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육백 세 번째 주제
스마트폰이 성행하기 전,
내가 교복을 입을 땐
PMP라는게 유행이었다.
인강을 들으려면
컴퓨터로 다운받아서
넣어두면 와이파이 없이도
볼 수 있었다.
코원,아이리버 등등
유행도 있었는데
마침 갖고싶던 하얀 아이리버 Pmp가
중고나라에 싸게 올라왔었다.
신나서 구매입금까지 끝내고 나니
판매자가 바로 잠수를 타버렸지 뭐야.
나름 몇십만원 고가의 사기는
내게 컸지만
경찰에 신고해도 작은 금액이라길래
전활 받지 않는 사기꾼에게
음성메세지로 민사,형사고소를
하겠노라 떠들며 기다렸다.
(법과 사회를 배우던 화난 고3의 엄포였다.)
그러다 입금계좌 주인이 안산의
어느 중학생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무사히 돈은 돌려받았고
다시는 기계를 중고로 사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 요즈음
나는 아직도 종종 사람을 믿고
중고로 뭔가를 산다.
이를테면 장식장 같은 것들을.
중고 가구를 걸러낼 만큼의
안목은 없지만
종종 깨끗한 장식장을 보면
괜스레 욕심이 나곤 해서일까.
늘 그때의 사기꾼 생각이 나다가도
눈 딱 감고 사람을 믿어버리게 된다.
아직까진 더이상의 사기꾼은 없었지만
종종 그날을 회상하며
지금의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한다.
웃기는 세상, 웃기는 나.
-Ram
1.
길을 가다 우연히 알라딘 중고서점 간판이 보이면 일단 들어가 본다. 교보문고는 어딜 가나 매대에 있는 책이 비슷비슷한 느낌인데 알라딘은 매장마다 들어오는 책들이 다르므로 이 매장에는 어떤 책들이 진열되어 있을지, 우연히 좋은 책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문을 열기도 전에 설렌다. 심지어 책을 고를 땐 책 앞표지를 먼저 넘겨본다. 그곳에 누군가의 편지, 메모 등이 쓰여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알라딘에서 사 온 책 앞표지 바로 뒷장에는 어떤 이가 누군가를 위해 작가의 친필 사인까지 받아 마음을 전한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 책이 원래 주인의 손을 떠나 머쓱하게도 내 손에 들려있었다. 책 주인은 책이 자신을 위한 선물인 걸 알고도 중고 매장에 팔았을까, 아니면 실수로 다른 책에 끼어들어갔을까, 아니면 아예 선물 받은 사실을 잊고 있었을까. 괜히 이런저런 상상을 해본다.
2.
남에게 마음을 강요할 순 없지만 진심을 담은 내 마음이 상대의 마음과 생각에서 쉽사리 놓아지는 건 아직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냥 물이 흐르는 대로 그런 인연들을 나 역시 놓아주면 좋으련만. 자꾸 미련이 남고, 마음이 가는 건 아직 어쩔 수 없나 봐.
-Hee
당근마켓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든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기를 위해 짧은 시간 잠시 쓰이고는 더 사용할 일이 없는 육아용품들은 당근마켓을 돌고 또 돈다. 그 순간을 잘 포착해서 상태가 좋은 물건들을 사들이는 게 요즘의 숙제가 됐다. 중고로 사서 잠시 쓰다가 다시 중고로 팔면 좋은 아이템들. 기저귀 갈이대, 타이니 모빌, 신생아용 침대 등 이미 꽤나 사들였는데도 앞으로 더 사야 할 품목들이 다 기억하지도 못 할 만큼 많이 남았다. 아마도 일부는 별 수 없이 새 걸 사겠지만 이것들 역시 어느 순간에는 당근마켓에 중고로 흘러들어갈 예정일 테다. 어쩐지 공동육아를 한다는 느낌도 든다. 중고시장의 순기능을 또 하나 알아가는 순간이다.
-Ho
중고.
사람 손을 탄, 손의 때가 탄 중고.
사실 난 중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세월이 담겨있든, 추억이 담겨있든 어쨌든 중고니까.
그러다 내 시간이 깃든 중고를 팔았을 때
괜시리 뿌듯해졌고
갖고싶던 단종된 만화책을 중고로 사봤을 때
새것인냥 좋았다.
중요한 건 내 손에 무엇보다도 갖고싶던 것을 쥐었다는 것이니까.
중고란 게 그런 것 같다.
팔거나 사면서 해소 혹은 희열을 느낄 수 있단 것.
-NOVA
2025년 7월 2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