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육백 두 번째 주제
이따금 나이를 먹고
종종 먹고픈 게 생선구이다.
갈치 고등어구이 같은 것.
그것이 바로 엄마 아빠의 사랑의 결정체였다.
튀는 기름, 냄새 번거로운 음식물 쓰레기 등등
전부 다 귀찮은 것들이었다.
그걸 오로지 날 위해
차려주는 사랑.
나는 그게 한없이 이어질 줄 알았다.
언제부터인가
생선을 구워먹을지 말지
고민 끝에 포기하는 나,
고향에 겨우 가서야
맘껏 먹는 나,
그런 어리광투성이의
덜 자란 나,
그런게 생선구이의 매력이겠지.
가시까지 발라주는
엄마의 사랑 같은 것
제일 좋아하는 고등어구이,
그런게 요즘들어 퍽 먹고싶더라.
-Ram
삼치구이를 처음 먹었던 곳을 떠올려본다. 2009년인가 2010년 즈음, 홍대의 허름한 백반집이었다. 당시 생선구이라면 집에서 엄마가 구워줬던 조기나 고등어, 그리고 횟집에서 반찬으로 나오는 꽁치 정도였는데 일행이 삼치구이가 맛집이라며 데리고 간 곳이다. 생선구이를 먹는데 와사비와 간장을 내어준 가게는 처음이어서 엄청 인상이 깊었다. 생선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하지도 않은 하얀 도화지 상태였던 나는 커다란 삼치 한 덩어리를 집어 와사비를 푼 간장에 찍어서 입에 넣었었다. 살이 두툼한 것이 이제까지 먹었던 조기들은 따라올 수 없는 식감이었다. '아, 이런 맛을 맛있다고 하는 맛이구나.' 나는 열심히 삼치구이를 탐구하며 먹었다. 돌이켜보면 그 삼치구이는 그 뒤 먹었던 수많은 생선구이와 비교해 봤을 때 약간은 빈약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는데 삼치구이의 첫 경험을 한 곳이라 그런지 생선구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혹시 몰라 검색해 보니 향미가 아직도 있구나.
-Hee
고등어, 갈치, 조기 등 생선 뼈를 잘 발라 내어주면 생선은 회로만 먹고 구이 같은 것은 굳이 찾아서 먹지 않는 지영도 맛있게 먹는다. 그럴 때면 사랑을 하긴 하는 것 같은데…라고 중얼거린다. 꽃다발이나 신변잡기를 줄줄 늘여 쓴 편지, 정성 들여 끓인 미역국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사랑을 생선구이를 통해 찾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엄마가 수저 위에 생선을 발라서 자꾸만 올려주었던 어린 시절의 식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일상 속에 녹아든 사랑은 조금 희미해져서 잘 모르고 지나가기 마련인데 한 번 떠올리기만 하면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 만큼 집요하게, 뜨겁게 느껴진다.
-Ho
어릴 적, 생선구이를 먹다 목에 걸린 적 있다.
그러다 생선 가시가 내 목에 걸렸고 몇 분이 지났나.
가로로 곧게 뻗은 가시가 내 목구멍을 꾹꾹 눌러와 너무나도 답답했다.
그 다음에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그렇게 생선구이가 싫어졌었다.
해가 지나도 생선을 먹지 않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한 번 먹게 되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엄마가 갓 해준 노릇노릇한 생선구이는 생각보다 더 따뜻했고 생각보다 더 보드라웠다.
살살 녹는다는 표현. 딱 그 느낌이었다.
간장에 찍어 먹으니 짭짤하면서도 달큰하기까지.
생선구이를 지금도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갓구운 따끈한 생선이면 내 입맛을 만족시키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이 달라지나보다.
입맛도, 취향도.
어릴 적에는 그렇게나 먹기 싫던 생선구이가 좋아지는 것처럼.
10년 뒤엔 얼마나 바뀔까.
얼마나 관심없던 걸 좋아하게 될지, 얼마나 즐겨하던 걸 안하게 될지 문득 궁금하다.
-NOVA
2025년 7월 2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