그렇게 맛없게 느껴지는데 제대로 된 식사의 타이밍을 어쩌면 이렇게까지 등한시할 수 있는가. 


밥이 다 지어지기도 전에 밥이 다 됐다며 자리에 앉으라던 엄마의 마음을 더 깊이 체감했다. 좋아하고 잘 하는 사람이 더 많이 하면 된다는 생각에 함께 있을 땐 주로 내가 음식을 했는데 앞으로도 그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엄마가 아니기 때문에…) 음식 한 그릇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에게는 직접 음식을 만들어보면서 그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Ho


한 그릇만 먹기 힘든 음식이 있다.

엄마가 해주는 카레와 미역국이다.


엄마와 텔레파시가 통한다 느낀 적이 있는데,

집에 가면서 아 뭐가 먹고싶다 생각만 했는데도 집에 가면 엄마가 그 음식을 해놓았을 때다.

한 몸이었던 우리가 아직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느낄 때 생명이라는 것이 새삼 신비롭다.


자취를 하면서 한 그릇 음식을 주로 먹다 보니 반찬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집에 와보니 엄마는 계절마다 뭔가를 담거나 만든다. 직접 농사지은 것들로 장아찌를 담고 청을 담고 김치를 담근다.


부모의 사랑은 가끔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자식이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들은 아직도 기꺼이 한다.

그 마음은 내가 부모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인이


2024년 3월 3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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